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6·25 전쟁 70주년이 다가오는 시기에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의 사후(死後)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어 무척 민망스럽다. 보훈처가 “백 장군이 돌아가시면 서울 현충원에는 자리가 없어 대전 현충원에 모실 수밖에 없고, 이후에 친일파의 현충원 안장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는 경우 파묘·이장될 수 있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었다. 하기야 좌파 인사들이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한 백 장군의 ‘친일’ 경력을 문제삼아 현충원 안장에 반대해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관동군과 만주국에서 복무한 사실을 이유로 고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 반역자’로 매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다. 좌성향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고 박정희 대통령을 ‘다다키 마사오’로 부르도록 가르치는 것도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기초적인 뺄셈을 할 줄 모르거나 보훈의 기본 원칙을 모르는 나라가 아니라면, 이런 분들이 ‘민족 반역자’로 매도당하는 것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6·25 영웅을 매도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이 나라 국민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한국군과 유엔군이 치른 희생이다. 국립현충원과 유엔군 묘지에 영면하고 있거나 시신마저 수습되지 못해 구천을 떠돌면서 분단된 조국의 산하를 내려다보고 있을 호국의 원혼(冤魂)들을 잊는다면, 국민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는 6·25 참전을 통해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막아 주었고 이후에도 안보방패와 안정성을 제공하여 한국의 경제기적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동맹이며, 셋째는 6·25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60년대 청와대 기습사건과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과 70년대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에서부터 근년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무력도발은 쉼없이 이어져 왔고, 지금도 북한은 공세적·침투적 대남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핵무기와 화생(化生)무기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하는 국민이라면 6·25 전쟁에 참전하여 나라를 지켜낸 노병(老兵)들을 잊지 않아야 하며, 생존시나 사후에 그들을 욕되게 하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 6·25 참전용사로 한미연합사를 창설하고 합참의장을 지냈던 류병현 장군이 지난 5월 21일 별세한 것을 비롯하여 참전 노병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근년에 와서 국민의 곁을 떠나간 6·25 참전 노병들로는 2019년에 작고한 공정식·강기천 전 해병대 사령관, 2016년에 별세한 'DMZ 도발 응징’의 주역 박정인 장군, 그보다 조금 일찍 타계한 채명신 장군 등이 있다. 박정인 장군은 3사단장으로 재직하던 1973년 북한군의 총격 도발을 강력한 포격으로 응징한 ‘도발원점 타격’의 원조였고, 채명신 장군은 파월 한국군사령관으로 용맹을 떨친 참군인으로서 그의 유언에 따라 서울 현충원의 사병묘역에 영면했다. 국민이라면 최후의 순간까지 모든 에너지를 조국에 쏟아붓고 떠나가는 이런 노병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다. 때문에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6·25의 전설이자 동맹의 상징인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모시는 것도 방안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 중 사단장, 군단장, 참모총장 등의 직책을 거치면서 한국군을 지휘했다. 북한군이 남한 영토의 90%를 점령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빠졌던 1950년 8월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를 낙동강 전선을 사수했고, 이후 북진의 선봉으로 평양에 입성했으며,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한 후에는 남쪽에 남은 북한군 남부군단을 궤멸시키는 전공을 올렸다. 휴전회담에서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백 장군은 정부로부터 금성태극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금탑산업훈장 등을 수여받았고, 미국의 은성무공훈장, 자유수호의상, 캐나다 무공훈장, 코리아소사이어티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새로이 부임하는 주한미군 사령관과 주한 대사가 예외없이 찾아와 예우를 표할 만큼 백 장군에 대한 미국의 평가도 높다. 미군은 2002년 동두천의 미 제2사단 본부에 ‘제너널 백선엽 히어로 룸’을 만들어 백 장군의 흉상과 업적이 새겨진 현판을 설치했고, 주한미군사령부가 평택으로 이전된 후에도 청사에 ‘백선엽홀’을 마련했다. 이렇듯 백선엽 장군은 6·25 영웅일뿐 아니라 한미동맹의 전설이자 상징이며 한국의 안보자산이다. 이런 백 장군이 영면할 곳은 서울 현충원이거나 본인이 원하는 장소이어야 하며, 여기에 이설(異說)을 제기하는 것은 6·25 참전 영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백선엽 장군에게 1,129일 동안 치러진 6·25 전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를 묻는다면 아마도 제1사단장으로 현격한 병력·장비 열세를 극복하고 북한군의 낙동강 돌파를 저지함으로써 북진(北進)의 발판을 마련했던 1950년 8월의 다부동 전투를 꼽을 것 같다. 즉, 다부동 전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전투였고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전투의 영웅이었다. 때문에, 백 장군 본인이 경상북도 칠곡군에 위치한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영면하기를 원하는 경우 보훈처는 이곳을 후보지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의 자존심과 위상을 되찾는데 모든 것을 바쳤던 찰스 드골(Charles de Gaulie:1890~1970) 대통령은 임종 전에 팡테옹의 국가유공자 묘지를 사양하고 청년장교 시절을 보냈던 시골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콜롱베라는 농촌 마을은 구국 영웅을 모신 덕분에 매년 십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독립투사이자 핵개발의 아버지이고 초대 수상이었던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 1886~1973)도 그랬다. 그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정부가 제공하는 일체의 예우를 사양하고 사막에 건설된 기부츠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냈고, 이스라엘 정부는 그의 유언에 따라 모세의 광야가 내려 보이는 네게브 사막의 아인아브닷 협곡에 그를 안장했다. 영웅에 어울리는 의미있는 선택이었다. 백 장군이 이와 유사한 선택을 한다면 대한민국은 지체없이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공과(功過)를 비교·상쇄하는 최소한의 정성이라도 보여라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1947~1964)는 영국으로부터 갓 독립한 가난한 인도를 대국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터전을 닦았던 초대 수상으로서 모든 인도인의 추앙을 받는다. 네루가 영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라고 그를 폄훼하는 인도인은 없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은 미국의 독립전쟁을 이끈 군인이자 초대 대통령으로 널리 추앙을 받는다. 그가 영국군 장교로 복무했었다는 이유로 그를 ‘반역자’로 매도하는 미국인은 없다. 백선엽 장군이나 박정희 대통령에게 있어 일제 시대의 경력이나 독재정치가 흠결사항이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이룩한 구국의 신화나 경제성장 및 산업화의 기적은 비교할 수없을 만큼 엄청나다. 공(功)이 과(過)를 압도하고 남는데도 허물만을 꼬집으면서 특정인을 황칠하는 것은 초등학교 뺄셈조차 할 수 없는 무뇌자나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동자들이 하는 짓이다. 그래서, 묻고자 한다. 당신들은 백선엽 장군 같은 분들이 지켜준 대한민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하여 지식인이 되고 지도자도 되고 또 정치인도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함부로 그분을 욕되게 하기 보다는 공과를 비교·상쇄하는 최소한의 정성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은가?

차제에 가장 보편적인 보훈의 원칙 한 가지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보훈의 대상이 되는 유공자에는 독립 유공자, 참전 유공자, 민주 유공자 등 다양한 종류가 있겠지만, 세계 모든 나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가 희생된 군인들을 최고로 예우하며, 경찰, 소방관 등 여타 유공자는 그 다음 순이다. 군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우선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정규군보다 나치 치하에서 싸운 레지스탕트 희생자들을 더 우대한다. 대한민국이 이 원칙을 준수하는 나라라면 백선엽 장군을 욕보이는 논란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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