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환진 씨(정규재TV 방송화면 캡처)
여환진 씨(정규재TV 방송화면 캡처)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은 ‘근대(modern)’의 공격을 받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은 1894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고종은 1897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나라의 이름을 바꾸고 스스로를 왕에서 황제로 격상시킨다. 공작새가 깃털로 자신을 위장하듯 허약한 청나라가 인정한 조선 대신 러시아풍의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일본은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근대를 거부한 대한제국을 역사에서 지웠다. 1910년 일본은 공식적으로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

근대를 거부했던 한반도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좋든싫든 일본을 통해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였다. 1945년의 해방에 이어 1948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대한민국을 세우고 1960년대부터 박차를 가한 놀라운 경제적 성취까지 이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 역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다양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분노로만 과거를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스스로를 '모던보이'라고 부르는 여환진 씨가 지난 40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1890년부터 1945년까지의 한반도 모습을 담은 7만 여장의 사진 자료는 일방적으로 오염된 우리의 역사 인식을 씻겨주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건축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여환진 씨(50)는 현재 중국에서 게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20년 이상 해외에서 사업을 하면서 근대 한반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 자료를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수집해왔다. 여 씨의 사진들은 그 양과 질에서 대한민국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그의 사진 자료는 정부가 운영하는 역사박물관이 소장한 양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다. 대한제국으로 파견 온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공사들이 본국으로 찍어 보냈던 사진들을 주로 수집해 역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자랑한다.

여환진 씨는 “역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지옥처럼 묘사하지만 막상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은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은 자기 생활에서 재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던 1910년부터 1945년 역시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랜 기간 사진 자료를 수집하면서 알게 됐다. 당시의 역사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사진 자료는 ▲조선시대 남대문 전경 ▲정동에 있던 옛 프랑스 공사관 ▲장로 선교회가 만든 마을 ▲1900년대 초반 명동성당 ▲1907년 경성 박람회 탑 ▲1920년대 서울 용산 대홍수 ▲1930년대 후반의 캠핑 열풍 ▲영등포 맥주 공장 ▲한반도에 들어선 삿포로-아사히 맥주공장 ▲1930년대 항공기 열풍 ▲원산 해수욕장-스키장 ▲원산 서구식 별장 및 골프장 등 한반도의 다양한 지역을 담고 있다.

여환진 씨는 2일부터 정규재TV를 통해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사진 자료들을 잇달아 공개할 예정이다. 여 씨는 1926년에서 1937년 태평양 전쟁 시작 전까지 근대의 바람이 불었던 한반도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100회에 걸친 장기 강의로 나눠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평소 정규재 선생님을 좋아했는데 우연히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송 제의를 받았다”며 “심층적이고 무거운 주제가 많은 정규재TV에 편안하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흔쾌히 응했다”고 말했다.

윤희성 기자 uniflow@pennmike.com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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