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칼럼] 이것이 만주벌판에서 독립군이 벌였다는 항일무장투쟁의 진실이다
[김용삼 칼럼] 이것이 만주벌판에서 독립군이 벌였다는 항일무장투쟁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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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론을 섬기는 이 땅의 중화공산주의자들은 ‘중화의 나라’ 중국을 침략한 왜놈들은 곧 우리의 적이며, 우리가 대국을 대리하여 왜놈들과 싸우는 것은 대국에 의리를 지키는 소중화 나라의 신하로서 당연한 일이 된다. 정신상태가 이러하므로 문재인 대통령 입에서 “중국은 큰 나라(대국), 중국몽(中國夢)과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쯤은 지당한 행위가 된다. 신(新)사대주의, 신(新)소중화가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만개하고 있다.

#1. ‘그들’과 다른 사실을 말하면 범죄자가 되는 세상

불과 얼마 전 진행되었던 현대사를 두고 말들이 많다. 모 여당 의원은 드디어 제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역사왜곡금지법’ 대표 발의자로 총대를 메고 나섰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 폄훼하거나, 피해자 및 유가족을 이유 없이 모욕하는 경우 최대 7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겠다는 내용이다. 2회 이상 재범 시 곧바로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고, 피해자나 유족의 고소가 없더라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조항도 신설됐다.

이것은 자기들과 생각이 다른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재갈을 물리겠다는 역사전쟁의 선전포고다. 아니 21세기판 분서갱유(焚書坑儒)이자 문재인 정권이 진시황·레닌·스탈린·마오쩌둥(毛澤東)의 계보를 잇는 공산독재 전체주의 파시스트 정권임을 전 세계에 공인받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야당은 있으나마나 한 고자(鼓子)·환관(宦官) 정당, 여당 뺨치는 좌파 정당임을 스스로 커밍아웃 했으니 관련 법안은 이미 통과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나치나 스탈린 시대, 문화대혁명을 방불케 하는 악법이 백주에, 중인환시리에 국회를 통과하여 이 나라의 지성을 끔찍하게 말살하는 아비규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2. 백선엽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현대사와 관련, 가장 핫(hot)한 이슈 메이커로 부상한 인물이 백선엽 장군이다. 1920년생이니 올해 101세의 노옹(老翁)을 두고 왜 이리 말이 많은가. 그가 태어난 시기가 재수 없게 일제하에서 태어난 것이 피할 수 없는 원죄였다.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소작인들을 마소 부리듯 호의호식하며 사회주의 서적 나부랭이 옆구리에 끼고 도쿄 환락가에서 신여성과 연애질이나 하며 세월 죽였다면 그가 이토록 모욕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입신양명을 위해 만주로 간 것이 죄였다. 하필이면 학비 없이도 공부할 수 있는 만주군관학교를 간 것도 죄였다. 만주군 장교로 임관하여 계급장을 단 순간, 그는 영락없는 친일파 낙인이 찍혔다. 이를 두고 백선엽 혼자서만 너무 억울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땅의 제도와 법규에 의하면 그가 친일 행위를 했든 말든 그런 것은 상관없다. 대한민국은 이제 일제하에서 육군 소위 이상 재직한 자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전원을 친일파로 낙인찍는 전체주의 팟쇼 왕국 아닌가.

백선엽 장군이 몸담았던 간도특설대는 항일 무장독립군을 때려잡은 것이 아니라 만주에서 준동하던 중국공산당 산하 빨치산을 소탕한 것이다. 중화공산주의자들은 국민들이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틈을 타서 백선엽에 대한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백선엽 장군이 몸담았던 간도특설대는 항일 무장독립군을 때려잡은 것이 아니라 만주에서 준동하던 중국공산당 산하 빨치산을 소탕한 것이다. 중화공산주의자들은 국민들이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틈을 타서 백선엽에 대한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에겐 한 가지 죄목이 더 부가된다.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며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고, 낙엽으로 전투함을 만드시고, 모래알로 쌀밥을 지어 간악한 일제와 투쟁한 영명한 항일무장 독립군 때려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다는 사실 말이다.

