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선 "소송 남발, 단기 실적주의, 해외 투기자본에 악용" 우려

정부가 상법 개정을 통해 소위 '재벌 개혁'에 대한 시동을 재차 걸었다. 재계에선 이같은 개정안들이 단기실적주의 경영을 부추길 우려가 있으며, 특히 단기적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투기자본들에게 악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법무부는 11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 △주주총회에 전자투표제 도입 시 의결권 완화 등을 담은 상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도 자회사 이사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는 자회사의 불법행위로 모회사가 손해를 보면 일반 주주가 사측에 책임을 물을 적절한 법적 수단이 없다는 지적에 따른 도입이지만, 재계에선 자회사의 과감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자회사가 만약 적자를 기록하기만 한다면, 비상장회사의 경우 전체 주식의 100분의 1 이상, 상장회사는 1만분의 1 이상 보유한 주주는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다. 나아가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수단이 취약한 상황에서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공격 수단을 열어주는 꼴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오너지분이 매우 높은 지주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지분 0.01%만 갖고 있는 외국계 펀드가 자회사나 손자회사의 경영진에 대해 책임을 물어 악의적 소송을 제기하거나 경영적 판단에 제약을 줄 수 있게 된다.

법무부는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이사를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는 내용도 추진한다. 감사위원회 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같은 취지로 법무부는 '3%룰'도 정비한다. 상장회사의 감사위원을 선임·해임할 때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등을 합해 3%, 일반 주주는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되도록 일원화한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제도가 도입되면 외국계 자본 등이 합세해 감사위원을 세운 뒤 경영 간섭에 나설 수 있어,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막대한 자금 소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울러 법무부는 전자투표를 실시해 주주의 주총 참여를 제고한 회사에 한해 감사 등 선임 시 주주총회 결의요건을 완화하기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자투표를 실시한 회사는, 발생주식 총수요건을 고려하지 않고 출석한 주주의 과반수로 의결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에 재계에선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해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대부분 단기시세 차익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강제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장기적 주식소유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배준영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통령이 ‘평등한 경제’를 주장한 날,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을, 법무부는 다중대표소송제 등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여기에 해고자, 실업자까지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고용노동부의 ‘노동조합 관련법 개정안’까지 규제 법안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20대 국회 때 '과잉 규제', '기업활동 제지'라는 우려로 폐기된 법안들이었다"며 "정부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재계의 건의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177석의 거대 여당의 힘’에 의지한 채 입법 과속 페달을 밟으려고만 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20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된 바 있는 상법 개정안은 2016년 7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발의한 상법 개정안과 크게 다르지 않아 제1야당의 견제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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