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앤수첩/박순종] 故박원순과 ‘무죄추정’...증언에만 의존한 ‘위안부 운동’도 재검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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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7.15 11:02:26
  • 최종수정 2020.07.1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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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좌파 진영...故박원순 시장 사건에는 ‘무죄추정의 원칙’ 들이대
‘무죄추정의 원칙’·‘증거재판주의’ 등 근대 형법의 대원칙에 비춰볼 때 ‘일관된 진술’조차 없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 문제 있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좌파가 근대성에 눈 뜬 이 기회에 전면 재검토 나설 때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의 입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말이 나오게 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지난 10일 오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 가운데 그가 지난 4년여에 걸쳐 자신의 여비서를 지속적으로 성추행해 온 사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한 좌파 진영의 반응이었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 대화방 초대 문자를 공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형사 소송에서의 피고가 재판을 통해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고한 것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죄형법정주의’(죄와 형벌은 법률로써 미리 정해진 바에 따라 다뤄진다는 원칙), ‘증거재판주의’(유죄 확정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는 원칙)와 함께 근대(近代) 형법의 대원칙 중 하나다.

하지만 성범죄와 관련한 재판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내밀한 장면에서 사적으로 이뤄져 증거 수집이 까다롭다는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한 우리 재판부는 피해를 주장하는 이의 ‘일관된 진술’을 증거로 채택해 종종 ‘유죄’를 선고해 왔다. 이는 최근 등장은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 내지는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라는 식의 페미니즘 진영의 선전 구호에 우리 재판부고 적극 호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형사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진술과 주장을 우선시하는 관점을 ‘피해자중심주의’라고 한다. 박원순 시장 사건에서 우리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해 온 바로 ‘그들’이 이번에는 가해자로 추정된 고(故) 박원순 시장의 입장에 서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든지 ‘증거재판주의’와 같은 근대 형법의 원칙을 그들이 모르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됐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면 궤변일까?

우리는 박원순 시장의 사건에서 좌파 진영의 위선을 똑똑히 봤다. 그들이 ‘피해자중심주의’를 그토록 외쳐왔던 것도 정말로 피해자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피해자를 내세워서 여러 이슈를 선점하고 그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워왔다는 사실도 분명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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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 등 《반일종족주의》 저자들을 고소하겠다고 한 데 대해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등이 송 의원을 맞고소할 방침을 밝힌 기자회견에서 류석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저서 《25년간의 수요일》(오른쪽)과 한국정신대문제연구소가 펴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집 제1권(왼쪽)을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를 다시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원류로써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야말로 ‘피해자중심주의’를 이 땅에 처음으로 소개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1년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주장한 고(故) 김학순 씨의 증언을 보자.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은 자신의 저서 《25년간의 수요일》(2016)에서 고(故) 김학순 씨와 관련해 “(김 씨는) 열일곱 살 때 중국 베이징에서 납치되어 일본군 300여명이 있는 소부대로 끌려갔다”고 했지만, 생후 백일도 채 안 돼 아버지를 여의고 열다섯 때 기생을 키우는 양아버지에게 40원에 팔려간 후, 나이 제한으로 인해 조선에서의 기생 영업이 불가한 탓에, 양아버지 손에 이끌려 중국으로 가게 됐다는 생전(生前) 김 씨의 증언이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997) 증언집 제1권에 버젓이 실려 있다.

길원옥(92) 씨와 관련해서도 윤미향 의원은 자신의 저서에서 길 씨를 공장 취업을 미끼로 끌려간 사례로 소개했지만 정작 길 씨는 자신이 다녔던 평양의 기생 권번에서 알게 된 친구들을 만나 ‘중국에 가면 편안하고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노래나 하고 술을 파는 정도의 일을 생각하고 북(北)중국으로 향했다는 증언을 했다.

이용수(92?) 씨는 어떨까? 이 씨가 내놓은 증언들은 계속해 번복돼 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 現 정의기억연대)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 초기 시절인 지난 1993년 이 씨는 1944년 10월 ‘일본군 위안부’가 돼 이듬해 1월부터 종전 때까지 하루 5, 6명의 군인을 상대하며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증언했지만, 수 년이 지난 후 이 씨의 증언은 1942년 14세의 나이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시작했으며 하루 20명에서 70명에 이르는 군인을 상대했다는 식의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씨가 ‘일본군 위안부’가 된 과정과 관련해서도 이 씨는 지난 2018년 프랑스 의회 증언에서 “일본군이 등에 칼을 꽂았다”고 했지만 그의 초기 증언은 “국민복에 전투모를 쓴 일본인 남자가 건네준 옷 보퉁이 속에 있는 빨간 원피스와 가죽 구두에 마음이 혹해 다른 생각도 못 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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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호소해 온 이용수 씨가 지난 5월25일 개최한 세 번째 기자회견.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이 씨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정의기억연대를 향해 ‘시키는 대로 증언을 했는데 왜 나를 보호해주지 않느냐’는 식의 서운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와 같이 우리가 대표적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알고 있었던 이들의 증언은 계속해 바뀌어왔다.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 사실을 갖고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해 일본을 피고로 세워 재판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일관성이 없는 증언들’은 증거로 채택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군이 총과 칼을 내세워 조선의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직접적인 물증조차 없는데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이들의 증언조차 일관되지 못 하니, 제3자의 입장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 사실을 선뜻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5월8일 한겨레는 정의기억연대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어느 관계자의 말을 빌어 “이 할머니(이용수 씨)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키는 대로 증언을 했는데 왜 나를 보호해주지 않느냐’고 서운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 씨의 잦은 증언 번복이 모종의 압력과 관계돼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제주도에서 조선의 여성들을 사냥해 ‘일본군 위안부’로 데려갔다는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증언을 소개한 아사히신문의 보도는 이미 신문 스스로가 ‘오보’임을 인정했다. 지난 1996년 작성된 유엔(UN) 여성폭력문제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보고서도 요시다 세이지의 주장을 채택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호소한 이들의 증언을 물증의 뒷받침 없이 수용했다는 점 등에서 객관성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태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증거” 운운해 온 좌파 진영 스스로가 박원순 시장 사건을 계기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눈을 뜻 것 같다. 당신들이 말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다면 구(舊) 일본군은 아직 ‘무죄’다. 이번 기회에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리고 우리 함께 검증해 보자—당신들의 운동이 ‘국제 사기극’이 아니었음을!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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