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윤미향이 우리 모르게 어머니 유언 만들어 유포...이용만 당해...어떤 단체도 싫다"
[단독 인터뷰] "윤미향이 우리 모르게 어머니 유언 만들어 유포...이용만 당해...어떤 단체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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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옥 할머니 아들 내외,펜앤과 인터뷰,3시간 심경토로...아들 황선희 "매도 당하고 있지만 차차 밝혀질 것"
일부 언론, 길 할머니 아들 내외가 최근 논란 터지자마자 서둘러 입적해 거금 타갔다고 보도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안부전화...주1회 찾아봬도 어머니는 '아들! 왜 안 오냐'"
"권사이신 어머니, 목사인 아들 요긴하게 쓰라며 주머니에서 늘상 쌈짓돈"
"쉼터 권유로 흰 봉투에 넣어 매달 한번씩 주셨지만...뵐때마다 몇만원씩 손에 쥐어주셔"
"음식 사들고 쉼터 찾아뵐 때마다 손 소장과 다퉈...어머니 지병관리라 여겨 서운치 않았다"
"일한 지 고작 7~8년 된 요양보호사들이 관련 없는 13년 전 딸의 워킹홀리데이까지 거론해"
"윤미향이 우리도 모르게 어머니 유언을 만들어 유포...신뢰 깨졌다"
"검찰 압수수색 날 손 소장이 전화로 '어머니하고 호적정리 빠를수록 좋다'"
"입적하고서 어머니 통장 보여 달라고 요구...제가 엉엉 울었더니 손 소장이 무릎 꿇어"
"잘못된 것 바로 잡고 사실관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지난 21일 저녁 민화투를 하는 길원옥 할머니의 말동무 역할을 해드리고 있는 아들 황선희 목사. (사진=펜앤드마이크)

21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의 한 교회를 찾았다. 길원옥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마포 쉼터를 나와 목사로 사역 중인 아들 내외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2~3시간 동안 민화투를 치시던 길 할머니의 안색은 내내 밝았다. 지근거리에서 어머니를 살피다 한 번씩 민화투 상대로 말동무가 되어드리곤 하던 아들 황선희 목사는 기자에게 웃으며 “목사가 화투를 친다는 소리가 돌면 곤란한데 말이죠”라는 농반진반의 얘기를 건넸다.

길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황 목사 내외는 초면의 기자를 경계했다. 정의연과 일부 유력 매체들이 황 목사 내외를 어머니의 돈이나 축내는 파렴치한 자식으로 낙인찍음과 동시에 故손영미 마포 쉼터 소장을 채근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기까지 한 인물로 여론의 초점을 옮기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들 내외는 4시간 가까이 이어진 기자와의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서서히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황선희, 조근순 내외와의 대화로 답변마다 각각 (황), (조)로 따로 표기한다.

=길 할머니가 어떻게 여기로 오시게 됐나요.

-(조) 6월 7일 손 소장의 비보를 접한 뒤 더 이상 어머니가 쉼터에 계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예전부터 어머니를 우리가 모셔가겠다는 말을 손 소장에게도 여러 번 했습니다. 윤미향 의원도 알겠다고 했는데 정의연 사무총장과 변호사라는 사람이 끝까지 어머니를 보내주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어요.

=길 할머니께서 마포 쉼터를 떠나기 싫어하셨다는 식으로 언론 플레이가 이뤄졌죠. 아들 내외분이 급히 모시고 간 것이라고 보도됐습니다.

