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우 칼럼]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운동권 성(性)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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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7.24 09:22:52
  • 최종수정 2020.07.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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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박원순의 變死, 극단적으로 모순된 삶의 종말
성추문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좌파정권의 핵심인사들
80년대 운동권의 성문화...야만적 봉건사회와 뭐가 다른가
여성단체, 좌파 성추문에 침묵...평등·평화는 목구멍에 꿀꺽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대표적인 여성인권 운동가로 알려졌던 박원순 시장이 목숨을 끊었다.

가면 속에 숨겨졌다가 죽어서야 드러난 시민운동가의 참모습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사회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시민운동가가 보통사람도 삼가는 창피한 짓을 천연덕스럽게 저질러 왔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이를 감싸왔다.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다.

박원순은 권인숙 성고문 사건의 변호인으로서 여성권익 보호의 선구적 투사라고 자처해왔다. 그 페미니스트 박원순이 바로 최측근 부하인 여성 비서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극단적으로 모순된 인생을 살았다.

그는 개인적 영달보다는 사회적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성자(聖者) 같은 이미지로 언론을 비롯한 우리 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각인시켜왔다. 그러나 아름다운 가게, 참여연대를 만들어 대기업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타협의 대가로 막대한 기부금을 받아내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수천억 원의 기부금을 받아내어 좌익활동가의 해외 유학 같은 양성자금으로 활용하고, 수많은 좌파단체에 자금을 지원하여 시민운동의 전설적 대부(代父) 노릇을 하였다. 광우병 파동, 세월호 사태 등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당시 정부 흔들기에 앞장섰다.

일찍이 박헌영의 혼외자인 원경 스님과 손을 잡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재야역사학자 임헌영을 소장으로 삼아 ‘우리민족끼리’에 맞추어 반일/친일 프레임의 기초를 만들고, 한국 좌파운동의 이념적 토대를 구축했다. 박헌영 일대기도 출간하였다. 선거를 위해서는 뒤축이 무너진 헌 구두를 신고 청빈한 인생을 강조하였으나, 지레 겁을 먹은 포스코와 같은 대기업 여러 곳의 사외이사로 막대한 개인소득을 올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행태가 왜 일어나는가? 좌파정권의 핵심인사들이 빠져있는 볼셰비키적 사고의 영향으로 보인다. ‘목적이 올바르면 어떠한 과정도 올바르다’는 집단 최면에 걸린 것 같다. 그래서 거짓을 떡 먹듯이 하면서도 부끄럼이 전혀 없다.

유교적 영향이 컸던 한국 사회에 여성의 권리의식이 자리 잡은 것은 정치 민주화와 무관하지 않다. 자연스러운 여권 신장의 면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주사파 운동권이 투쟁 동력을 얻는 방법으로 ‘성 동아리’로 여성을 끌어들인 흔적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순진한 신입 여학생까지 집단적 관계로 동여매어 투쟁 동지를 만들던 과정이 한국 사회 성문화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마치 지리산 빨치산 시절 여성 대원들이 남성 전사들의 성적 위안을 제공했던 것과도 유사하다. 혁명을 위해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박원순의 여비서 성희롱 사건에서 보듯이 페미니스트의 선구자이며 거인이라는 인물이 그 고매한 외형과는 모순되는 성적 장난에 탐닉했어도 운동권 시절의 성 동아리 문화로는 별것이 아니라고 치부한 것이다. 피해자가 수년간 고통스럽게 호소했어도 동료나 관계자들이 애써 무시했다. 7번이나 타부서로 전출을 호소했어도 들어주지 않았다. 운동권 시대의 성 문화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의 시장실 6층을 차지한 운동권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박원순의 성적 일탈을 방조하고 가려준 것이 아닌가? 서울시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3년 6개월간 서울시청이나 산하기관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성폭력이 폭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완장 찬 측근들의 운동권 성문화가 만연했기 때문이 아닌가? 안희정이나 오거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거로 공직을 차지한 운동권 출신 공직자들이 보통사람들이 혐오하는 성적 일탈에 대해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온갖 사회문제에 참견하던 여성단체들이나 좌파인권단체들은 박원순의 일탈에 대하여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모호한 논평만으로 버티었다. 평등, 평화를 외치다가 여성들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의 문제는 외면하는 비겁함을 보인 것이다. 법원조차 박원순의 가해행위를 증명하기 위한 휴대 전화 압수수색영장 신청을 두 번이나 기각하였다.

그들은 5일간의 서울시민장(葬)으로 거액의 예산을 들여 서울시청광장을 성지처럼 만들고 박원순의 자살을 미화하려 했다. 안타깝게도 이틀 후의 백선엽 장군의 서거와 대비되어 우상화 작업은 실패하였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20, 30대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이 안전에 대해 높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어두운 골목길에 가로등을 설치하여 여성들이 밤중에도 안심하고 귀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치한이나 폭력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두운 골목길은 금세 알 수 있으므로 현명한 여성들은 피해 갈 수 있다.

박원순 사태가 깨우쳐준 문제의 핵심은 어두운 뒷골목보다도 일상적 업무공간에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피하기가 쉽지 않다. 거의 모든 여성이 사회활동에 참여해서 직업을 가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문제다.

밖으로는 고매한 인격자의 가면을 쓴 상사들이 안 보이는 공간에서 자신의 위력 아래에 있는 부하 여성들을 성적으로 추행할 수 있다. 80년대 운동권의 성 동아리 같은 강압적 관계를 용인하고 그 성문화를 방관한다면, 결코 우리의 딸들이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여성들의 안전의식의 근본이 무너지는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쉽게 성추행의 대상이 된다면 여성의 안전은 무너진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선진사회가 될 수도 없다. 여성 인권에 대해 야만적이라 평가받는 전제군주제나 봉건사회와 다를 바 없다.

한국의 민주화 투사였다고 자처하는 인사들은 이제 운동권의 성문화를 깨끗하게 버려야 한다.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래서 여성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안전을 누리게 해야 한다. 안심하게 해야 한다.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장, 前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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