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
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

1. 졸속으로 헌법안 만들기

지난 13일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위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헌법초안을 제출했다. 특위가 공식 출범한 것이 2월 13일이니 헌법 초안을 만드는데 꼭 한 달이 걸렸다. 속성도 이런 속성이 없다.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속성으로 헌법 만들기’는 국민을 무시한 것이고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문재인 정부가 헌법 개정안을 미리 준비해왔고 그것을 1개월 만에 정리한 수순이었다면 제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까지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를 통해 헌법 개정을 꾸준히 논의해온 국회를 무시한 것이 된다. 국민과 국회를 무시하고 헌법 원칙과도 어긋나니 제왕적 대통령 방식의 헌법개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이름과 달리 ‘국민’의 의견 수렴을 단기간에 날림으로 했음은 여러 증거로 짐작할 수 있다. 국민헌법자문특위 정해구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는 설명은 요식적 행위를 과대 포장한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홈피(www.constitution.go.kr)를 개설한 것이 2월 19일이었으니 겨우 20일 정도 국민 의사를 곁눈질했을 뿐이다. 홈피를 개설하고 관심 분야를 선택해서 클릭하게 했는데 첫날 오후 4시까지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안건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이었다. 총 410명이 관심을 보였다. 두 번째로 관심을 보인 안건은 '헌법 전문에 5·18, 부마항쟁, 6·10 등 역사적 사건을 명시하느냐 여부'였다. 총 364명이 관심을 보였다. 모두 진보좌파 시민단체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인 사항으로 누가 클릭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민헌법자문위원회가 ‘홈페이지 팝업’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 그것도 자랑스럽게 – 2월 19일부터 3월 9일까지의 홈피 총 방문자수는 525,209명이었다. 요즘 ‘미투(me too) 폭로’ 기사 한 개에 댓글이 3000개에서 1만개씩 달리는 것과 비교할 때 1일 평균 2만 6000명 정도가 방문하고 나간 것을 ‘국민 의견 수렴을 통한 헌법 개정안 만들기’라고 규정하기에는 쑥스러울 정도다. 나아가 문재인 정권이 좋아하는 ‘숙의형 시민토론’을 통한 시민 의견 수렴 역시 국민헌법자문특위의 『자료집 2』에 따르면 3일간에 걸쳐 단 4차례 800명이 참가한 것이 전부였다.(아래 <표-1> ‘헌법개정을 위한 숙의형 시민토론회 일정’ 참고)

물론 졸속으로 만든 헌법안이라고 내용까지 허술한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헌법개정 시도는 절차와 내용 모두에서 문제점이 작지 않다.

첫째, 절차적으로 볼 때 현행 제왕적 대통령식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에 6·13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칠 헌법안을 만들어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 특히 그렇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후보자들이 공약한 것을 지켜야한다는 명분을 강조하고 있지만 후보자의 공약(公約)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헌법 개정안 국회 합의라는) 조건이 성숙되지 않음에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된 후 후보 시절 공약했던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성장률을 지키지 못한 경우에는 노력을 다했으나 국내·국제적 상황이 변했음을 거리낌 없이 주장하면서 개헌에 관해서만 대선 과정에서의 공약이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모순적이고 정략적이다.

다음은 국민헌법자문특위가 헌법개정 초안을 공개하지 않고 쟁점 사항의 경우 대통령이 결정에 맡기는 ‘복수안’을 제출했다는 점이다. ‘복수안’은 대통령이 개정될 헌법의 내용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이는 대통령에 의한 제왕적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헌법상으로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할 수 있지만 과거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많은 경우 집권 연장을 위한 것이었음에서 개헌안의 내용을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위험스럽다는 것이다. 또 대통령이 국회에 보낸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60일간 논의할 수 있지만 이는 가부 표결을 위한 단순 논의이기 때문에 국회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개 토의를 통해 헌법 초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옳다.

이번에 대통령의 결정에 맡겨진 사항들은 결코 밀실에서 대통령이 혼자 이 방안이 좋을까 저 방안이 좋을까 결정할 사항이 아닌 국가의 골격과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항들이었다. 예를 들어 국민헌법자문특위의 기자회견을 통해 밝혀진 대통령에게 ‘복수로 제출’된 중요 조문들은 ‘예산 법률주의 도입 여부’, ‘정부 법률안 제출권 폐지 여부’, ‘상시국회 도입 여부’, ‘국회의 예산심사 자율성 확대 여부’, ‘조약에 대한 비준동의권 확대 여부’, ‘국회의 헌법기관 구성 추천권 확대’ 등이었다.

