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볼수록 묘미가 있다. 서로 충돌하는 내용들을 되는 대로 붙여 놓으니 그 맛이 오묘하다. 정책의 이름은 골탕이다. 골탕은 고소해야 제 맛인데 이 정부 골탕의 레시피는 특이하게도 다채로운 쓴 맛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집을 팔라더니 양도세는 올린단다. 집을 사려하면 훌쩍 오른 취득세가 기다리고 있다. 보유하고 있으면 ‘따블’로 오른 종부세가 머리 위에 대기 중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가 아니라 사면세가稅歌다.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님께 이런 특명을 내리셨다. “투기성 주택 보유자에 대한 부담을 강화하라” 투기성 주택 보유자라. 이 말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투기성 주택’과 ‘투자성 주택’의 구분이 가능해야 한다. 솔직히 나는 못하겠다(대통령님 한 번 해보세요. 어떻게 하면 이걸 구분할 수 있죠? 비아냥거리는 거 절대 아닙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내친 김에 투기와 투자가 어떻게 다른지 찾아봤다. ‘고교생을 위한 사회 용어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생산 활동과 관련되는 자본재의 총량을 유지 또는 증가시키는 활동을 투자라고 한다. 그러나 투기는 생산 활동과는 관계없이 오직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실물 자산이나 금융 자산을 구입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니 부동산을 구입할 때 그곳에 공장을 지어 상품을 생산할 목적을 지닌 경우는 투자가 될 수 있지만 부동산 가격의 인상만을 노려 일정 기간 후에 이익을 남기고 다시 팔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에는 부동산 투기 행위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부동산에 해당하는 주택은 기본적으로 투기일 수밖에 없다. 가격의 인상을 ‘노려’ 일정 기간 후에 ‘이익’을 남기고 팔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투자는 다른가? 일부러 가격의 하락을 노리거나 이익을 남길 생각이 없는 투자가 있다는 소리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주식도 사고, 금도 사고, 달러도 산다. 그러나 주식 투자라는 말은 있지만 투식 투기라는 말은 없다. 금과 달러도 마찬가지다. 투자와 투기는 현실적으로 구분이 불가능하는 말씀이다. 아, 이런 구분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

비非거주 다주택자를 일망타진하라

해서 대통령의 말씀은 이렇게 들어야 한다. ‘비非거주 주택 보유자에 대한 부담을 강화하라’. 즉,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올려 핍박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집 여러 채 가진 사람이 미운 것이다. 미우니까 징벌 수준의 세금을 때려 이익의 실현을 차단 혹은 탈취하겠다는 말씀이다. 그게 먹히면 오죽 좋으랴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세금을 올리신다? 주택 보유자는 바보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그 즉시 전셋값을 올려 대응한다. 그럼 올라간 세금만큼 딱 맞춰 올릴까. 계산을 꼼꼼히 할 이유도 의무도 없다. 대충, 막, 세금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올린다. 결국 피눈물은 세입자의 몫이다. 아니 피눈물로 그치지 않는다. 노태우 정부 초기 서울 전셋값이 2년 동안 40%나 폭등한 적이 있다. 절망감으로 자살소동까지 벌어졌다.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이라는 비책으로 전셋값을 주저앉혔다. 비책도 아니었다. 상식선에서 한 거다 물건 값이 오르면 공급을 늘여 물건 값 상승의 심리적 발목을 잡는 것이다. 답이 보이는 길, 쉬운 길을 놓고 안 가본 길, 험한 길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오기다. 그러나 말한 대로 이건 불똥이 엄한 곳으로 튄다. 이거 모를 리가 없으니 결국 목적은 세수 확보라는 매우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세금을 올리고 싶은데 눈치가 보이니까 부동산이라는 핑계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들린다. ‘세금을 올리겠습니다’와 ‘부동산 안정 정책을 강화하겠습니다’ 어떤 것이 더 듣기에 정의로운가. 해서 현재의 언론보도는 일단 프레임부터 다 바꿔야 한다. ‘부동산 정책으로 서민들만 더 힘들어져’가 아니라 ‘정부의 증세 정책, 이번에는 부동산으로 이동’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실 이래야 이해하기가 더 쉽다. 끝까지 개개면서 집 안 파는 청와대와 여당 일부 인사도 할 말이 생긴다. “세금을 더 내라는 말로 알고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이러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어때요? 해당 공직자 여러분, 제 말이 맞죠? 집 팔기 싫고 그냥 세금 내고 싶죠? 제가 이렇게 말해주니까 고맙죠?

