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긴급재난지원금을 써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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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6.16 09:58:53
  • 최종수정 2020.06.16 17:03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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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좋았다. 써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 사람도 많았던 모양인데 그런 거 없었다. 어차피 나온 돈이고 그게 누군가의 소득이 된다면 나쁠 리 없다 생각했다. 술 마시는 게 유일한 취미라 반으로 쪼개 한 번은 고기에 한 번은 생선에 술을 마셨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좀 슬픈 얘기다. 글을 쓴다는 것은 궁핍의 시간을 종종, 강제적으로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해서 평소에 광고 전단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긴다. 생필품의 평소 가격에 해박하고 그래서 할인판매를 한다면 얼마나 인심 쓴 가격인지 보는 순간 바로 답이 나온다. 100g당 평소 가격도 머릿속에 품목별로 들어있다. 그것은 구매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포인트다. 뛰어가서 사야 할 가격인지 무시하고 넘어가도 좋은 가격인지 판단하는데 1초도 안 걸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가장 좋은 고기를 샀고 가격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왜? 내 돈 아니니까. 힘들게 번 돈 아니라 그냥 생긴 돈이니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충분히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퓰리즘의 심리학이다.

효과는 있을까

풀린 재난지원금의 규모는 14조원이다. 효과도 있다고 한다. 전통시장 매출액 감소에 약간의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다. 재난지원금을 받는다고 안 하던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 원래 예정되어 있던 소비를 하는 것이라 경기부양 효과가 별로라는 설명이다. 나온 돈에 자기 돈까지 물려 들어가야 그게 진짜 경기부양이란 얘기다. 지원금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효과측정이 가능할 것이지만 아마도 경제학자들의 예견이 맞을 것이다. 나 역시 재난지원금을 다 쓰고 내 돈을 써야 할 차례가 되자 확실히 소비가 주춤했다. 내 돈은 피 같은 돈이니까.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장기적인 역효과를 경고했다. 재정지출을 늘이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진단다. 솔직히 이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별로 와 닿지도 않는다. 그게 나랑 뭔 상관이지 싶었는데 언젠가는 그 지출이 세금으로 돌아온다는 경고에서는 예민해진다. 결국 내 돈 쓰면서 잠시 신났던 것일 뿐이라고? 결국 다 토해 낼 돈이었다고? 아, 갑자기 기분이 많이 나빠진다. 사기 당한 기분이다. 조삼모사 원숭이가 된 느낌이다.

그 와중에 피 본 사람들

다들 아시는 얘기지만 이 재난지원금 덕분에 손해를 본 사람들이 있다. 대형마트 납품업자들이다. 사용처가 제한되면서 대형마트의 생필품과 식재료 판매가 줄었다. 재난지원금 사용 2주일 동안 이마트의 고기와 채소 매출은 25% 정도 감소했다. 그 손해를 이들 납품업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신선식품의 경우는 장기간 보관도 어렵고 생산량 조절은 아예 불가능하니 한 푼이라도 건지려면 헐값에라도 소매업체에 넘기는 수밖에 없다. 재난지원금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재난이 된 셈이다. 대기업을 골탕 먹이는 게 이 정부의 취미라지만 이렇게 진짜 피해자는 목표물이 아니라 안 보이는 그늘에서 생긴다. 혹시 또 재난지원금이 방출되고 그리고 그게 몇 번 반복된다면 피해자는 명찰을 바꿔달게 될 것이다. 피해자에서 사망자로. 이름도 바꿔야 할 것이다. 재난발생 촉진지원금으로.

그 와중에 웃기는 사람들

강원도 도지사는 재난지원금 소비 촉진 캠페인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머리가 자꾸 빠져서 탈모증 치료제를 사고 싶었는데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샀습니다.” 사고 싶었다는 표현을 쓰려면 사려는 마음은 간절했으나 금전적으로 난감했다는 전제가 붙어야 한다. 강원도 도지사가 무슨 극빈 계층이라도 되는가. 그걸 못 살만큼 경제적으로 심란하다는 얘기인가. 참 코믹한 말씀이시다. 사려고 했는데 마침 재난지원금이 나와 그걸로 샀다고 해야 맥락이 맞다. 그리고 여기서도 재난지원금 용처의 불편한 진실이 나온다. 정말 소비촉진을 원했다면 원래 사려던 것은 자기 돈으로 사고 재난지원금은 추가 소비로 돌렸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도지사부터가 원래 구매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재난지원금을 쓴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우려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재난지원금, 좋은 경험이었다. 또 준다고 하면 일단은 반대지만 기어이 준다고 하면 기꺼이 받을 것이다. 인간 심성이 그렇다. 포퓰리즘의 불편한 심리학이다. 솔직하게 썼다. 비난하셔도 괜찮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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