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서명 들어간 문건 작성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인 엄낙용, 저서에 당시 對北송금 국회증언 회고
문건 작성은 2000년 4월, 엄낙용 회고에선 "2002년 김대중 정부서 대기업 상대 대북사업 참여 요구"
'北에 30억 달러 제공' 문건 2년여 뒤 제2 연평해전...문건 내 자금 출처와 이행 시점・여부 등은 안 알려져
"대기업 대북사업 참여 요구" 뒤 연평해전 발발..."北 신무기 무장이 南 자금으로 이뤄진 것일 개연성"

2003년 2월21일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회원들이 여의도에서 대북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제 도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03년 2월21일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회원들이 여의도에서 대북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제 도입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북한에 30억 달러 제공’ 문건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대북송금사건의혹을 최초로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엄낙용 전 한국산업은행 총재의 회고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엄 전 총재는 '박지원 문건' 날짜(2000년 4월8일・김대중 정부)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냈고,곧바로 산업은행총재를 역임하면서 대북송금사건을 알게됐다는 것이다.

엄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김대중정부가 당시 대기업에 대북 사업 참여를 요구했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2017년 출판된 엄 전 총재의 저서 ‘한 공직자의 경제이야기’ 130쪽 ‘대북송금 국회 증언’에는 “2002년 초 S그룹 임원 Y씨가 지금 정부에서 S그룹에게 대북사업에 참여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 골치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엄 전 총재는 “짐짓 모른 체하고 그러냐고 하였지만 속으로 큰일이구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이를 어떻게 하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엄 전 총재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청문회에서 공개된 '북한에 3년동안 30억 달러 제공'의 자금 출처가 대기업과 연관됐을 수 있다는 추정을 해볼수 있다.

‘북한에 30억 달러 제공’ 문건은 27일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박 후보자 청문회에서 들고 나와 논란이 됐다. 주 원내대표가 공개한 문건은 2000년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북측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 6월 정상회담을 합의할 때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당시 박지원 장관의 서명과 북한 송호경 부위원장의 서명이 담겼다. 이 소위 ‘합의서’에는 “남측은 3년동안 25억 딸라 규모의 투자 경제협력차관을 사회간접부문에 제공한다”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5억딸라분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문건이 사실이라면,3년간 투자및 차관형태의 자금 지원인 만큼 대기업의 참여가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박 후보자는 관련 내용을 완전히 부인하고 있다.박 후보자는 주 원내대표의 지적에 "어떠한 경로로 주호영 원내대표가 입수했는지 모르지만 4·8 합의서는 지금까지 공개가 됐고 그 외 다른 문건에 대해서는 저는 기억도 없고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진 청문회에서도 관련 질의가 이어지자 박 후보자는 해당 문건이 위조된 것이며, 문건에 서명한 것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후보직 사퇴를 포함해 어떠한 책임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이 공개한 '남북 합의서'. 2000년 4월 8일 작성됐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이 공개한 '남북 합의서'. 2000년 4월 8일 작성됐다.

회고록에도 김대중 정부의 대기업 겨냥 대북사업 참여 요구가 실제로 있었는지, 사업이 이뤄졌는지는 적혀있지 않다. 다만 엄 전 총재는 “그리고 그해 6월 한국의 월드컵 4강전으로 전국이 뜨겁게 달아오른 날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다”며 당시 북한군의 우리 고속정을 향한 북한 포격을 언급했다. 이어 “북한군의 이러한 신무기 무장이 남한에서 보낸 자금으로 이루어진 것일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이 필자를 잠 못 이루게 했다”고도 했다. 박 후보자와 북한 측 관계자 서명이 담긴 이른바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내용이 실제로 이행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문건 날짜 2년여 뒤 제2 연평해전이 발생한 것이다.

엄 전 총재는 대북송금 국회 증언 전후를 회고하며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북한에 거액의 현금을 제공하는 것은 군사적, 정치적 용도로 사용될 것이 명백하므로 동의할 수 없었다”며 “만약 그러한 비밀스러운 자금 제공으로 남북관계에 근본적 화해가 형성된다면 모르겠지만 연평해전에서 나타난 결과는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를 그들의 손에 쥐여준 형국이 아닐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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