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재 칼럼] 자유(FREEDOM)와 지혜(WISDOM)를 향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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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6.27 09:21:15
  • 최종수정 2020.06.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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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팔이들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안 하는 것에 '열 받아서'
우파 진영이 지난 역사, 특히 승리의 역사마저 외면한다면 남는 것은 '저들의 역사'뿐
어떻게 승리의 기억 만들어 관객에게 제공해줄 수 있을까 고민
보수의 민낯은 여전히 변함 없다...답이 없는 공허한 외침만이 떠돌고 있어
역사든 뭐든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승리의 DNA를 복원시켜라!

지난 20일,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서초동 아스팔트 위는 ‘선거조작(부정)’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광화문에서 보았던 익숙한 풍경들이 변함없이 서초동으로 이동한 모습이었다.

서초역 4거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 풍경들 사이로 조금은 특별한 움직임 하나가 있었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승리의 역사를 되새기자는 자그마한 문화축제였다.

이 축제의 시작은 다소 황당했다.

속된 말로 ‘열.받.아.서’ 만든 축제였기 때문이다.

자유진영 출판사인 ‘프리덤 앤 위즈덤’ 대표에게서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파로호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냐는 뜬금없는 질문이었고, 우한폐렴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문화계의 상황에서 도저히 진행을 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

알아보니 우한폐렴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올해가 625전쟁 70주년 기념일인데 정부던 민간이던 이렇다 할 행사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올해 70주년을 맞아 3월 26일 천안함 10주년 기념행사를 대규모로 기획했었고, 작년에 이어 ‘파로호 페스티벌’을 다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했었고, 625 전쟁 70주년에 멋드러지게 자유진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승리의 축제를 기획했지만 전부 무산되어 버린 상태였다.

모든 행사가 멈춘 상태에서 자금의 회전이 막혀버린 필자에겐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라며 열 받아서 가만 못 있겠으니 돈은 자기가 댈테니 무조건 하자는 말을 듣고 시작된 행사였다.

그렇게 또 홧김에(?) 그렇게 안보를 외치던 안보팔이들이 하지 않는 ‘파로호 승전 페스티벌’과 ‘천안함 프로젝트’에 이어 세번째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다.

필자가 이런 행사들을 치르면서 가진 확고한 주제는 하나였다.

보수우파진영에서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승리의 DNA’를 복원시키자였고, 그 세번째 행동 역시 안보팔이들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안 하는 것에 대해 ‘열 받아서’ 하게 된 것이었다.

승리의 DNA를 밈(meme)으로…

제일 큰 문제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전쟁의 영웅들을 모셔야 하는 자리임에도 모실 분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모두들 운명하셨거나 너무 연로하셔서 행사에 모시기가 힘든 상태들이었다.

그렇게 승리의 역사를 증언해 줄 산 영웅들이 스러져 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은 더 급해졌다.

다행히 93세의 나이에도 아직은 정정하신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 최영섭 함장님을 모실 수 있었고, ‘연평해전’의 영웅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이신 김한나 선생님과 천안함생존자전우회의 전준영 회장님을 모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선 후배 영웅들을 모두 모실 수 있었다.

둘째는, 이들을 모시고 승리의 DNA를 끄집어 내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이 그것을 끌어내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고령의 최영섭 함장님은 현재의 안보위기를 걱정하시고, 김한나 선생님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십년이 넘도록 애타게 외치시고, 전준영 회장님은 살아남은 영웅들의 고통과 그로 인해 정신적 치료를 받고 있다는 비참한 현실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승리의 기억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제공해 주느냐가 행사를 주관하는 필자의 최대 난제였다.

필자에겐 그것이 가장 필요했으며,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지금 보수우파진영은 지독한 패배주의에 절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필자이기에, 반드시 자유진영의 DNA속에 존재하는 승리의 기록들을 다시 기억해내고 인지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피로 쓰여진 이름이 ‘자유’라면 으레 이 땅에 처음으로 쓴 자유의 이름은 ‘625’여야만 했고, 휴전이나 정전을 넘어 이것이 보수진영이 기억하고 인지하는 첫 승리의 기록이어야만 했고, 연평해전과 천안함 모두 승리의 기억으로 DNA에 각인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그 승리의 DNA를 문화로 포장해 대중에게 밈(meme)으로 전달하여, 자유와 대한민국에 대한 프라이드를 되찾을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늦어버린 역사는 왜곡된, 혹은 거부된 역사와 같다. (‘라스트 풀 메저’ 영화대사 인용)

보수진영이 지난 역사, 특히 승리의 역사마저 이렇게 외면한다면 남는 것은 저들의 역사뿐이다.

이미 그들은 김원봉을 넘어, 홍범도를 끌어왔고, 박상실과 김일성마저 끌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필자의 흔적을 뒤져보니 이미 7년 전부터 김원봉을 막아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보수진영은 여전히 욕만 해댈 뿐 여전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필자는 ‘선거부정’을 규탄하는 서초동 한 가운데에서 승리의 DNA를 밈(MEME)으로 만드는 문화인 본연의 모습에서 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필자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필자의 걱정은 한순간에 녹아 버렸다.

자신들만의 DNA에서 다양한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는 MEME의 조화가 이뤄지다.

우한폐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오지는 못할 거라는 판단을 지레 가지고 행사준비에 임했지만, 행사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다.

물론, 전쟁영웅들을 보시고자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개그맨 김영민씨나 PTL, 벌레소년 등 자유우파의 몇 안되는 문화인들을 보기 위한 팬들도 행사장을 찾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두 조합은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이뤄냈다.

