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할수록, 순결할수록, 비참할수록 그 피해자는 거대한 권력 갖게 된다
한국인들의 피해자 정서 건드리는 마법의 단어...'세월호' '소녀상' '위안부'
공공선 위한 기여 아닌 얼마나 억울한 피해 입었느냐가 공동체의 가치 기준됐다
좌파 시민단체, 피해자 서사 활용한 거대한 권력 보여줘...가치 전도 현상 극대화
이승만과 박정희는 폄하 대상...김일성과 고종은 그리움 또는 측은지심의 대상
민주당 정치인들, 본능적으로 대한민국 정체성과 모순된다는 것 알아
결코 진정한 주류가 될 수 없다고 느끼는 좌파...그래서 대한민국 정체성 바꾸려는 것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마술램프에 숨어있다가 나타나서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라는 요정이 등장한다. 보물창고의 문을 열어준다는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도 있다. 물론 이런 동화적 상상력과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을 대개 정신질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동화적 상상력이 단순한 상상에 그치지 않는다. 지니와 ‘열려라 참깨’의 위력을 결합한 듯한 신묘한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들이대면 정치적 반대진영을 순식간에 적폐나 토착왜구로 몰아칠 수 있고, 국민의 피땀인 세금도 내 호주머니 돈처럼 쓸 수 있다. 그 신비의 단어는 바로 ‘피해자’이다.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 네거리에는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공간’이라는 시설이 있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 이후 무려 5년 동안 광화문광장을 점거해온 천막 등 시설물들을 철거하는 대신 서울시가 2억 원의 예산으로 세운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의 배경에는 이순신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이 자리잡고 더 가면 청와대가 나온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현재 권력과 과거의 위대한 리더십, 호국의 상징 등과 같은 위치에 놓인 셈이다. 어마어마한 위세이다.

이러한 위세는 김광배 4.16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의 개관식 발언에도 잘 나타난다. 김광배는 광화문광장 남쪽을 ‘4.16광장’이라고 지칭하고 “4.16광장은 적폐청산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염원하는 국민 촛불이 타오른 곳”이라며 “이곳에 열린 기억공간을 세운다는 것은 세월호를 왜곡하고 지우려는 그런 자들에게 시민들의 뜻을 알리는 엄중한 선포”라고 발언했다(펜앤마이크 서울시, 광화문광장에 혈세 2억원 들인 '세월호 기억공간' 개관...시민들 "흉물" 비판).

세월호에 대해서 일체의 비판도 허용하지 않겠다, 혹시라도 비판하는 자에게는 ‘엄중’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선포 또는 협박이다.

세월호 학생들은 적폐청산을 위해 희생당한 게 아니다. 그냥 수학여행을 가다가 해상 교통사고로 희생당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너무나 어렵고, 무엄하고, 위험한 행위가 되었다. 훌륭한 업적을 이룩하는 것보다 비참하게 피해를 입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전도된 논리가 아무 근거도 없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억울할수록, 순결할수록, 비참할수록 그 피해자는 거대한 권력을 갖게 된다. 수많은 시민들의 가방이나 차량 뒷유리를 장식했던 노란리본 마크가 그 권력을 단적으로 증거한다.

세월호보다 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한국인들의 피해자 정서를 건드리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소녀상’이다.

‘종군 위안부’ 여성들 대다수가 ‘소녀’라고 불릴만한 연령대였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록이라고 평가받는 미군의 위안부 심문보고서는 그들의 평균연령을 25세라고 기록하고 있다. 위안부 생활을 시작했던 시점에 그들이 대개 십대 소녀였을 것이라고 볼 근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부부는 자신들의 미성년자 딸을 소녀상 조각의 모델로 삼았다. 실제로 이들 부부의 조각에 표현된 소녀는 아직 볼살이 통통한 초등학생의 용모이다. ‘소녀상’이라는 용어와 함께 이런 앳된 용모가 한국인들에게 어떤 피해의식을 자극했을지는 불문가지이다. 억울, 순결, 비참 등의 ‘피해자’ 서사에 최적의 요건이 갖춰진다.