뭐 간도특설대? 알고 보니 이 자는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악질 반동 아닌가. 선동질이 이쯤 진행되면 듣는 사람들 입에서 “이런 썩을 ×”, “부관참시를 해도 시원치 않을 ×” 운운하며 “이런 친일 반역자가 국립현충원에 묻히는 것은 호국영령이 통곡할 일이며 국가의 수치”라며 부르르 떨게 된다.

#3. 대체 그 시절 만주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대체 간도특설대가 뭐하던 부대였을까? 이런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 따위를 묻거나 따지지 마시기 바란다. 의심하는 자들은 영락없이 ‘역사왜곡금지법’에 걸려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아직 문제의 악법이 통과되기 전이니 할 말은 좀 해야겠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 관동군은 중국으로부터 만주를 떼어내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을 선포했다. 수도를 신경(新京·현재의 창춘)으로 정했으며, 영토는 동북3성과 러허성(熱河省·허베이성, 랴오닝성 및 내몽골 자치구의 교차 지역) 일대를 포함했다. 만주국 면적은 한반도의 6배, 일본 본토의 3.4배, 인구는 3,000만 명 정도였다.

일제는 1934년 3월 1일, 청조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를 업어다 만주국 황제에 즉위시켰다. 만주국은 만주족과 중국인(漢族)·몽골족·한국인·일본인 등 다섯 개 민족이 오족협화(五族協和)를 이루어 민족자결 원칙에 기초한 국민국가를 표방했다. 하지만 실제 통치는 일본제국 관동군이 행함으로써 사실상 일본제국의 괴뢰국가이자 식민지였다.

만주국 수도 신경(현재의 창춘) 시가지 모습. 일본은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에서 만주를 떼어낸 다음 1932년 만주국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만주로 가서 입신출세의 길을 걷게 된다. 최규하가 그랬고, 강영훈이 그랬으며, 백선엽 정일권 박정희가 그랬다.
만주국 수도 신경(현재의 창춘) 시가지 모습. 일본은 1931년 9월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에서 만주를 떼어낸 다음 1932년 만주국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만주로 가서 입신출세의 길을 걷게 된다. 최규하가 그랬고, 강영훈이 그랬으며, 백선엽 정일권 박정희가 그랬다.

이런 말을 하면 발끈 하는 인간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인간이란 원래부터 태생적으로 기회주의적 동물이다. 난세를 돌파할 능력이 있는 영웅이나 초인(超人)들은 예외이겠으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말 안 해도 다 안다. 난세가 닥치면 이성이나 합리, 의리 따위 다 팽개치고 본능적으로 살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나의 생존과, 자리보전과 출세와 입신양명을 위해 힘 센 쪽에 붙는다는 사실을. 이것을 부정하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당시 만주에는 먹고 살기 위해 압록강·두만강을 건넌 70만~80만 명의 한국인이 대부분 중국인 지주의 땅을 소작 붙여 먹고 살았다. 예외가 있었다면 훗날 북한 수령이 된 김성주의 아버지가 가짜 세브란스의대 졸업장을 위조하여 돌팔이 무면허 의사 행세로 돈을 번 정도였다.

만주 일대에 진출한 한국인들은 나라를 빼앗긴 유랑민 신세에다가, 중국인 지주들의 소작인으로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극빈 최하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첨예한 갈등이 완벽하게 성숙된 계층이었던 것이다.

공산혁명을 일으켜 지주의 땅을 빼앗아 무상으로 분배한다,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고 기층농민과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슬로건은 그대로 폭발했다. 그들은 선전선동의 약발이 제대로 먹혀 드는 재만 한국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겼다.