영웅들을 보러 온 분들은 우파의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을 보며 즐거워했고, 문화인들을 보기 위해 오신 분들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과 함께 승리의 기억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우파라 말하는 이들의 핏속에, 뼛속에 그렇게 들어있던 승리의 DNA가 꿈틀대고 있었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승리를 기억을 기뻐하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문화인들이 제공하는 기쁨의 공연을 즐겼다.

연평해전을 추모한 작품 ‘3KG(펜앤마이크에서 해군에 기증한 작품)’을 만든 순수예술계의 유일한 우파작가 ‘전시중 김작가’님이 그린 작품도 첫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이 작가와 전쟁영웅들,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죄송하게도 이것은 필자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평소 같으면 PTL(힙합그룹)이나 벌레소년(랩그룹+댄서팀) 등의 젊은 청년들 취향의 시끄러운 음악이 들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달랐고, 최영섭 함장님 같은 어르신들의 기나긴 과거 얘기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젊은이들이 보이질 않았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를 쓰고, 심지어 발열체크도 모자라 발열체크 스티커까지 붙여 가면서 모인 그 공간은 말 그대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웅들과 문화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승리의 기억을 나누기에 바빴다.

프리덤 앤 위즈덤 출판사에서 출간한 자유진영 책 5종도 예상과 달리 모든 관객들이 한권 이상씩 사가며, 필진들이 정신없이 사인을 해주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짜로만 책을 가져갔지 죽어도 돈 주고는 책을 안 사던 기존의 풍경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창 태극기집회를 달궜던 우파 뮤지션 벌레소년에게서는 팬덤현상까지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은 필자에겐 정말 놀라운 일이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이 땅의 어른들이 물려준 승리의 DNA가 이미 젊은이들에게도 각인되어 있었고, 그것이 언제든 어르신들에게도 MEME으로 변형될 수 있음을 그날 필자에게 보여준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유우파가 이런 대중적 MEME으로 우리의 가치를 전달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었음에도 분명 희망은 그렇게 다시 필자의 가슴 안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는 승리의 MEME을 전파하자!

하지만, 한바탕 승리의 축제가 끝나고 난 후의 보수의 민낯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여전히 답이 없는 공허한 외침만이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지만 그들을 끌어내리 어떠한 방법도 없다.

내려오라고 외치기만 하면 내려올 자들인가?

홍범도는 안 된다고 하면 “네, 아무렴요~” 할 자들인가?

김대중 정부에서 애국가와 625노래가사를 바꾼 걸 비판하면 죄송하다며 원상복구시킬 자들인가?

비판과 비난만 있고,보수진영은 지금 그걸 막기 위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은 없다.

그저 원론만을 분석하고 마치 자신은 세상을 다 아는 양 어깨에 힘주면 세상은 바뀌는가?

그러다 망했다.

보수가 망했고, 아직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대한민국이 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유전자(DNA)는 피로 전달이 되지만, 그 피로 쓴 역사는 문화를 통해 전달되어 MEME이 된다.

그리고, 그 MEME은 유전자라는 한계를 넘어 국민(대중)들의 삶과 생활 속에 전달된다.

그 모습은 매우 무작위적이며, 무대상적이며, 무형태적이다.

보수가 자신들만의 아집에 갇혀 MEME을 터부시하고 있을 때 좌파들은 그곳에 파고들어 대중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었다.

선전선동이라 말하지 말라. 다른 말로 하면 선전선동은 ‘설득’인 것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념가치를 대중들에게 설득하는데 성공한 것이 지금의 문재인 정부다.

진실이니 뭐니도 말하지 말라. 그건 승자의 몫일 뿐이다.

필자에게 보수의 진실이나, 주사파의 정의는 같은 MEME일 뿐이다. 매우 잘못된….

필자는 7년 전부터 김원봉을 막자고 했고, 4년 전에는 박상실, 3년 전부터는 홍범도를 막아야 한다고 외쳐 왔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김대중 정부가 왜곡시킨 애국가를 다시 만들자고 청와대에 제안도 했지만, 그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고 나서야 여기저기서 욕설과 한탄만 들릴 뿐, 누구 하나 그걸 변화시키기 위해 총대를 메는 이는 없었다.

태극기집회에서의 공허한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오리이이이이~~다’만 들려올 뿐….

역사든 뭐든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행동하는 자만이 지식을 넘어 지혜로운 자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고, 이제는 그럴 시간이다.

좌파 비판한다고, 문재인 정부 비판만 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보수우파, 자유진영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이제는 보수진영이 가진 대한민국 승리의 DNA를 문화적 MEME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우파진영에서 많이들 좋아하시는 남정욱 작가도, 필자도 같이 외치는 것이 하나 있다.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

역사는 DNA다. 문화는 MEME이다.

그러므로 역사라는 대한민국의, 자유의 가치가 담긴 DNA를 국민들에게 전하기 위해선 문화라는 MEME을 만드는 작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빌어먹을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다수의 국민들을 끌어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보수들만의 DNA가 아니라 그 DNA를 교묘히 숨기고 문화로 포장된 MEME의 형태여야만 한다.

그들에게 이념이나 진실은 필요 없다.

왜 보수우파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과 생활속에서의 자연스러운 형태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들어있던 DNA의 존재를 망각하듯, 국민(대중)들은 그렇게 MEME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닌 DNA를 꺼내게 될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청년들이 DNA를 꺼내고, 어르신들이 MEME을 받아들인 것처럼…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필자의 세번째 행동으로 이뤄진 결과였고, 필자 역시 멈추지 않고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행동을 계속할 것이다.

함께 해 주셔도 좋고, 이 글을 읽으실 펜앤 독자분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승리의 DNA를 꺼내 MEME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도한다면 보수진영은 분명 대한민국을 지키고,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저 파란집을 재탈환할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할 수 없었던 이 세번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프리덤 앤 위즈덤’ 출판사의 이장우 대표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영화감독/ (주) 작당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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