특히 ‘예산 법률주의 도입 여부’, ‘상시국회 도입 여부’, ‘국회의 헌법기관 구성 추천권 확대 여부’는 어느 측면에서 보나 국회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할 사항이지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사항은 아니다. 또 자치입법권의 인정 범위와 자치재정권에 관해서도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국회가 지방정부의 입법권 위임과 재정 확보 방안을 마련한 후 결정해야할 사항임에도 대통령이 헌법에 넣을지를 결정한다는 것은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초월하는 제왕적 결정을 대통령이 행사하도록 한 것이었다. 행정을 담당하는 대통령이 입법권까지 행사하는 것이니 이는 3권 분립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국민헌법자문특위가 헌법의 중요 사항에 관하여 복수의 자문안을 제출하여 대통령이 결정하게 한 것은 입법권, 즉 국회의 헌법의 개정권과 법률 제정권을 무시하고 국회를 패싱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민헌법자문특위 개헌안의 두 번째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내용이다. 특위는 개헌안을 대통령에게만 전달했지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밝혀진 내용으로만 볼 때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헌법자문특위의 헌법 초안에 사회주의 경제 조항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민주화 조항이 강화되었고, 토지 공개념 개념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물론 “사회주의 헌법이면 왜 안 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큰 정부와 국민을 착취하는 경제제도를 기반으로 한 사회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의 명령경제 실험은 1990년대 초에 이미 끝났고, 사회주의의 원조인 유럽에서조차 ‘제3의 길’을 모색하다가 그마저도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우리만 다시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서는 헌법을 채택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역사 퇴행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 실패로 끝난 역사의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국가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권력구조로 4년 연임 대통령제를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과거 입만 열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하다가 정작 정권을 잡고나자 더 이상 제왕적 대통령에 대해 언급조차 꺼리고 있다. 언급조차 꺼리는 이유는 자신들의 권력을 제왕적 수준으로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겠지만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4년 연임 대통령제이고 또 이 제도가 장점만 가득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변호하는 것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이다. 한마디로 5년 단임을 폐지하고 4년 연임을 채택해야 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꾸어 보겠다는 수준의 주장들뿐이다.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제도를 바꾸면 모든 정치적인 문제들이 단번에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과 추측은 적절하지 않다. 학계의 상식적 주장이기도 하다. 좋은 제도를 도입했다고 제도의 장점이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도를 운용하는 인간에 있는 것이지 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5년에 못 이룰 공약을 8년에는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5년 단임 대통령의 레임덕이 문제가 된다면 4년 대통령의 레임덕은 2년차가 되면 시작될 것이고 연임을 하더라도 6년차 즈음에는 나타나며 연임을 성공시키기 위해 들이는 비용 역시 크다. 또 연임을 성공시키기 위한 선심성 예산 살포라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고 이미 학계의 연구로도 증명된 바 있다. 도리어 5년이면 끝날 대형 토목사업이나 프로젝트를 8년을 끌어 대못만 깊게 박을 수 있다. 나아가 8년 이상짜리 대형 프로젝트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정부는 더 비대해지고 정부 개입은 더욱 커져만 갈 수 있다. 나아가 8년을 연임하게 되면 6년차 즈음 집권 후반기에 4년을 더 해보고 싶은 욕망도 생겨나고 주변 분위기도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아예 5년 단임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집권 연장을 꿈꿀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의 개헌안은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가 삭제했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자유’를 그대로 둔 것을 빼고는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예상했던 대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의 개헌안은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의 개헌안이라는 모범 답안(?)과 유사하고 현행 헌법에 비하여는 훨씬 더 사회주의적이고 평등주의에 매몰되어 있으며 ‘자유주의’를 압살하고 있다. 진보좌파 시민단체의 영향과 소위 진보학자들의 영향이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2.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헌법안을 만들라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역사적으로 1987년 제9차 헌법개정도, 그 이전 대부분의 헌법개정도, 그리고 제헌헌법도 국회가 주도적으로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헌법안을 만들었고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창설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개헌안을 만들었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들이나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본래의 역할인 국회의원 ‘자문’과 대통령 ‘자문’은 제쳐두고 자신들이 직접 나서 헌법안을 만든 것은 역할을 망각한 자문위원들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것을 방치한 국회도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현행 헌법은 국회 주도로 헌법을 만드는 것이 옳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28조 ①항에 따르면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제130조 ①항은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함을 그것도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하여 동의를 받아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그 뒤 헌법 제130조 ②항에는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고 명시함으로써 국회에는 60일, 국민투표에는 30일의 기한을 주어 표결 전에 국회가 충분히 개헌안을 논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이 개헌안을 만들어 발의할 수 있지만 헌법 정신은 국회 주도의 개헌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개정이든 법률 제정이든 입법권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있다는 것을 헌법은 명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대통령은 그동안 개헌안 준비와 관련해 국회에 기회를 줬지만 현실적으로 국회 개헌안이 여의치 않다. (따라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및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장)의 발언은 국회가 일을 못하니 정부가 대신하겠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이는 입법, 행정, 사법의 3권 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 또 국민헌법자문위원회 위원장이 국회가 합의하는 헌법 개정안을 기다리는 인내심, 즉 민주주의의 핵심 자질인 ‘똘레랑스’를 잃어버린 발언이다.

