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남북교류는 신작 아닌 리메이크 작
70년 분단 역사 역대 남북교류 성적표 참담
새드엔딩 불안감 마침내 현실로 드러나
과거사 반성 없는 즉흥적 교류 무의미
심혈 기울인 남북관계 파탄, 누가 어떻게 책임 지나?
북한의 돌변과 격렬한 반응 상식적 납득 어려워
이면에 무슨 사연 있었나 추측 난무
남북 양측 당국자 모두 겨레 여망 짓밟은 대가 치를 것

김정산 작가
김정산 작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다.

어디 달나라에서들 오셨나? 아니면 무슨 남다른 비술이나 도술이라도 닦으셨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난데없이 짠, 하고 나타나더니 어느 순간부터 남북한을 오가며 벌이는 두 집단의 어지러운 술수에 새삼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으려나? 이번엔 무슨 일로 두 집단의 이익이 맞아떨어졌을까?

인민의 피땀과 국민의 혈세를 아낌없이 뿌리며 예술단이 오가고, 특사와 밀사가 왕래하고, 공식 만찬에, 환영 행사에, 심지어 양국 책임자가 판문점 <깜짝 회동>까지 해가면서 저희들끼리만 전례 없이 요란을 떨 때 함경북도 회령을 원적지로 둔 실향민의 후손으로선 기대 따위는 전혀 없고, 언제 또 무슨 실망과 배신을 당할지 오로지 그게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주연은 남북한 당국자, 조연은 미국과 중국 정부 책임자들이 우리의 분단 상황을 테마로 벌이는 외교무대의 공연예술! 관객 입장에선 스토리도 결말도 뻔한,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된 케케묵은 리메이크 작인데 정작 출연자들만은 그걸 모르는지 꽤나 진중하게 배역에 몰두하는 모습이 이채롭다면 이채로웠다. 장르는 블랙코미디와 약간의 정치스릴러.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는 각본이지만 배우들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해피엔딩이라고 굳게 믿는 눈치들이었다.

신작이냐, 리메이크냐?

우선은 북한 주연배우가 젊고, 과거에는 없던 냉면이 소품으로 등장하고, 다리 위를 나란히 걷는 모습도 참신한 뉴 씬이었다. 극비로 성사됐다는 <깜짝 벙개>도 나오고, 미국 대통령의 역할도 전과는 약간 달랐다. 그래서 신작이 아닐까 의심도 갔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이 옛날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배우만 다를 뿐 실체는 그대로다. 실체가 그대로인데 결말이 달라질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리메이크 작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남북한의 교섭은 지난 70년간 절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려면 북한 주민이 달라지고 우리 국민이 달라져야 한다. 북한 군인이 달라지고 우리 군인이 달라져야 한다. 북한 민심이 달라지고 우리 민심이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남북한 당국자가 접촉한다면 무언가 신작이 나올 수 있다. 독일처럼. 그런데 모든 건 다 그대로요, 남북한 당국자와 그들의 수사(修辭)가 달라졌다고 과연 신작이 나올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민족이 두 나라로 갈라지고 70년이 흘렀다. 올해는 마침 6.25 칠십 돌이다. 수백 만 동포를 서로 학살한 뒤 70년간 수시로 접촉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쓴맛을 본 게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한심한 한민족 두 나라가 현대사에 남긴 70주년 성적표다. 세계가 이미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벗어났는데, 5천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이 한반도에서만은 여전히 겨레가 양측으로 갈라져서 서로가 서로를 결박한 채로 총부리를 겨누고, 인간이 만든 가장 흉악한 무기들을 경쟁하듯이 잔뜩 쟁여놓고, 해만 뜨면 날마다 욕설과 악다구니를 퍼붓는다. 이렇게 만든 자들은 이미 다 떠나고 없는데, 저희끼리 얼마든지 옛날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데, 자신들의 땅, 자신들의 울타리 안에서 서로 불구대천 원수가 되어 혈투를 벌인다. 이 저주받은 구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어떤 새로운 시도도 모두 고리타분한 천형(天刑)의 리메이크다. 자, 이쯤 되면 한민족이란 이름은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다. 자랑은커녕 분단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훗날 인류의 영원한 조롱거리, 어리석은 족속을 묘사하는 수치스러운 우화의 주인공으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피차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정권 차원에서 파격적 교류와 만남을 기획할 때부터 나는 그 저의를 한없이 의심했다. 보나마나 뻔한 리메이크 작, 기획 의도는 남한 정부가 주도한 세력의 확산과 결집을 노린 선거용이려니 싶었다. 하물며 양측 정상이 남한의 대중예술인을 데리고 백두산에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이벤트 전문가인 청와대 행정관의 솜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정권의 주특기는 바로 그 이벤트, 어디에나 그런 게 들어가 있다. 그것으로 감성을 건드리고 판단을 마비시킨다. 이벤트의 본질은 포퓰리즘이다.