만주의 한국인들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뭔지 고민 없이 청년동맹이나 농민동맹 조직에 스스럼없이 가입했고, 약소민족을 후원하는 소련과 연계되어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믿음을 갖고 소비에트 조직에 앞장섰다. 일본 측 통계에 의하면 만주 거주 한국인들의 85%가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만주사변을 분기점으로 만주 한국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본에 협조하거나(親日), 일본과 맞서거나(抗日) 택일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중국공산당이냐, 일·만 제국주의냐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4. 한국의 엘리트 청년들, 만주로 가다

만주국이 출범하자 일본은 만주 국군을 창설했다. 필요한 인재 확충을 위해 1933년 4월, 2년제 봉천군관학교를 설립하고 한국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이렇게 되자 일제하의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뜻을 펴지 못한 젊은 인재들에게 기회가 왔다. 신천지로 떠오른 만주국에서 장교가 되기 위해 만주로, 만주로 떠난 것이다. 봉천군관학교 4기생이 계인주와 김응조, 5기생이 신현준(해병대사령관 역임), 김일환(이승만 정부에서 국방부차관, 상공·내무장관 역임), 정일권(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 역임), 백선엽이 9기생이다.

1940년 12월 봉천군관학교는 신경(新京)육군군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학교 1기 졸업생 중 한국인은 박임항, 이주일, 김동하 등이고, 2기 졸업생이 박정희, 이한림이다. 강문봉은 5기, 김윤근이 6기로 졸업했다. 봉천·신경군관학교를 합쳐 만주군관학교라 칭한다.

다롄에서 만주국 수도 신경까지를 7시간에 주파한 만철의 아시아호. 그 시절 만주는 극동지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고, 오족협화의 실험장이었으며, 식민지 시절 한국인들에게 열린 출세의 길이었다.
다롄에서 만주국 수도 신경까지를 7시간에 주파한 만철의 아시아호. 그 시절 만주는 극동지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고, 오족협화의 실험장이었으며, 식민지 시절 한국인들에게 열린 출세의 길이었다.

 

오족협화를 표방한 만주국이었기에 한국인들도 능력만 있으면 고급 관료로의 지위 상승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3년대 후반, 조선의 야망 있는 지식인과 청년들이 대거 만주국으로 이동했다. 만주 건국대학, 대동학원을 졸업하고 만주국 관리가 된 한국인들도 3,000여 명이나 된다.

최규하는 만주 대동학원을 졸업하고 만주국 관리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강영훈 국무총리와 민기식 육군참모총장 등은 만주 건국대 출신이다. 훗날 만주국에서 육성된 인재들이 한국 정계의 주요 인맥을 형성한 것은 이런 경험과 교육 덕분이다.

#5. 만주벌판에서 동족상잔 벌어지다

1920년대 자유시 참변으로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의 주역이었던 한국인 무장 독립세력이 소련 적군들에게 몰살당했다. 이로써 만주 일대에서 민족주의 계통의 항일투쟁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민족주의 계열의 항일 세력은 지청천(혹은 이청천)이 지휘하는 한국독립군, 양세봉이 지휘하는 국민부의 조선혁명군 정도였다.

지청천이 이끌던 세력은 1933년 10월 해산하고 상해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양세봉 세력도 1938년 9월 6일 해체되면서 민족주의 계열의 무장투쟁은 소멸했다(이명영, 『김일성열전』, 신문화사, 1974, 162~163쪽). 남은 세력은 중국공산당 산하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 빨치산 부대였다.

