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 매듭 끊듯이…비핵화 큰고리 끊으면 나머지도 자동"
北은 정작 '핵폐기·韓美훈련인정' 침묵, 靑만 대북 저자세 여전

 

최근 문재인 정권이 4월말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함께 '6.25 종전선언'과 이른바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에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지난 14일 청와대는 직접 해당 의제들을 단계적으로가 아닌 아닌 일괄 타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4일 "지금까지 점층적으로 (북핵) 대화를 해왔다면 지금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복잡하게 꼬인 매듭을 하나씩 푸는 방식이 아니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나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알렉산더 대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매듭을 단칼에 잘라 풀어버린 전설에서 나온 말로, 한꺼번에 풀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를 비유하는 말이다. 문제 해결 방식의 혁신이나 '승부수'를 뜻하는 한편 과정 생략의 위험성을 지적할 때 인용되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더 큰 고리(비핵화)를 끊어버림으로써 다른 문제(종전선언, 제재 완화 등)들을 자동적으로 푸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추진됐던 '선(先) 비핵화, 후(後) 체제보장'의 단계적 접근 대신 북한이 할 '숙제'와 '보상'을 한꺼번에 거래하는 포괄적 방식을 시사한 것이다.

지금까지 비핵화 해법이 '협상→합의→검증→파기→도발'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는 데에서 청와대는 비(非)단계적인 '일괄 타결'의 명분을 찾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선 철저한 검증이 따라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그동안 협상과 검증을 여러 단계로 나누는 '살라미' 전술로 비핵화 조치를 교묘하게 회피, 6자회담 등 합의도 파기해 온 북한이 '믿을 수 있는 협상 상대'인지는 미지수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 폐기 여부 등과 관련 스스로의 입장도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드러냈다거나 한미 연합군사훈련 실시를 이해했다는 입장은 북측에서 일체 밝힌 적이 없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 특별사절단의 '입'을 통해서만 국내와 북핵문제 당사국 등에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김정은의 입장을 직접 청취한 인물은 특사단 요인 5명 뿐이다.

김정은이 지난 5일 특사단과의 만찬에서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NSC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며 "오늘 결심했으니 문 대통령이 더 이상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는 격려와 함께 도발 중단을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한국에 남아있던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거친 후일담에 불과하다.

청와대는 이처럼 남북 정권간 우호 분위기를 조성할 만한 '미담'은 적극 퍼뜨린 반면 김정은이 자신을 '땅딸보'라고 칭하며 농담했다는 동아일보 등 보도에는 즉각 "오보"라며 발끈했다. 이때 김의겸 대변인은 "어렵게 만들어진 한반도 긴장 완화 분위기를 해치는 보도를 삼가달라"면서 "특사단과 김 위원장 간 만찬에서 오간 가벼운 이야기는 참석했던 다섯 명의 특사만 알고 있다"는 이유를 댔다. 

이는 '미담'을 스스로 대신 전할때와는 판이한 행태인 것은 물론, 북측의 심기를 적극 살피고 있는 태도도 엿보인다. 집권 이후 계속 비판을 받아온 대북 저자세가 여전한 가운데,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즉 핵 폐기를 북한에 진정으로 압박·종용할 수 있다는 신뢰를 보내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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