-(황) 6월 11일 오전 어머니를 모시고 왔어요. 당일 기자들로부터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차에 타고 출발하려는 순간 우리 어머니의 첫 말씀이 “이제 우리 집에 간다!”였어요. 이 말씀에 우리 식구 모두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부 유력 언론에서 돈 욕심 있는 아들 내외가 억지로 어머니를 데려온 것 마냥 보도한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길 할머니를 직접 모시지 않고 쉼터로 보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 1999년 김학순 할머니가 TV에서 울분을 터뜨리며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어머니와 함께 봤어요. 어머니가 이미 다 늦은 일인데 저런다고 달라지는 게 무엇이냐고 해 언쟁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로부터 본인 역시 위안부 피해자이고 남편이 입양됐다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평양이 고향인 어머니는 남한에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혼자 사셨어요. 그러면서도 마을에서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소문이 날 정도이셨는지라 산부인과 원장님이 어느 날 어머니 나이 31세 때 미혼모에 의해 태어난 남편을 입양하도록 권하셨어요. 어머니는 아들을 자신의 호적에 차마 올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양친이 모두 있고 자녀가 많은 집에 부탁해 첩실 관계를 맺으셨어요. 남편을 그 집안의 성씨를 따르는 막내아들로 입적시키시고는 한없는 사랑으로 키우셨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까지 아들을 엎고 다닐 정도셨어요.

거두절미하고 저희 부부는 이 같은 이야기를 듣고 정부종합청사를 찾았는데 그 곳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라는 곳을 연결시켜주셨어요. 정대협은 몇 차례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를 상대로 위안부 피해자가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정부에서 입주권을 줘서 저희 집 가까이에 있는 연수동 주공아파트에 입주하셨어요. 고령이신 어머니는 수요집회에 참여하시려고 인천 연수동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길을 약 5년 동안 다니셨습니다. 어머니가 정대협 활동에 사명감을 갖게 되신 차에 마침 정대협 측에서 어머니를 서대문 쉼터로 모시고 가서 계속 활동하겠다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78세 무렵의 어머니 건강이 이미 좋은 편이 아니셔서 원치 않았지만 정대협에서 어머니를 설득하여 거주지를 서대문 쉼터로 옮기게 됐습니다.

=여태 정의연과 손 소장이 길 할머니의 금전관리를 정확히 하고 있는지에 대해 왜 관심을 갖지 않으셨어요?

-(황) 애초에 어머니를 저희가 계속 모셨어야 하는 거잖아요. 자식 심정이 그렇잖아요. 정의연 측에서 어머니를 대신 모시고 계시니 감사하고 면목이 없기도 하고 그랬어요. 보태드리기는커녕 방문할 때 마다 들춰내선 하나씩 금전 내역을 확인해보기 어려웠어요. 그리고 목사가 어머니 돈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비춰지는 게 싫었고요.

무엇보다 생전에 손 소장과 저희 부부의 신뢰관계가 좋았습니다. 저희가 정말 손 소장을 믿었고 늘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어찌 됐든 저희 어머님을 손수 15년 이상 섬겨주신 분이세요.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니 우리 마음은 더욱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최선을 다해 저희 어머님을 섬겨주신 손 소장님을 사랑했고 존경한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사실관계는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지금 이 논란 모두가 올바른 기부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요.

=유력 언론에서 길 할머니의 아들 내외가 매달 돈 가져간 것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려 하고 있죠. 어떻게 된 일인가요?

-(황) 저는 신도가 30~40명 정도인 교회의 담임목사로 재직 중입니다. 자세한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월급이 많지 않아요. 아내도 일을 같이 하니 생활에 어려움은 딱히 없습니다. 그래도 교회 권사이기도 하신 어머니께서는 아들에게 만날 때마다 쌈짓돈을 건네주셨어요. 이 점을 잘 아는 쉼터 측에서 어머니에게 먼저 흰 봉투에 돈을 담아 매달 50~60만 원 정도씩 주는 게 낫겠다고 해 그리 됐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한 달에 한번 흰 봉투를 주시고는 찾아뵐 때마다 가는 길에 밥 사먹으라며 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주셨습니다. 언론에서 제가 매달 10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받아 갔다고들 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쉼터 요양보호사들이 황 목사 내외가 교통사고, 손주들의 어학연수 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수시로 돈을 받아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매번 빈손으로 와서 돈만 가져갔다고 했는데요.

-(조) 남편은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드렸어요. 다정하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남편은 목사로 사역 중인 자신과 손주들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말씀드렸어요.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주 1회 정도 찾아봬도 어머님은 “아들! 왜 안 오냐”고 하셨어요.

