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재 칼럼] 역사, 흔적, 그리고 신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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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7.23 14:18:16
  • 최종수정 2020.07.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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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통령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학자가 기록을 남기면 '역사', 우리가 기록을 남기면 역사의 '흔적', 그리고 '신화'된다
보수주의자들이 알아야 할 건 역사가 아니라 문화다
다 때려치우고 문화와 경제만 가르치고 배우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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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통령의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 멀지 않은 과거. 그럼에도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우리네 부모님들은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할머니께서 구전으로 들려주시던 옛날 얘기를 들으며 웃고, 울고, 때론 공포에 떨기도 했다.

글을 배우기도 전에, 역사를 배우기도 전에, 세상을 배우기도 전에 그렇게 우리네 어른들은 할머니를 통해 할아버지를 통해 옛날 얘기를 통해 자연스레 역사와 문화를 인지하면서 어른이 되었다.

그게 역사인지, 문화인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그 얘기들 속에서 때론 무서움에 떨며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할머니의 품에 안겨 웃거나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 안에는 할머니가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그 할머니의 할머니가 그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이었고, 그것은 본의 아니게 우리네 선조들(어른들)이 살아왔던 지난한 역사가 구전이란 이름을 빌려 신화로, 전설로 재탄생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라는 알리기 위한 지난한 민간의 흔적들이었고, 것이 우리네 ‘문화’였다.

그렇게 역사는 그런 문화를 통해 후손들에게, 대중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런데….

세상이 발전하고 가정의 틀이 변화하면서 이렇게 구전으로 이어지던 역사의 흔적들과 신화의 기록들이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의 자리는 뽀통령이 차지해 버렸고,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는 브라운관과 스크린, 휴대폰이 대신해 버렸다.

바쁘다는 이유로, 편하다는 이유로…….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

바로 역사를 대처하거나 보완하는 역할을 하던 ‘시간의 흔적’과 ‘신화’다.

필자는 늘상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해 왔다.

“학자가 기록을 남기면 역사가 되지만, 우리가 기록을 남기면 역사의 흔적이 되고, 신화가 된다. 우리는 신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지금 보수우파진영에서의 역사는 사라지고 있다.

하다못해 집에서 키우는 애완견 마저도 족보를 따지는 시대에 보수진영은 역사라는 족보가 사라진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더 황당한 것은 그 근간을 이루어야 할 역사의 흔적과 신화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보수’라 자처하는 이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만행이다.

보수주의자들이 알아야 할 건 역사가 아니라 문화다.

현대인은 바쁘다. 보수주의자들은 더더욱 바쁜 삶을 산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역사는 어쩌면 배부른 자들의 과거탐색기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역사’라는 무거운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좋은 핑계이자 구실이었다.

하지만, 보수진영이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문화’였다.

문화 따위는 배부르고 한가한 이들이나, 게으른 좌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치부했다.

위에서 말한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할머니로 전해지던 구전을 통한 역사의 흔적들을 우리는 외면했다.

역사와 문화, 모두를 외면하면서 보수는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는 소명의식마저 저버린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이 학자수준의 역사 지식을 갖는 것은 힘들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를 외면해서도 안되고, 그것을 자신만의 지식으로 묵혀 둬서도 안된다.

학자들이 기록으로 역사를 정리해 나간다면, 우리는 그 역사를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었다.

그것은 힘든 것도 아니고 지금 살아온 시간의 흔적들을 기억하고 구전이든, 영상이든, 글이든, 그 방식이 뭐든 시간의 ‘흔적’을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

역사가 팩트와 승자의 기록이라면, 우리가 남겨야 할 시간의 흔적은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지라도 ‘신화’의 형식으로 남겨야 된다.

그 옛날,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때부터 전해지던 그 수많은 전설들, 신화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내던 역사의 흔적이자, 역사를 신화로 만드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지금 보수진영 어르신들의 삶은 분명 존중받아 마땅하다.

전쟁을 치른 그 척박한 땅에서 불과 70년만에 세계에 우뚝 선 한강의 기적을 이루신 분들이라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왜 이 땅의 젊은이들과 대중들은 그런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과거와 어르신들의 업적을 무시하는 것일까?

필자에게 있어 그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그런 위대한 역사 따위는 학자들에게나 맡기고, 그런 위대한 역사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문화’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자.

여러분들이 위대하다고 대한민국을 느끼는 것은 역사책을 뒤적여서 찾아낸 것인가, 그것을 증명하고 재미있고 간결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되는 이야기를 통해서인가?