일·만군이 토벌 과정에서 공산 빨치산들을 체포해 보니 대부분이 만주로 이주해 온 한국인들이란 사실이 발견됐다. 중국공산당이 재만 한국인들로 빨치산 부대를 조직하여 일·만군을 공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그들 수법에 당하고만 있을 어리석은 일제가 아니었다. 그들도 이이제이를 준비했다. 1939년 3월 한국인 위주로 간도특설대를 창설한다. 간도특설대는 사병 및 부사관 전원이 한국인, 장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절반씩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중국공산당이 만주의 한국인 공산주의자를 동원하여 동북항일연군을 조직, 일.만군을 공격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인 위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를 조직하여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했다. 그리하여 만주벌판에서 중국공산당 편에선 한국인과, 일,만주국 편에 선 한국인들이 중국과 일본을 대리하여 피 튀기는 살육전을 벌인 것이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공산당이 만주의 한국인 공산주의자를 동원하여 동북항일연군을 조직, 일.만군을 공격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인 위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를 조직하여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했다. 그리하여 만주벌판에서 중국공산당 편에선 한국인과, 일,만주국 편에 선 한국인들이 중국과 일본을 대리하여 피 튀기는 살육전을 벌인 것이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만군은 만주 일대에서 한국인들이 주력이 된 간도특설대를 동원하여 대부분의 대원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중국공산당 산하의 동북항일연군을 토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어 만주 땅에서 중국공산당 편에 선 한국인 공산주의자들과, 일본·만주국 편에 선 한국인들 간에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격돌이 벌어졌다. 중국과 일본이 벌이는 싸움에 한국인들이 희생 제물로 동원된 것이다.

한국인 위주로 조직된 간도특설대는 사격, 총검술, 소부대 전투에 능했다. 특히 야간 기동에 뛰어났으며, 하룻밤에 100여 리를 주파하는 등 전투력이 뛰어나고 군기가 엄정했다. 만주군에서 사격, 총검, 검도 경연대회가 열리면 우승을 휩쓸다시피 한 것이 간도특설대였다.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인 백선엽은 그 이유를 “다른 민족의 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 특히 일본인에게 지지 않으려고 훈련에 매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김효순, 『간도특설대』, 서해문집, 2014, 152쪽).

#6. 동북항일연군이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웠나?

여기서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에 부딪친다. 과연 간도특설대가 조선의 항일무장 독립군을 토벌한 것이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이 토벌한 대상은 만주의 마적·비적,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동북항일연군의 빨치산 중에 한국인들도 있었는데 그들 거의 대부분은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중국인’이었다.

그렇다면 동북항일연군 소속의 한국인들이 조선 독립을 위해서 싸웠나? 아니다. 그들은 중국공산당의 일원으로서 중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운 존재들이다. 동북항일연군의 활동목표와 행동강령은 ①반만항일(反滿抗日)로 동북 실지(東北失地)의 회복, 중화(中華) 조국의 옹호 ②일적(日賊) 주구의 재산 몰수 ③민중과 연합하여 항일구중국(抗日救中國)’(만주국 군정부 고문부 편, 『만주공산비적의 연구』, 신경(新京) 군정부, 1937, 434~435)이라고 명문화 되어 있는 것이 그 증거물이다.

정말로 미안하고 안 된 이야기지만,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되었던 한국인 빨치산들은 한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중국 국적자로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중국 지도부의 명령을 받아 중국의 독립과 해방, 잃어버린 만주(동북) 지역을 회복하고, 중화 조국을 옹호하기 위해 투쟁한 것일 뿐이다.

간도특설대는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준동한 중공 빨치산을 토벌한 것이지,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운 항일무장 독립군을 때려잡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백선엽에게 씌워진 죄목은 날조된 가짜다. 역사의 법정에 백선엽이 서게 된다면 당연히 그는 범죄혐의가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그에게 가해지는 파시즘적 폭력의 진상은 “너 왜 그 시절에 우리 공산 빨치산 선배님들 열심히 때려잡았어!, 그러니 너 혼 좀 나 봐!” 이것 아니겠는가.

#7. 역사의 격랑에 부딪친 청춘들

만주라는 공간은 한민족 현대사에서 의미심장한 두 개의 그룹을 배양해냈다. 한 그룹은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공산당에 소속되어 동북항일연군의 일원으로 빨치산 활동을 했다. 그 반대쪽에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혹은 만주국) 국적자로서 만주군(혹은 일본 관동군) 소속으로 동북항일연군과 싸웠다.

