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北김정은, 국군포로에 배상하라”
국군포로 존재 부정해온 北에 대한 반박
北은 민사적으로 비법인사단 임을 확인
6.25전쟁이 파시즘진영의 범죄 확인한 셈
잊혀지던 6.25 전쟁 의미 환기
노병은 결코 죽지 않지만, 그들이 편히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책임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을 전체주의 체제로부터 지킨 맥아더 장군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어릴 때 맥아더 장군의 이 말에 묘한 느낌을 가졌다. ‘죽지 않는다’는 말 뒤에 ‘마음속에 살아있다’ 혹은 ‘다시 온다’ 같은 강력한 반대 의미적 문장이 올법함에도 어찌 보면 ‘죽는다’와 맥락을 같이하는 ‘사라진다’?

그렇다고 이 말에 ‘노병은 이제 존재감조차 없다’같은 느낌도 없다. 현역군인 같은 강건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쓸쓸한 이미지도 없다.

맥아더 장군의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엊그제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때문이다. 국군포로 2명이 북한과 김정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은 김정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위 국군포로 2명에게 각 2,1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지만 그 의미를 분석해보자면,

1. 손해배상의 대상은 강제노역에 따른 피해배상이다. 비록 전쟁책임에 대한 직접적인 재판은 아니지만, 북한은 공식적으로 국군전쟁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있다.

2. 헌법 제3조에 따라, 북한의 국가성을 부인했다. 북한의 법적 성격에 대해서 민사적으로는 비법인사단이라는 원고의 법리를 확인했다.

3. 일부청구로 들어간 이 소송자체는 완전승소 판결이다. 즉 최종 얼마를 배상해야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2,100만 원보다는 이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말하면 추가 소송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4. 이 판결은 사실상 확정됐다. 김정은과 북한이 항소 또는 추완 항소할 가능성이 없어 대법원 판결이 아닌 하급심 판결 확정이지만, 이제 다른 법원이 이를 무시하려 한다면 그 무시를 정당화해야 할 강력한 다른 증거가 있어야 한다.

6.25는 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었다. 국제적 전체주의 파시즘 진영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자신들의 체제로 바꾸기 위해 일으킨 또 다른 인류사적 전쟁범죄라는 것이 본질이고, 그에 맞서 자유를 선택한 대한민국 국민이 피를 흘려 싸워 지켜낸 것이 역사임에도 이 의미는 그동안 완전히 변질 왜곡되어 왔기 때문이다.

소련의 비밀문서가 해제되기 전까지 미국이 전쟁을 유도했다거나 남한이 먼저 침공했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나돌았고, 책임은 도외시하고 민족상잔이라고 ‘물 타기’를 하거나 그것도 안 통하면 ‘노예가 될지언정 전쟁은 나쁘다’ 식의 도저히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해석들이 표정을 바꿔가며 횡행했다. 아니 역사적 진실이 드러났어도 여전히 이런 해석은 정서를 지배하고 있고 그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은 항상 남한의 정치적 쓸모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정서는 파시즘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의 득세와 맞물려 심지어 북한의 모든 행위는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비록 이 판결이 6.25에 관한 어떤 직접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6.25 국군포로가 제기했다는 점, 6.25와의 연장선상에 있는 북한의 위법행위에 대해서 확인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한편, 자유진영도 생각해볼 계기도 됐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건설하고 다듬은 것은 소위 ‘보수’진영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법치주의를 이용해 법적투쟁을 벌여왔던 것은 좌파진영이었다. 법적 영역을 확보하고 난 다음 무력(꼭 그것이 폭력이 아닌 정치적 힘이라 할지라도)을 동원했던 것이 나치 히틀러의 독재과정이었다.

2,100만 원 받자고 노병이 소송을 건 것은 아닐 것이다.

이 판결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의 말을 나는 새롭게 느낀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지만, 그들이 편히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단지 소송에서 이겼다는 것을 넘어 자유대한민국을 위한 마지막 노병의 전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우리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