최소한 필자는, 내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어른들에 대한 위대함을 느꼈다.

최소한 필자는,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들려주던 이야기 속에서 우리네 사는 방식을 체득했다.

그게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할머니들이 만들어 주신 역사의 ‘흔적’이자, ‘신화’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팩트 차원에서 찾은 역사를 제외하고는 그랬다.

그런데 보수는 역사는커녕 그런 역사의 흔적과 우리가 만들어야 할 신화 모두를 그렇게 버려 버렸고, 좌파들의 문화와 역사전쟁에서 처참히 패배하고 말았다.

다 때려치우고 문화와 경제만 가르치고 배우면 돼.

필자가 유일하게 선배로 인정하는 문화계 선배인 남정욱 작가(교수)와 이런 얘기를 자주 나누곤 했다.

남: 그러니까 다 필요 없고, 이제 우파는 문화와 경제만 가르치고 배우면 돼.

나: 그 말을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남: .......

나: .........

말없이 담배만 피워 대는 그 시간....

아주 일상적인 우파내의 몇 안되는 문화인들의 풍경이다.

필자가 이번 글에서도 그랬고, 다른 칼럼에서도 여러 번 반복해 말해 왔지만,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는 말을 이해한다면 위의 저 대화를 이해하기는 매우 쉽다.

문화는 그 자체로 아무런 형태가 없지만, 역사와 교육이 붙는 순간 형태가 완성되고, 그렇게 완성된 문화는 대중들의 가슴과 머리, 일상생활 속에 파고든다.

그리고, 그 역사는 그 역사 자체를 넘어, 흔적과 신화로 재탄생한다.

지금 좌파들의 역사전쟁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들은 지금 이 칼럼을 올리는 ‘펜앤드마이크’ 건물 앞에 버젓이 홍범도의 비석을 세워놓고 우릴 조롱하고 있다.

홍범도와 김원봉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고, 향후 박상실과 여타 공산주의자들의 영웅담을 흔적과 신화로 만들어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문제를 역사전쟁이 아닌 문화전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전쟁은 역사에 한정되지만(반일민족주의 이영훈 교수님의 전쟁처럼), 문화전쟁은 역사와 교육을 포함해 국민들 삶 속에 이미 깊숙이 박혀버린 일상 속 소리 없는 전쟁인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끔찍하다.

국민들의 의식에 자유의 소중함과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다시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그래서 문화교육이 필요한 것이고, 그 외의 것에서는 경제만 가르치면 된다는 말이 된다.

경제만 배워도 문화산업의 부가가치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확인할 수가 있기에 관심도가 높다.

필자가 우파선언을 하고 문화전쟁에 대한 나홀로 전쟁을 펼칠 때 보수진영은 그게 뭔지 이해도 못하고 있었지만, 경제학자들(자유경제원 같은)들은 문화의 중요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필자가 문화전쟁을 알리는데 공간을 내주었고, 지금도 많은 지식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보수진영의 문화적 수준은 어떤가?

그저 정치적 이슈에만 함몰되어 그 모든 다른 차원의 문제들마저 정치적 논쟁 안으로 끌고 들어와 다 망가뜨려 버린다.

그 안에서 문화인들이 느끼는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얼마 전에는 요즘 핫한 ‘내시십분’의 개그맨 김영민씨가 꼰대보수들의 밑도 끝도 없는 정체성 요구에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치료를 받아야만 했고, 자신의 시간과 재산을 투자하면서 625참전용사들의 모습을 담는 사진작품들을 만드는 현효제 작가의 자존심을 뭉개 버렸다.

현효제 작가는 외친다.

“세계 어데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 왜 한국에서만 문제로 만드느냐!”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예의와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한국 보수들의 민낯인 것이다.

문화전쟁은 좌우의 싸움이 아니다.

문화전쟁은 수많은 대중(국민)들에게 우파의 가치를 전달해 이쪽으로 끌어오는 땅따먹기 싸움이다.

얼마나 많은 땅을 확보하느냐가 나아가 정치판과 권력,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결정짓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싸움인 것이다.

그런 싸움에 정치적 시선을 끌고 오는 순간, 이 싸움 자체가 변질되고 지게 된다.

문화전쟁은 대중(국민)들이 얼마나 재미와 호감을 느끼게 하느냐의 싸움이지, 목에 핏대 세우고 싸우는 정치판의 더러운 술수 싸움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는 늘 이런 식이었고 그 안에서 외롭게 싸우는 문화예술인들은 좌파가 아닌 보수 내부에 의해 고통받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로 힘겹게 그 일을 해 나가고 있다.

