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위, 자문안 보고...文대통령,21일까지 개헌안 발의할 듯
국민 알권리 무시하는 '깜깜이 개헌' 논란
"청와대 21일 개헌안 발의....前文에 5.18, 6월·부마항쟁 들어가"
"대통령4년 연임제, 수도를 법률로 규정,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지방정부에 자치 재정ㆍ입법ㆍ행정권" 부여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정해구 위원장(오른쪽)으로부터 국민헌법자문특위 자문안을 전달받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정해구 위원장(오른쪽)으로부터 국민헌법자문특위 자문안을 전달받고 있다(연합뉴스).

"대통령에게 올리는 개헌 자문안이므로 대통령이 발의하기 전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국민헌법자문특위ㆍ위원장 정해구)는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부 개헌 자문안 초안을 보고했다. 그러나 이날 특위가 내놓은 보도자료에는 개헌의 구체적 내용은 거의 없고 추상적 표현만 들어있어 '깜깜이 자문안'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헌법자문특위 한상익 지원단장은 이날 PenN과의 전화통화에서 "대통령이 관련 자문안을 발의하기 전까지 구체적인 개헌안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합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단수안'으로 올리지만, 합의가 안 된 사안은 '복수안'으로 올려 문 대통령이 선택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통령이 결정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법 조문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설명이다. 

한 단장의 이같은 발언은 '이번 자문안 초안은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국민은 알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다.  헌법 개정과 관련된 중요한 국가적 중대 사안에 대해 국민의 세금인 예산으로 운영되는 특위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오만한 행태'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왼쪽부터 김종철 자문특위 부위원장, 정해구 위원장, 하승수 부위원장
왼쪽부터 김종철 자문특위 부위원장, 정해구 위원장, 하승수 부위원장

국민헌법자문특위 정해구 위원장도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헌 자문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개헌 자문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다"며 "대통령이 발의 시까지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문안 공개 여부는 20일 전후 대통령이 개헌발의안을 제출한 다음에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헌법자문특위는 이날 공개한 보도자료에서 ▲국민주권 실질화 ▲기본권 확대 ▲자치분권 강화 ▲견제와 균형 내실화 ▲민생 안정의 5대 기본원칙에 따라 자문안 초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특위 자문안은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안전권 등 새로운 기본권을 신설하고 차별금지 사유를 확대하고 기본권의 주체를 확대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고 자문특위는 설명했다.

특위 개헌안은 주민 자치를 확대하는 등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현행 지자체는 ‘지방정부’로 명칭이 개칭되며 주민의 자치기관으로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입법권과 재정권, 행정권 등 자치권을 갖는다.

또 대통령의 권한은 분산하고 국회의 권한을 확대한다.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되 대통령의 헌법 기관 구성 권한을 축소하고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축소한다. 반면 국회에 법률안 예산안 심사권을 허용한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토지의 특수성을 명시하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한다.

그러나 추상적 표현만 잔뜩 들어간 이같은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인 개헌의 방향을 전혀 알 수 없다. 특히 권력구조나 지방분권, 헌법 전문(前文) 개정 내용 등 국민적으로 민감한 사용의 조문조차 알 방법이 없다. 게다가 국민적으로 합의가 덜 된 내용에 대해서는 '복수안을 올려 문 대통령이 선택하도록 했다'는 방패막을 만들어 논란을 피해갔다.

지난 2월 13일 발족한 국민헌법자문특위는 총강·기본권, 정부형태, 지방분권·국민주권 분과와 국민참여 본부 등 33명의 위원회로 구성됐다. 지난 2월 19일부터 3월 9일까지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국민의견을 수렴했으며 전국순회 토론회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자문위안, '자유민주주의'만 살리고 다 바꿨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헌법자문특위는 보도자료에서 내용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날 오후 서울 종로 프레스센터 기자간담회에서는 자문안의 대략적 내용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자문특위가 기존 헌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제외한 모든 헌법적 가치를 수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법전문에 '5.18운동', '부마항쟁', '6.10민주항쟁' 모두 삽입...'촛불'은 빠져

자문안은 우선 헌법 전문(前文)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부마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등 4·19 혁명 이후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포함시켰다. 당초 함께 고려됐던 '촛불'은 빠졌다. 김종철 특위 부위원장은 "이 부분(민주화운동)을 열거해 민주이념을 계승·발전하는 것을 명확하게 헌법 기본 가치로 선언하게 되면 '국민 저항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저항권' 관련 해석은 헌법학자로서의 개인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기본권 조항 무더기 신설

'기본권' 조항이 무더기로 신설된 것도 자문안의 특징이다. 국민 소환제와 국민 발안제가 포함됐고, 생명권이나 안전권, 알권리와 청원권 등을 의미하는 정보기본권도 새로 넣는다.