이런 피해자 서사는 거대한 권력과 이권을 창출해낸다. 윤미향과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이 구멍가게 수준도 못되는 회계관리와 구멍이 숭숭 뚫린 도덕성을 갖고도 막대한 후원금과 국가예산을 끌어왔다는 것, 이 나라의 내로라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그런 파렴치한 조직의 배경이 되어주었다는 것에서 피해자 서사의 위력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피해자 서사는 대한민국을 지켜오고 발전시켜온 중요한 전제조건인 한·미·일의 안보 및 경제협력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가장 반길 세력이 북한 김씨조선과 중국 정권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세월호 피해자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불행 역시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불행의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높은 사회적 역사적 평가를 안겨주는 데 따른 비용이다. 시민 후원금 또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등은 그 금액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해도 부차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세월호나 위안부 등 피해자 서사에 매달리면서 지불하는 진짜 비용은 우리 사회의 가치 전도 현상이다. 국가나 사회 등 공공선을 위해 얼마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억울하게, 얼마나 비참하게 피해를 입었느냐가 공동체의 가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이런 가치 전도 현상이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국의 소녀상은 124개에 이른다. 해외에도 9개의 소녀상이 세워졌고, 소녀상의 자매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징용노동자상도 늘어나고 있다. 조각상 설치의 탈법 시비가 끊이지 않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역시 피해자 서사를 활용한 거대한 권력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하지만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동상은 국회중앙홀 앞에 있는 것이 대표적이고, 나머지는 철거와 페인트 뿌리기 등의 수난을 겪으며 대한민국에서 서 있을 자리를 찾기 힘든 실정이다. 산업화를 상징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 역시 끊임없는 철거 및 훼손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위인에 대한 폄하와 공격에는 이들의 온갖 악행(?)에 대한 트집과 공격만 있을 뿐 이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이룩한 건국과 산업화에 대한 평가는 전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조금만 편견을 내려놓고 보면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희생자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생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한번 비교해보자.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단적으로 말해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세월호 희생자와 위안부 할머니에게도 우리는 이렇게 빚지고 있는가? 혹시 그들이 우리에게 빚지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누구를 기념하고, 누구를 더 기억해야 할까.

이런 대조는 이승만, 박정희를 한편으로 하고, 김일성과 조선 망국의 군주 고종을 한편으로 했을 때 더욱 극명해진다. 현재 우리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은 세력들에게 이승만, 박정희는 거의 악마와 같은 취급을 당하지만 김일성과 고종은 아련한 그리움 또는 측은지심의 대상이다. 억울하게 쫓겨난 군주를 향한 충신들의 복벽(復辟) 시도라고 느껴질 지경이다.

이런 가치 전도 현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적인 국가 구조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한민국 자체가 구한말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근대화라는 가치를 놓고 우리 민족이 피땀 흘리며 쌓아온 가치의 현실적 구현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가치 전도 현상은 바로 그 가치에 대한 도전이자 전복 시도이다. 이런 음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6월 16일자 조선일보 황대진 칼럼 [동서남북 : 민주당은 아픈 것일지도 모른다]에는 민주당 정치인들의 마이너리티 의식과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은 아직도 자신들을 '약자'라고 여긴다. 당 대표를 노리는 한 의원은 "힘이 약한 자의 무기가 정치"란 말을 요즘도 한다. 이제 민주당이 압도적 강자라는 지적에 다른 중진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우린 그게 잘 안 된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마이너리티 의식은 거대한 지지층이나 국회 의석 그리고 어마어마한 정치권력 등으로도 해소될 수 없다. 그들의 마이너리티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정당성에 관한 불안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가 본질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모순된다는 것을 이들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위안부 vs. 이승만·박정희의 극명한 대조와 가치 전도 현상은 바로 민주당 등 좌파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꿔야 할 필요성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는 한 그들은 정치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고, 결코 진정한 주류가 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정체성 전복의 필요성에 동원된 것이 세월호와 위안부이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문제를 느끼는 사람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북한 김씨조선과 중국은 아마 우리 대다수보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훨씬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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