그들이 왜 만났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만나서 그동안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화려한 덕담과 수사(修辭) 말고, 그 속에 숨은 진짜 용건을 알지 못한다. 왜 저러나? 올림픽 초대하고 음악회 열 때, 그 이후 수많은 뉴스들을 양산할 때 그것이 해묵은 리메이크 작임을 아는 우리로선 저러다가 언제 어느 때 무슨 경을 칠까 보는 내내 불안했다. 반전의 시기는 언제쯤 올까? 무슨 사건으로 반전이 펼쳐질까? 그 열쇠는 누가 쥐고 있을까?

자, 보시라! 이제 그 의문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예상했던 반전, 상대의 진면목은 저렇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걸 주지 않으면, 갑자기 저렇게 돌변해 악다구니를 퍼붓는다. 그렇게 상냥하던 애들이 하루아침에 안면몰수하고 달려든다. 저걸 몰랐다? 저럴 줄 몰랐다? 예끼 여보쇼, 그렇다면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상대의 진면목을 몰랐다고요?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그런 일을 벌였다고요? 상대를 제압할 비술도 도술도 없다고요? 그러면서 대관절 뭘 믿고 그랬나요? 그렇게 해서 개성공단이 볼모로 잡혀 있고, 그렇게 해서 우리 주부가 금강산에 놀러갔다가 피살되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그럴 줄 몰랐다고요?

하긴 짬짬이 너무했지 싶긴 했다. 내심 너무 아무것도 주지 않는데 과연 북측이 가만있을까? 남한도 미국도 북한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 강화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압박할 줄만 알았지 뭐 변변한 거 하나 찔러준 게 없으니 심정적으론 저들의 반발에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기로 남한에 사는 5천만 국민이 한동포, 한겨레라면 북한의 독설은 너무 과격하다. 그렇기에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더 있는 것 같다. 반세기 이상 얼어붙은 양측 국민들, 적어도 이쪽의 남한 국민들 가슴에 잠시나마 따뜻한 훈풍을 불어넣던 젊은 지도자 남매가 하루아침에 표변해 딴사람이 돼버린다면 그 이면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삐라 때문에? 에이,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무얼까? 심지어 이젠 군대와 국민까지 나서서 악랄한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모든 걸 원점, 아니 그 이전으로 되돌린단다.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리메이크 작인 줄 알면서도 국민들은 모두 어리둥절하다. 이유가 뭘까? 혹시 정권은 알까? 정권은 알겠지? 그게 뭘까? 우린 그냥 삐라 때문이 아닌 줄만 알고 나머지는 모른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뭘 하겠다, 뭘 책임지겠다고 했으면 져야 마땅하다. 현실적으론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더군다나 자신이 원하는 걸 모두 챙겼다면 상대로선 열불이 날 만하다. 여기까지는 국민이 짐작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모른다. 그런데 그 정도를 가지고 공개적으로 저렇게까지 화를 내고 반발한다는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계산과 셈법도 모두 다 당사자들의 몫이다.

문제는 우리 국민의 눈이다. 이제 남북한 정권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북한 정권 책임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하나도 바뀐 게 없다. 3대가 흐르도록 정부도, 군대도, 방송도, 국민도 참으로 한결같다. 쌍소리 수준도 그대로고, 전쟁과 피바다 운운하는 태도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은 그게 가장 실망스럽다. 동포로서 말이다.

남한 당국자들은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상대를 잘못 본 책임, 상대의 진면목을 모른 채 혈세 써가면서 회담하고, 교류하고, 협력한 대가도 치러야 한다. 그런 줄 모르셨나? 그런 줄 모르고 그네들과 손잡고 포옹하고 냉면 먹었나? 이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다. 온 국민은 여러 차례 발표된 리메이크 작인 줄 다 아는데 자기네만 신작인 줄 알고, 자기네가 하면 뭔가 결말이 달라질 줄 알고 갖은 야단법석 떨며 국력을 낭비한 책임을 물을 시간이다.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스스로 어떻게 처리하는지, 국민은 지금부터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그게 이쪽과 저쪽에 반드시 물어야 할 냉면 값이다. 김정산(펜앤투어 대표작가) penntour@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