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역사적 사건 ‘유권 해석’…“자유주의 헌법 아니다”
종합평가 끝나지 않은 5.18 등 헌법 전문 삽입이 옳은가
헌법 전문 길어지는 것은 후진국의 징조

‘문재인 청와대’가 오는 21일, 30년 만의 개헌안 발의를 예고했다. 앞서 대통령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불과 한 달간의 작업을 거쳐 자문안을 만들어 내놨다. 공식 대통령 발의 전이라는 이유로 구체적 조문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대략 ▲5.18 등 헌법 前文(전문)에 삽입 ▲기본권 확대 및 ‘노동3권’ 등 강화 ▲지방분권 강화 ▲대통령 4년 연임제로 권력구조 개편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자문위안은 ‘지방정부’ 개념 도입으로 대한민국을 조각내고, 사회주의 경제로 과격한 유턴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자아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그럼에도 “개헌은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며 개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PenN은 오늘부터 ▲헌법 전문(前文) ▲지방분권 ▲경제 관련 조항 ▲기본권 및 가정 해체 등 국민헌법자문특위의 개헌안의 문제점을 네 차례에 걸쳐 분석한다. <편집자 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회헌법자문특별위원회(위원장 정해구, 이하 특위)는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개헌 자문안을 보고했다.

개헌안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날 특위가 연 기자간담회에서 ‘스무고개’를 하듯 묻고 또 물어 자문위안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엿본 특위의 개헌안은 권력구조부터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대한민국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로 변모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았다.

특히 법 전문에 5.18 등 역사적 사건을 삽입하고,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는 구절을 삭제한다는 내용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뒤 흔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항거‧투쟁의 역사만 강조하는 ‘자기비하적’ 헌법 전문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헌법의 조문 앞에 있는 공포문(公布文)이다. 특위는 헌법 전문에 5·18 운동과 부마 민주항쟁, 6·10 항쟁 등 4·19 이후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포함시켰다. 다만 당초 함께 거론되었던 ‘촛불정신’은 들어가지 않았다.

또 현행 헌법에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는 구절을 삭제하는 대신 ‘기회균등과 연대의 원리를 사회생활에서 실천’한다는 대목을 삽입했다.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 전문(前文)>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 전문은 이미 수차례 대한민국의 기초 철학과 방향성에 대한 함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을 번영으로 이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이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문위안은 여기에 저항과 투쟁 그리고 분열의 역사를 의미하는 5·18 운동과 부마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등을 넣어 자기비하적 역사 해석을 증폭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규재 펜앤마이크 대표 겸 주필은 "5·18과 6월 항쟁, 촛불시위까지 포함하면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갈등과 분열, 분노와 저주, 독재와 그것에 대한 투쟁으로 일관하는 그런 나라로 완성된다"며 "가난과 비극 속에서 태어났으되 오늘날 세계의 무역국가로 컸고, 세계로 열린 개방국가이며, 그 국민이 지구의 거의 모든 국가에 진출해 살며, 가장 극적인 경제적 성취를 달성한, 자유롭고 위대한 대한민국은 헌법에 없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5‧18 등은 지난 20일 ‘특별법안’을 마련해 여전히 실체를 조사하는 등 역사적 해석이 완료되지도 않아 ‘정치화’의 우려도 나온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역사적 사건의 명기는 정치화의 우려가 있고, 역사적 사건은 역사학자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도 “헌법 전문은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를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역사적 사건의 나열은 과잉 정치화와 이념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역사적 사건 ‘유권 해석’…“자유주의 헌법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국가의 ‘유권 해석’이 가능하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헌법에 단일 역사 사건을 넣는 것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도 과거 헌법 전문에 삽입됐던 특정 역사적 사건을 삭제하는 개헌을 한 적이 있다. 제5공화국 헌법에서 제3공화국 당시 전문에 넣었던 ‘4.19의거와 5.16혁명 이념’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이다. 그러다 1987년 현행 헌법으로 개정하며 ‘4.19 민주이념 계승’을 명시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 교수는 정부가 결코 역사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려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역사에 대한 국가의 유권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며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고 산 증인의 증언이 쌓여갈수록 역사해석은 극적으로 뒤바뀌고 달라진다. 다양한 역사해석이 길항하는 사상의 시장에서 국가의 역할은 반칙행위만 적발하고 처벌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또 “부득이 헌법전문에 역사 서술을 넣으려면, 헌법 형성의 연혁에 관한 객관적 서술에 그쳐야 한다”며 “건국 이후에 전개되는 복잡한 역사적 사건에 관한 국가의 공식입장을 헌법전문에 독점적으로 넣으려는 발상은 전체주의적 월권”이라고 덧붙였다. <PenN 3월15일자 [문혁춘추:현대중국의 슬픈역사 11회] 참조>

이같은 문제는 소위 ‘진보’ 성향의 교수들도 지적한 부분이다. 민주당에서 헌법 전문에 ‘촛불 정신’을 포함시키려는 것에 대해 최장집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안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촛불시위가 한국민주주의의 발전이나 정치과정에서 큰 전기이긴 하지만 보편성을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며 “혁명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산물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프랑스 헌법에도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들어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는 “기본적인 정신이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면 충분하다”며 “보수고 진보고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원리가 들어가야지 쟁점이 되는 사건을 나열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헌법 전문 길어지는 것은 후진국의 징조

결과적으로 헌법 전문에 구체적 역사 사건을 나열하는 것은 후진국형 헌법 전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헌법 전문> 우리들 연합주(The United States)의 인민은 더욱 완벽한 연방(Union)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고, 국내의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도모하고,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에게 자유와 축복을 확보할 목적으로 미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을 위하여 이 헌법을 제정한다.

<독일 헌법 전문> 신과 인류 앞에서의 자신의 책임을 의식하고, 통합된 유럽 내 동등한 권한을 가진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려는 의지로 충만한 가운데, 독일 국민은 자신의 헌법제정권력을 근거로 이 기본법을 제정한다. 바덴-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브레멘, 함부르크, 헤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머른, 니더작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팔츠, 자알란트, 작센, 작센-안할트,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과 튀링엔지방의 독일인은 자유로운 자결로써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성취하였다. 이로써 이 기본법은 전체 독일 국민에 대하여 효력을 가진다.

 미국 헌법전문은 자유와 평화의 일반규정을 담은 52개의 단어로 구성돼 있고, 독일기본법 전문은 48개 단어로 이뤄졌다. 반면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긴 헌법전문을 갖고 있다. ‘이슬람 혁명’의 주요사건을 서술하고, 코란을 직접 인용해 이슬람 율법의 절대 권위를 강조했다. 비자유주의 헌법일수록 특정 역사인식을 정통사관으로 강요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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