돈 없는 사람이 집을 사라는 코미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사기라는 것은 이 정책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기 때문이다. 집은 돈 있는 사람이 산다. 돈 없는 사람에게 집을 사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자존감 훼손 고문이다. 정부는 ‘생애최초특별공급’을 민영주택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맞벌이 가족 3인 기준 월 소득이 555만 원 미만이어야 신청이 가능하다. 2018년 기준 대기업 평균 월급이 501만 원이다. 한 사람이 대기업을 다니면 나머지 배우자는 절대 대기업, 중소기업 같은 데 다니면 안 된다. 어디 편의점 같은데서 딱 월 53만 원만 벌어야지 자격이 생긴다. 이 상황에서 대기업 다니는 한 쪽이 승진이라도 하면 큰일이다. 계속 무능하게 적당히 일해서 자기 수입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코디미가 어디 있는가(그럼 주식은? 주식으로 차익이 생기면 수입에 합산되나? 해당부처에 물어봐도 아마 모른다 할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 집을 못 사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는 얘기도 사기다. 돈 없는 사람이 어찌어찌 집을 사거나 분양을 받으면 이번에는 잔금이 기다리고 있다. 이게 또 난이도가 높다.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에서 6억 짜리 집을 분양 받으면 대출은 집값의 40%다. 2억 4천만 원은 빌려주지만 나머지 3억 6천은 알아서 마련해야 한다. 월급으로 돈 모아보신 분들은 다 알 것이다. 1년에 3천 만 원 모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단순 산수로도 12년을 모야야 그 집에 입주할 수 있다. 입주 못한다는 얘기다. 대통령님 제발 돈 없는 사람 그만 괴롭히세요. 돈 없는 것만으로 힘들고 서럽고 정말 기분 거지같은데 이렇게 정신고문까지 하면 안 되잖아요.

대한민국의 다주택자는 단결하라

러시아발 미국인인 에인 랜드의 소설 ‘아틀라스’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부조리한 사회에 반기를 들고 기업인과 지식인들이 일제히 잠적한 후 자신들만의 아틀란티스를 건설하고 지식인의 파업을 선언한다는 내용이다(읽지는 않았다. 너무 길다). 내가 당사자라면 통쾌하고 신날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의사들의 파업, 항공기 조종사들의 파업, 철도 기관사들의 파업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자신들의 수고와 전문성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의무만 가중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애로 상황을 전달할 방법은 파업밖에 없다. 다주택자도 그렇다. 이익을 노려 집을 산 것은 맞지만 대신 그 집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거주의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다주택자들이 이익 목적이 아니라 단지 수집으로 취미로 집을 사 모으기 시작한다면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혹시 에인 랜드가 2020년 대한민국에 살았더라면 이런 소설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전국의 다주택자들이 전세 기간이 끝나는 그 날부터 세입자를 받지 않고 그 집을 그냥 빈 집으로 놀리는 것이다. 전세 살던 사람들은 갈 곳을 잃고 경제 활동 인구가 사라진 대한민국은 공황상태로 돌변한다. 원룸 거주 대학생들은 왕복 4~5시간짜리 통학을 해야 하고 다세대 주택에 살던 단순 노무직들은 거리로 나 앉아야 한다. 다주택자들도 출혈은 있다. 그러나 조금씩 피 빨리다 죽는 거나 바로 죽는 거나 죽기는 매한가지다. 어차피 이 정부의 세금 강탈 정책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나기도 힘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 보게 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대통령의 절친인 전前대통령은 ‘운명이다. 미워하지 마라’ 유언을 남겼다. 몇 줄 더 추가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 ‘시장과 싸우지 마라. 가격을 잡는 게 아니라 서민을 잡는다’ 어린 애처럼 오기만 부리는 대통령과 패기만만한 국토교통부 장관님의 얼굴을 보면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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