어머니께서 서대문 쉼터로 들어가신 이후 남편은 찾아뵐 때마다 음식을 사들고 갔어요.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족발을 영천시장에서 사가거나 특히 좋아하시는 닭발을 들고 가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손 소장이 절대로 아무 것도 사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몇 번이나 드실 것을 사갖고 오셨다며 혼을 냈어요. 크게 다툰 적도 있었지만 저는 남편에게 “소장님이 어머님의 당뇨 관리 등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협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요양보호사라는 사람들이 언론에다 대고 어떻게 ‘자식이 어머님께 오면서 빈손으로 왔다가 돈만 받아서 가져간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나요.

심지어 일한 지 7~8년 된 요양보호사들이 13년 전인 2007년에 제 딸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간 사실까지 거론하면서 마치 어머니 도움으로 손주들이 어학연수 다녀온 것 같이 말하고 있어요. 손주들 이유로 어머니께 돈을 받은 사실이 없어요. 정의연이 배후에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세상이 무섭고 그러네요.

=윤미향 의원이 아들 내외분과 상의도 없이 길 할머니의 유언을 만들어 유포했다고요?

-(조) 저희는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통해 할머니들이 그간 앵벌이에 동원됐고 위안부 단체의 부정회계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뢰가 깨지게 된 계기는 이번 논란 중에 유튜브를 검색해봤더니 저희도 모르는 ‘길원옥 유언’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1년 전에 올라온 이 글은 바로 윤미향 의원이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난 5월 중순 손 소장에게 전화로 “엄연히 아들이 있는데 어떻게 자기 맘대로 어머니 유언을 남기게 하고 유언 내용도 사후에 윤 의원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로 한다고 할 수 있느냐”며 “우리 남편이 어머니 호적에 아들로 올라와 있지 않으니 김복동 할머니처럼 자기 맘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냐”고 강하게 항의했어요. 그랬더니 손 소장이 “지금은 윤 의원이 이용수 할머니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 이번주 지나서 만나게 해주겠다”고 답했어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유튜브에 돌아다니던 어머니의 유언은 삭제됐습니다.

=유력 언론은 ‘양아들이 정의연의 회계 의혹이 터지자 서둘러 입적하고 3천만원을 받아갔다’는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더군요.

-(조) 검찰이 마포 쉼터를 압수수색 하는 날 손 소장으로부터 “어머니하고 호적정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전화가 왔어요.

=아니 정의연 사람들은 ‘아들 내외분이 먼저 서둘러 입적했다’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조) 그러니까 어떤 의도에선지 모르겠지만 쉼터 사람들이 말을 조금씩 비틀어서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손 소장이 호적정리가 돼야 유언문제도 다 해결되는 것이라면서 되도록이면 빨리 하자고 했어요. 저희도 동의했기에 절차를 알아본 뒤에 연락주기로 했죠.

예상보다 복잡하지 않아서 5월 27일 쉼터에 방문해서 어머니를 뵙고 손 소장으로부터 어머니 신분증과 도장을 건네받아 마포구청에 입적 신청을 했습니다. 6월 1일 남편이 어머니 호적으로 입적이 완료됐다는 서류를 들고서 쉼터에 갔어요.

그랬더니 손 소장이 통장 2개를 보여주면서 “어머님 돈이니 목사님 이름으로 하자”고 말했어요. 2천만 원이 들어있는 우체국 통장은 어머니가 사후에 아들 주라고 했다고 하고, 1천만 원이 들어있는 우체국 통장은 당신 장례비용으로 쓰라고 했다면서 이제 통장 명의를 우리 이름으로 하자고 설명했어요.

그런데 통장 명의가 어머니가 아닌 손 소장 이름으로 돼있어서 제가 “왜 통장 명의가 어머니가 아닌 소장님 명의인가요?”라고 했더니 손 소장이 어머님께서 소장님 이름으로 하라고 했대요. 그러면서 “이제는 아들이 됐으니 빨리 가져가라”고 하면서 이 돈 때문에 오히려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검찰 압수수색이 시작된 이후에야 말이죠.

=할머니 명의의 통장은 없는 건가요?

-(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손 소장과 함께 은행에서 명의 변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어요. 단둘이 쉼터 2층에 올라가 손 소장에게 어머니 명의의 개인통장을 좀 볼 수 있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당황한 손 소장은 잠시 후 어머니 통장 2개를 갖고 올라와 통장을 확인시켜줬어요.