만주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일제의 편에 섰던 그룹은 후에 대한민국 국군의 주역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핵심 요직을 구성하게 된다. 반면에 중국공산당과 소련군 편에 서서 투쟁한 그룹들은 후일 북한으로 들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설의 핵심이 되었다.

만주국은 또 관료가 이끄는 발전국가 체제, 사회동원 측면에서 후일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국가형성의 국제적 고리 역할을 한다. 많은 분야에서 일본과 한국 사이에 실험실 ‘만주국’이 존재(한석정, 앞의 책, 15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가라고 무시하고 짓밟아버리기 이전에 기억해야 한다.

그 시절에 태어난 것이 죄일 뿐, 이러한 운명적 갈림은 개개인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격랑은 한 인간의 의지 따위는 거침없이 날려버리는 질풍노도로 다가온다. 그 질풍노도의 깊은 상처가 오늘날까지 남아 북한과 한국의 좌익 전체주의 세력은 ‘항일 무장투쟁’이라는 날조된 사실에 근거하여 대한민국의 건국 및 호국세력을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매도하며 현대사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젊은 청년들이 서로 다른 나라(중국 대 일본)와 이데올로기(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로 갈라져 서로를 적대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 근대사가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덧씌운 역사의 뼈아픈 원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주에서 청년 시절을 보낸 한 사람이 토대를 놓은 국가는 그 뒤 세계 10위권의 중강국가(middle power)를 이룩했고, 다른 한 사람이 만든 국가는 세계 최빈국가로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최악의 실패국가가 되었다(박명림, 「박정희와 김일성-한국적 근대화의 두 가지 길」, <역사비평>, 2008년 봄호(통권 82호), 역사비평사, 131쪽).

과연 식민지 36년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역사라는 괴물을 쾌도난마식으로 항일·친일 논리로 선악의 결판을 낼 수 있을까? 누가 백선엽에게, 그리고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8. 소위, ‘역사왜곡 금지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고함

동북실지를 회복하고, 중화조국을 옹호하며, 중국을 구하는 반만항일투쟁이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이라고 우기면 그것은 정신과 치료를 요하는 중증 환자들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조선 후기의 위정척사·척화양왜를 부르짖던 주자성리학에 중독된 조선 유생의 현대판 재림이다. 그런 주장들은 대국인 중국을 섬기는 사대모화이자 조선 중화주의의 끝판왕임을 선언하는 증거물이다.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론을 섬기는 이 땅의 중화공산주의자들은 ‘중화의 나라’ 중국을 침략한 왜놈들은 곧 우리의 적이며, 우리가 대국을 대리하여 왜놈들과 싸우는 것은 대국에 의리를 지키는 소중화 나라의 신하로서 당연한 일이 된다. 정신상태가 이러하므로 문재인 대통령 입에서 “중국은 큰 나라(대국), 중국몽(中國夢)과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쯤은 지당한 행위가 된다. 가히 신(新)사대주의, 신(新)소중화의 해바라기가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만개하였다.

이쯤 되면 해결책이 필요한 때다. 삼성그룹 역사상 첫 여상(女商) 출신의 이력을 자랑하는 여당 의원이 입법 발의한 ‘역사왜곡금지법’을 적절히 활용하면 되겠다. 심의 괴정에서 일제 시절 만주에서 조선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항일무장투쟁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승만과 박정희의 역사적 역할을 부정하고 뒤집는 사람들, 해방 공간에서 공산폭동·반란을 민중봉기니 항쟁이라고 날조한 자들의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조사한다.

그리하여 이들이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투쟁한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위해 투쟁한 사실, 이승만·박정희의 긍정적 역할이 제대로 드러나고, 해방공간의 민중봉기 항쟁이 사실은 공산폭동·반란이란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질 경우,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한 사람들도 7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만 추가하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아마 그 입법의 제1호 피해자는 백선엽이나 간도특설대 출신이 아니라 김일성을 비롯한 항일 사기꾼들이 되지 않을까?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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