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제13대 주한 교황대사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1비서를 지낸 알프레도 수에레브 몬시뇰이 임명되었다. ‘몬시뇰’(Monsignor)이라함은 원로 성직자 중 덕망이 있는 신부에게 교황청이 부여하는 호칭이다. 수에레브 몬시뇰은 1958년 생이며 1984년 서품 받은 후 라테라노 대학교, 교황청 국무원을 거쳐 전임교황 베내딕토 16세의 제2개인비서를 지냈고 2013년부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제1비서를 지낸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수에레브 몬시뇰은 주한 교황대사로 임명되면서 대주교로 승격되었다. 수에레브 대주교는 평소 교황청에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할 정도로 겸손하고 소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임 오스발도 파딜라 대주교 이후 6개월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외교관 경력이 전혀 없는 인사를 교황대사로 임명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임 주한교황대사는 1951년 이후 단절된 중국과 바티칸 간의 수교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바티칸은 중국이 아닌 타이완과 1942년 이후 국교를 맺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운 중국과 바티칸이 수교할 경우 타이완과의 외교 관계를 포기하느냐가 교황으로선 딜레마다. 타이완 내 가톨릭 신자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국가 수반이기 때문에 교황이 중국의 주교를 임명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 주장해 왔다. 중국 정부는 1957년 이후 중국의 가톨릭 신자를 관리하기 위해 ‘중국 천주교 애국회’를 만들었고 주교와 신부를 중국 정부가 임명해 왔다. 그러나 교황청은 ‘중국 천주교 애국회’ 소속 교회와 주교활동을 인정하지 않았고 수많은 중국 가톨릭 신자들은 지하교회에 속하여 활동해 왔다. ‘주교 임명권’은 중국과 바티칸이 1951년 외교를 단절한 최대 원인이었다.

현재 중국 가톨릭은 교황이 임명한 40명의 주교가 관장하는 '지하 교회'와 중국 정부가 임명한 7명의 주교가 이끄는 '공식 교회'로 이원화돼 있다. 공식 교회는 '중국 천주교 애국회' 소속으로 철저히 공산당 통일전선공작부의 통제를 받는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하 교회 교인들과 교황이 임명한 주교들은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지금도 감시와 투옥이 되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청이 지난 1년 반 접촉을 통해 주교 임명권에 대하여 중국 정부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77년에 일어난 신성로마 제국 하인리히 4세 황제가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에 굴복한 카놋사의 굴욕에 반대되는 역(逆) 카놋사의 굴욕으로 비유될 수 있다. 교황이 ‘시황제’로 불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굴복한 것이다.

바티칸의 중국과의 화해 노력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지하 교회 주교 2명의 교구를 교황청이 2011년 파문까지 했던 애국회 주교들에게 양보하라고 지시하자 홍콩의 조셉 젠(陳日軍) 추기경(86)은 "예수에 대한 배신이고 교회를 팔아넘기는 행위"라며 맹비난하였다. 첸 추기경은 또한 “교황이 중국지도자들의 본성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해 지하교회를 배신하는 추악한 협의를 하였다.”고 말하였다. 또 이달 중순엔 홍콩의 인권·학계·가톨릭 인사 15명이 "공산당이 임명한 7명의 주교를 인정하면 '제한적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고 교회의 도덕적 권위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공개서한을 전 세계 주교들에게 보냈다.

미국 정부도 교황청의 주교 임명 '사후(事後) 승인'이 인권과 종교 자유 문제에서 중국 정부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교황청은 '지하 교회' 신자를 보호하고 중국 가톨릭의 통합을 위해선 화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천주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구분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말로 교회와 국가의 고유한 역할을 구분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2005년에 발표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God is Love) 28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구분합니다. (마태오 22, 21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표현대로 ‘현세 사물의 자율성’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신앙의 사회적 표현으로서 고유한 독립성을 지니며, 국가가 인정하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그 신앙의 토대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국가의 권력을 빼앗으려고 해서도 안 되고 빼앗을 수도 없듯이 국가도 교회의 고유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특히 예수를 따르던 열두 제자의 ‘사도적 사명’을 계승하는 주교는 교황만이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중국에 한해서 임명권을 양보한다는 것은 가톨릭교회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것이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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