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 사람답게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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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7.08 09:17:16
  • 최종수정 2020.07.08 11:23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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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각종 변명으로 새로운 귀족층 만들어 내고 있어
어렵게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이 망국의 흙탕물 속에 씻겨 내려가지 않을까 우려

코로나에 관한 불안도 문재인 독재에 대한 분노도 말끔히 잊을 수 있는 즐거운 하루를 모처럼 보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우리 부모님 댁에서 20년, 그 후 우리 남매들 집을 돌며 또 10년, 가사를 도우면서 한 집안 식구가 되었다가 이제는 은퇴하여 고향에서 살고 있는 '곰세마리' 아주머니의 초청에 드디어 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기도 쾌적하고 고창으로 달리는 먼 길도 한적하기 짝이 없었던 것은 코로나와 문재인의 실패한 경제정책 양대 재앙에서 발생한 역설적인 '혜택'이 아니었던가 싶다.

쾌활한 성격 때문에 애들이 '곰세마리'라는 별명을 붙였던 이 여사는 사실 찌들게 가난한 가정에서 계모 까지 잘 못 만나 동생 하나가 벌받다가 얼어 죽은 일 까지 보며 참아야 했던 모진 어린 시절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뿌리는 건강했다. 결혼 후 4남매를 낳고 겨우 살만한 터전을 마련했지만 중학교에 가기 위해 광주 친척집에 기숙하던 큰 아들이 빗나가는 기미를 보이자 애들 교육을 위해서는 반드시 도회지로 가야 한다는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가진 것 다 처분해 쪽 방 하나 전세 들 돈을 겨우 마련하여 여섯 식구가 무조건 상경한 것이 80대 초였다. 그 때부터 우리집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노인 내외분에 애들이 셋이나 되는 큰 집에서 생전 처음 파출부로 일한다는 것이 엄두가 안 났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일을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시집가서 겨우 애 둘 키우는데도 힘들어 하는 막내 딸과 같은 나이인데 어쩌면 그렇게 힘든 일도 잘하느냐고 신통해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속으로 눈물이 나고 서울 음식 하는 법을 참을성 있게 설명해 주시는 할머니에게 정을 부쳐 떠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들이 볼 때 그 사람은 마치 날아다니듯 일을 잘 했다. 공사판에서 운전을 하던 남편의 불규칙한 수입도 도움은 되었지만 그보다도 30년 넘는 자신의 꾸준한 파출부 수입으로 애들 4남매를 다 공부 시키고 서울 약수동에 40펑대 아파트까지 마련 할 수 있었다. 막내 딸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재 중국의 푸단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던 1980년대와 90년대는 바로 그런 성공스토리가 가능한 시대였고 바로 이 여사 같은 그런 사람들이 그 성공의 주역들이었다.

법성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창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간 이 여사 부부는 이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30평 넘는 튼튼한 시골집을 증축하여 집채만한 냉장고 두 대에 작은 방만한 냉동고/냉장실까지 갖추고 있는 그 들은 바로 집 앞 에 있는 밭 600여평을 포함해 땅 1000여평을 소유하고 있다. 자식들에게 보내고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재미 밖에 먹을 사람도 별로 없지만 그 땅을 거의 전부 각종의 과일과 채소 밭으로 가꾸고 있다. 그렇게 바쁜 농사일을 하면서도 이웃과 어울려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취미생활도 결코 등한시 하지 않는다. 우리도 내려갈 때는 집에서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을 트렁크에 싣고 같지만 오는 길에는 그 보다 더 많은 먹을거리들로 트렁크를 가득 채워주어 서울서 나누어 주기에도 힘이 들 지경이었다. 이 여사는 이제 베푸는 재미로 여생을 살 수 있는 처지에 있는 것이며 그 사람의 또 한가지 큰 자랑은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기만은 국가로부터 노령연금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여사 내외분만큼 걱정 없이 재미있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 오는 길에 생각해 보았다. 도시에는 거의 없을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고역에 시달리면서도 가난과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고 책상머리에서 앉아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불안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더구나 문 정부 들어서면서부터는 편안한 노년을 위해 아껴쓰며 열심히 준비했던 사람들도 언제 어디서 전세금이나 그 밖의 공공요금 대폭 인상 소식이나 세금폭탄이 날아 올지 몰라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런 것을 보고 사니 젊은이들이 어려움을 참고 이겨 무엇을 이룩하며 뿌리를 내리려 하기 보다는 일년에 두 번 씩도 실업수당을 받는 것이 부끄럽고 한심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언론인, 교수, 예술인, 종교인, 정치인, 또는 공무원처럼 머리와 가슴으로 일을 하며 우리 사회의 두뇌와 심장의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에 이르면 대한민국에서 지금 그들이 겪는 수난의 정도는 경제적 고충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도 경험해본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문재인의 공약이 역설적 현실로 다가오며 흑과 백이 뒤집히는 일이 단지 정치적, 이념적 차원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윤리나 이성적 사고의 영역에서 까지 주객의 전도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며 '민주'가 '독재'의 다른 말이 되고 있으니 지식노동자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죽던가 아니면 물리적으로 죽기를 각오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궁지로 몰리고 있다. 종군위안부로 고난을 겪었던 노인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돌아갈 보상금과 위로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인간이 그 '공로'로 국회의원이 되는 나라이고 온갖 방식의 선거부정이 저질러져도 항의 한번 못하는 삶이 과연 의식 있는 사람들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영혼을 빼앗기고도 살아있는 척 하는 사람들 보다는 그렇지 않은 건전한 사람들, 이 여사처럼 권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자기의 힘으로 일어 났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불안에 떨 일이 없이 인간적으로 정을 나누며 당당하게 살아 갈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임이 틀림없었는데 그것을 깨고 있는 것이 각종 변명으로 새로운 귀족층을 만들어 내고 있는 문재인 정권이다. 우리 대한민국에는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에서 볼 수 있는 인종 차별 같은 고질적인 문제도 고착된 계급구분도 없었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은 아버지의 소판 돈을 훔쳐 가출한 빈농 출신이었고 김우중 회장도 신문팔이 소년으로 경영에 눈이 뜬 사람이었다. 이 여사의 자식이나 손주들은 이 여사의 고용주였던 우리 집안 아이들의 교수나 고용주가 될 수 있는 것이 눈앞의 현실이며 민주주의가 성공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백년도 더 넘게 케케묵고 이미 역사적으로 판정패를 맞은 공산주의 이념에 아직도 매료되어 있는 편집증 환자들이나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낡은 이념을 내세울 뿐 아니라 법을 이용해 불법을 정당화하는 것을 예사로 아는 친북, 친중의 반역자들이나 그것이 사실이 아닌 듯 무시하는 것이다. 세상이 뒤집히는 경우 이기적이고 무책임했던 기득권층이 피해를 보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고창의 이여사 같은 선량하고 부지런한, 인정은 많으나 정치는 모르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절대다수가 정치권력의 무모한 욕심 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이겨내며 어렵게 일구어 놓은 아름다운 삶의 터전마저 통일로 위장된 망국의 흙탕물 속에 씻겨 내려가지 않을 까 하는 것이 가장 뼈 앞은 도덕적 아쉬움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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