통장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 앞으로 매월 350만 원 가량이 입금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통장에 입금된 돈을 매달 찾았던데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또 다른 어머니의 통장으로 계좌입금 됐어요.

그러면서 손 소장은 어머니가 자신에게도 개인적으로 매달 30~50만 원 정도 주셨다면서 그 돈을 모아놓은 게 약 2천만 원정도 되는데 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어머니가 소장님 주신 돈이라면 소장님 돈이니 소장님이 갖으시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소장님께 주신 돈이잖아요.

대신에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매달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이 들어오는 줄로 알았지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지 몰랐다. 우리 목사님이 매달 어머니에게 50~60만원씩 선교비로 받아오는 돈을 갖고 내가 얼마나 남편을 책망했는데 손 소장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 있나요! 나는 어머니 뵈러 올 때마다 소장님이 어머니를 돌보고 있어서 소장님께 죄인이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매스컴에서 나오는 위안부 할머니를 ‘앵벌이’ 시켰다는 말이 이것이었나요? 정말 속상합니다!”라면서 엉엉 울었어요. 그랬더니 손 소장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손 소장과의 마지막 만남이셨죠?

-(조) 네. 이날 마포 쉼터를 나오면서 소장님께 그동안 어머니의 금전 관리 내역에 대해 소명해 줄 것을 요청 드렸고 소장님도 그리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이틀 후인 6월 3일 오전 카톡으로 소장님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조속한 시일 내로 “그동안 저희 어머님이 그 곳에 가셔서 정부에서 지원받은 내역과 지출하신 것을 속히 밝혀주시기를 바란다”고 했죠. 소장님은 이날 오후에 전화로 “월요일인 6월 8일 정리한 것을 들고서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인 6월 7일 오전 소장님의 사망소식을 접했습니다.

=손 소장이 숨진 다음날 길 할머니 아들 내외가 마포 쉼터로 찾아와 돈 이야기를 하면서 언성을 높였다고 보도됐습니다. 보다 못한 윤미향 의원이 “사람이 죽은 지 하루도 안됐는데 정중히 돌아가시라”고 했다고요.

-(조) 쉼터에 계시는 어머니가 염려되니까 찾아갔어요. 입구에 기자들이 많이 있었고 집안에는 정의연 관계자들과 윤 의원 부부도 있었습니다. 대화 도중에 윤 의원이 제게 “금전 관리 내역을 밝혀달라는 것 때문에 소장님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습니다.

저희가 “그 정도 요구한 것이 과한 요구입니까?”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큰소리가 오갔고 우리가 어머니를 댁으로 모셔가겠다고 했습니다. 윤 의원도 알겠노라고 말하더군요.

=길 할머니께서 위안부 피해자 가족들 중심으로 최근 결성된 ‘위안부피해자가족대책협의회’(위가협·가칭) 공동대표로 추대되셨지요.

-(조) 거절 의사를 밝히려 해요. 대표 추대에 감사드리지만 구순을 넘기신 어머니가 더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편히 지내셨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어느 편에도 가담할 생각이 없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머니가 특정단체의 대표로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걸 원치 않습니다.

=앞으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황) 어머니께서 서대문 쉼터로 들어가시기 전까지 저희 가족 모두가 오순도순 모여 살았어요. 그때처럼 지내고 싶어요. 앞으로 어머니에게 나오는 정부 지원금 일체를 요양보호사 등에 쓰면서 잘 모실 겁니다. 아들 내외와 손주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사시다 편히 눈감으시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황 목사는 마흔 넘은 나이에 생모가 따로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 어머니에게 내색은 안했지만 꽤나 방황했었다고 한다. 아내인 조 씨는 남편의 마음고생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봤다. 몇 달 후 부부는 셋째 자녀로 딸을 입양해 평안을 되찾았다. 아들 하나에 딸 둘. 길 할머니가 끔찍이도 아끼는 손주들은 정의연이 피해 당사자들을 배제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분노할 줄 아는 어엿한 성인이 됐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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