대통령 4년 연임제,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정부형태(권력구조)로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채택하고, 대선 결선 투표제 도입을 명시했다. 애초 자문위는 4년 중임제를 고려했으나 논의과정에서 4년 연임제로 선회했다. 중임제를 채택할 경우 현직 대통령이 4년 임기를 마친 후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다시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연임제에선 4년씩 연이어 두 번만 임기를 수행할 수 있다. 즉 현직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하면 재출마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행 헌법 10장 128조 2항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된 조항은 개정 대상이 아니어서 이번에 개헌안이 통과돼 정부형태가 4년 연임제로 변경되더라도 문 대통령은 연임할 수 없다.

결선투표제는 선거에서 과반수 등 일정 득표율 이상이 당선조건일 때 이를 만족하는 후보가 없을 경우 득표수 순으로 상위 후보 몇 명만을 대상으로 2차 투표를 시행해 당선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지방분권 강화

지자체를 '지방정부'로 명칭 변경하고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확대하기 위해 입법권과 재정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 정례회의를 뜻하는 '제2국무회의' 성격의 회의체를 만드는 조항도 초안에 들어갔다.

지방분권은 특위가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가장 많이 갈린 부분 중 하나로 확인됐다. 하승수 특위 부위원장은 "여론조사와 숙의형 토론회에서 지방분권에 대해 다양의견이 나왔다. 지방분권 지향을 헌법에 기재하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도 많았다. 그래서 의견들 혼재가 있었는데, 지방분권 대원칙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찬성' 의견이 많아졌다. 여론조사만으로는 제대로 국민의견이 수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숙의형 토론회를 통해 지방분권에 대해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근로→노동'으로 변경하고 '공무원 노동3권'도 인정

현행 헌법상 '근로'를 '노동'으로 명칭 변경한다. 공무원에게 노동3권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군인과 경찰만 예외로 한다.

토지 공개념, 소상공인 육성·소비자 권리 신설

국가가 개인의 토지재산권에 대한 의무 부과나 권리 제한을 가능하게 하는 '토지공개념' 제도를 헌법에 명시한다. 기존 헌법에 들어간 중소기업 보호 육성 조항과 더불어 '소상공인 보호육성' 조항을 삽입한다.  소비자의 권리도 헌법에 명문화해 국가의 노력 의무 조항을 만든다.

수도조항 신설

현행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한다'는 영토조항은 존재하나 수도에 관한 명문화된 조항은 없다. 다만 헌법재판 과정에서 관습헌법에 따라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로 인정된다는 법리가 확립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는데 개헌을 통해 행정수도가 지정되면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권한 축소

자문특위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 감사원을 독립기구화하고 대통령 특별사면권을 제한하기로 했다. 국회 예산심의권과 정부의 예산편성권 관련 내용은 복수안을 제출했다. 감사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구성에 관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복수안을 자문했다.

文 대통령, 3월 21일 개헌안 제출할 듯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1일 개헌안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60일의 국회 심의 기간을 보장하려면 21일 이전에 발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 지방선거 투표일로부터 역산했을 때 늦어도 21일에는 발의해야 충분한 숙의를 거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반대하는 야권의 반발 등으로 인해 발의 시점을 늦출 가능성은 존재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언론과 통화에서 "대통령이 21일에 개헌안을 발의할 확률이 높지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며 "최종적인 판단은 대통령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나 지자체와의 관계도 있는 만큼 이들과 개헌안에 대해 토론을 할 수도 있다"면서 "최종적인 내용이 확정되면 민정수석실 등이 조문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개헌은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개헌은 헌법파괴와 국정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외쳤던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개헌안 마련에 실패할 경우 불가피하게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개헌발의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혀 개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다시 한 번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찬에서 "이번 지방선거 때 동시투표로 개헌하자는 것이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과 모든 후보가 함께 했던 대국민 약속이었는데 국회가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다"며 “1년이 넘도록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아무런 진척이 없고 나아가 국민과 약속을 지키기 위한 대통령의 개헌 준비마저 비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책임있는 청지적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6월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는 대통령 약속이자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이며 국민 세금을 아끼는 길이기도 하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20대 국회에서 개헌의 기회와 동력을 다시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모든 것을 합의할 수 없다면 합의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헌법을 개정해 정치권이 국민에게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개헌을 국회가 주도하고 싶다면 말로만 얘기할 게 아니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약속을 실천해 나가겠다”며 “대통령 개헌안을 조기 확정해 국회와 협의하고 국회의 개헌 발의를 촉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며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으며, 누구도 국민주권을 신장하고 기본권을 확대하며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체제에 반대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마지막 계기마저 놓친다면 대통령은 불가피하게 헌법이 부여한 개헌발의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민 삶을 담는 그릇인 헌법이 국민의 뜻에 맞게 하루빨리 개정돼 국민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정치권의 대승적 결단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자문특위로부터 ▲ 대통령 4년 연임제 및 대선 결선투표 도입 ▲ 수도조항 명문화 ▲ 5·18 등 헌법 전문(前文) 포함 ▲ 사법 민주주의 강화 ▲ 국회의원 소환제 등을 담은 '국민헌법개정안' 책자를 전달받았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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