3. 개헌은 시기가 아니라 내용이 문제다

그 동안 개헌 논의는 정당성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분산에 두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개헌의 핵심이 4년 중임(연임) 대통령제로 도리어 대통령 권한의 강화로 바뀌었다. 5년 단임으로 끝나는 대통령보다 8년 통치가 가능한 대통령의 권한은 2배 정도로 커질 것이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의 헌법안이 감사원을 독립기관으로 독립시키는 조항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이 감사원장을 임명하는 구조라면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권력분산의 효과는 크지 않다.

또 특별위의 헌법안이 예산 법률주의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국회가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면 결국 예산안의 초안은 정부가 만들어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법률안 제안권 포기 역시 정부가 만들어 집권당 국회의원을 통해 발의하는 ‘우회 입법’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줄이는 효과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나아가 먼저 국회가 예산을 편성하고 법률을 만들 수 있는 기구를 만들고 능력을 키우는 방안이 함께 가야하기에 이러한 부분은 권한을 받는 국회의 의견을 들어보고 개헌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절차적으로 바르다. 대통령이 국회와 상의 없이 결정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개헌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지방분권 역시 크지도 않은 나라를 완전히 쪼개어 국가적 발전이나 국가적 사업 추진에 방해가 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지방분권의 개헌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논의가 우선이고 사회적 합의도 뒤따라야 한다. 우리는 봉건제에 근거한 지방자치라는 역사적 경험이 없는데 헌법에 천명만 하면 실천이 가능할지 의문이기도 하고 ‘지방분권’이 도리어 ‘지역주의’를 강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국회와 학계의 심도 있는 논의 과정이 없이 지방분권 헌법개정이 진행되니 남북한 연방제를 위한 수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현상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개헌의 내용이 ‘제왕적 대통령’만 고쳐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제왕적 국회, 제왕적 촛불(군중, 대중) 등 권력이라면 모두 견제 받는 헌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권력이든 심지어 국민의 권력도 그것이 여론조사와 같이 호도되고 조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 경쟁, 비밀투표에 의한 결정이 아니고서는 수십만의 국민이 모인 집회의 의사라고 하더라도 견제 받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주의의 이념이고 자유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원칙’(the principle of checks and balances)이며 미국 헌법의 기본원칙의 하나인 ‘다수 독재’(the dictatorship of the majority)로부터 소수(minority)를 보호하는 길이다.

이러한 모든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자유주의적 원칙이 사회에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또 그 원칙을 제도화 하는 조항이 헌법 개정 시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제왕적 국회, 즉 여야가 정략적으로 법안을 주고받거나 자신이 속한 지역구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면 예산은 물론 영혼까지 파는 국회의원들의 임자 있는 법 만들기 – 대개의 특별법이 그렇다 – 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제어내지는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 세종시특별법, 새만금특별법,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 제주특별자치도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등 임자 있는 특별법은 여야의 법안 주고받기로 탄생해 왔다. ‘짬짜미 입법’ 또는 로그롤링(log rolling) 입법, 포크배럴(pork barrel) 입법을 상시적으로 할 수 없는 견제 틀이 헌법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촛불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헌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법적 견제가 존재해야 하고 또 그 견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헌법에 조항이 만들어 져야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견제할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권력이든 비대한 권력이라면 반드시 견제하여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자유주의의 중요한 원칙이다.

4. 개악이 되는 개헌은 안된다

국민개헌특위가 추진하는 한 달만의 개헌안은 졸속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지방선거와 연계해 개헌을 급하게 끝내겠다는 정치적 의도 때문이다. 하지만 개헌이 중요한가, 지방선거가 중요한가를 생각해보라. 지방선거에 맞추어 개헌을 서둘 수는 없는 것이다. ‘내로남불’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상식 내지는 정치의 기본에 대한 문제이다. 어떻게 국민 의견까지 수렴해 가며 1달 만에 개헌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있는 것인가? 개헌안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고 32명의 위원은 반대 없이 동의하거나 정확히 그들의 취향에 맞는 개헌안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정해구 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전문가 논의와 국민 토론회, 여론조사”는 형식적이 되었고 특히 국민 의견 수렴은 요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숙의형 시민토론’을 통한 의견 수렴 역시 시간에 쫓겼는지 단 3일 동안 4차례 800명이 참가한 것으로 끝났다. ‘자문위원 논의’ 역시 국민개헌특위 32명의 자문위원들의 정치적 성향과 시간적 시급성을 고려할 때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 졌을지 의문이다.

개헌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을 실천한다고 공무원 조직으로 뚝딱 만든 개정안을 국회에 던지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개정할 헌법이라면 고치지 않고 현행대로 두는 것이 도리어 낫다.

1987년에 9차 개헌을 하였으니 이번이 10번째 개헌이다. 10번 정도 성형하면 성형괴물이 탄생할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서둘지 말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차근차근 개헌안을 준비하는 것이 옳다. ‘자문위원’이나 ‘자문위원회’는 그저 자문의 역할에 그쳐야 함은 물론이다.

김인영 객원 칼럼니스트·한림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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