누구도 외면하는 이 보수문화판에서…..

그런 몇 안 되는 자유진영의 문화예술인들의 현실을 알아 달라고 문화를 배우라는 말은 아니다.

이 바닥에 오면 힘들다는 이미 알고 시작한 사람들이고, 누가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해야 할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기에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고 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보수진영에서 고민하는 바로 그 문제들.

‘왜 보수진영의 운동은 재미없고 일반인들이 외면하며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지 않지?

왜 저런 사회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바꿔가는데 국민들은 가만히 있지?

왜 자신들의 재산과 자유를 다 뺏아가고 있는데 국민들은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지?’

따위의 질문들에 그동안 보수진영은 그저 국민들이 개돼지라는 안일한 마인드에서 쉽게 판단하고 끝내 버렸고, 오히려 그건 더 독이 돼서 국민들이 보수를 외면하는 결과로 펼쳐진 것이다.

그런 보수마인드가 현 정부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고는 생각을 왜 못할까?

필자는 저 문제의 이유들에는 문화전쟁에서 완전히 패망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팩트’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결과물들의 저변에는 모두 좌파들이 생성한 ‘진지’들에서 문화를 통해 대중들을 세뇌(솔직히 이 말이 맞을까?)시켰기 때문이다.

문화전쟁의 싸움을 자꾸 정치판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니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어쩔 수 없는 ‘쪽수싸움’이지만, 보수는 그 싸움의 장인 ‘문화전쟁’을 모른다.

필자가 제발 문화를 공부하시라 하고, 남정욱 선배와 담배를 피며 한숨 쉬는 이유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국민)에게 전달된다!

필자가 10년이 넘도록 문화전쟁을 말했지만 여전한 공허한 울림으로 남아있다.

좌파영화계와 싸움을 시작하고 우파선언을 하며 문화의 중요성을 알린 20년이지만,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그 시간 동안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물론 필자의 부족함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아쉽거나 때론 화가 나는 부분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몇몇 이유처럼, 그나마 몇 안되는 문화예술인들이 우파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문화전쟁을 힘겹게 치르고 있을 때, 응원을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힘겹게 하고 이 판에서 떠나게 만드는 악역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모습을 볼 때다.

그런 만행을 저지른 장본들은 애국이니 뭐니 하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소리를 하지만, 그게 얼마나 문화적으로 무식한 소리인지를 전혀 모르기에 나타난 결과다.

그러니, 우리네 할머니들의 할머니, 그 할머니들의 할머니를 통해 전해져 오던 시간의 흔적과 신화들마저 헌신짝처럼 내버려 버리고, 문화에 무지한 그들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문화예술인들이 보수진영을 떠나게 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수진영의 행사에 문화예술인들이 없고, 그렇게 해서 완벽하게 패망한 문화전쟁의 승자들로 인해 국민(대중)들은 승자에 환호하는 것이다.

정치판(역사)이던, 문화전쟁(신화) 판이던 국민과 대중들은 승자에 열광할 뿐이다.

보수진영에는 그들을 열광시킬 신화가 사라졌다. 누구도 아닌 보수진영 스스로에 의해……..

다시 말하지만, 정치전쟁과 문화전쟁은 그 싸움의 형식이 다르다.

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싸움판이 어떤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정치가 권력을 잡기 위한 좌우이념의 싸움이라면, 문화전쟁은 대중들을 그 이념에 얼마나 많이 끌어 오느냐의 싸움이라는 것만이라도 제발 직시하자.

보수진영은 후자의 전쟁에서 철저히 패망하고 말았고, 그 문화전쟁 안에 녹아 있는 역사와 교육 전투현장에서도 처참히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기고 싶은가? 국민들이 자유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지하도록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라도 문화를 공부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역사를 통해 기록되고, 그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

문화의 유통업에 과감히 도전하시길 바란다.

문화를 공부하기 싫다면……

제발 문화전쟁을 외롭게 치르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을 그냥 내버려 두기만이라도 하셔라!

몇 안되는 우리라도 신나게 판을 벌리고 지칠 때까지 싸워라도 볼 수 있게!

지금처럼 한심하게 보수진영에서 스스로 문화예술인들을 힘들어 떠나게 만드는 만행만이라도 멈춰 달라!

아~! 그러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문화를 공부하셔야 되는구나!

‘신화’는 그때 가서나 만들 수 있는 얘기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영화감독/(주)작당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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