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한강 다리 끊고 도망갔지만 조봉암은 의회기록물부터 챙겼다”

17일 제헌(制憲) 72주년을 맞은 가운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을 추모하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작성해 공개했다.

이날 추미애 장관은 “제헌절입니다. 헌법은 한 국가의 약속이고 국민으로서 서약(誓約)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짧은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게시했다.

해당 게시물에서 추 장관은 “이날을 위해 나라의 독립과 건국에 바친 선열들께, 이름없이 전장(戰場)에서 스러져간 영웅들에게, 총알받이와 성노리개로 제국주의 만행(蠻行)에 희생당한 수많은 청춘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한없는 감사를 올린다”며 특히 이승만 정부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봉암을 거론했다.

추미애
제72주년 제헌절을 맞은 17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단문의 글을 올리고 고(故) 조봉암 초대 농림부 장관을 추모했다.(이미지=추미애 페이스북 계정)

조봉암과 관련해 추 장관은 6.25전쟁 당시 이승만은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지만 조봉암은 가족을 지키지 않고 바로 의사당(당시 국회의사당은 現 서울특별시의회가 위치한 건물)으로 달려가 국회기록물부터 챙기고 안전하게 실어날랐다는 식으로 고(故)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조봉암을 비교하는가 하면 조봉암을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사법살인’(司法殺人)을 당한 인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추 장관은 “전시(戰時) 같은 위기시에 누가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보아야 한 인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죽산 조봉암이야말로 진정한 의회주의자, 헌정주의자”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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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고 있는 조봉암.(사진=연합뉴스)

공산주의자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며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을 이끌기도 했던 조봉암은 1956년 소위 ‘진보당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고 1959년 7월3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을 거뒀다.

조봉암은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고, 그해 2월20일 육군특무부대는 조봉암이 양명산과 접선해 북한과 접촉, 정치 자금을 받았으며, 북한의 지령에 따라 여러가지 간첩 행위를 했다고 발표했다.

그의 사후 이뤄진 재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 1월20일 1심과 2심 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한 바 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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