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의견 수렴없이 강행한 정책들… 심각한 부작용 속속 드러나
세금 낭비-국민 불편 누가 책임질 건가

지역명 뺀 차량번호판과 도로명주소 등은 행정실패 사례로 보인다.(연합뉴스 제공)
지역명 뺀 차량번호판과 도로명주소 등은 행정실패 사례로 보인다.(연합뉴스 제공)

 

역대 정부가 지역감정을 해소한다는 등의 명분을 내걸고 강행한 각종 정책들의 부작용이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자동차번호판에서 시도(市道)명을 없애고 전국번호판체계로 바꾼 것, 본적지 제도를 폐지한 것, 주소 체계에서 동(洞)을 없앤 도로명 주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지역감정을 줄이겠다며 느닷없이 자동차번호판에서 서울 부산 광주 대전 경북 충남 전남 같은 시도명을 없애고 전국 등록 차량을 단일 자동차번호판 체계로 변경했다. 이어 2년 뒤인 2006년에도 한 차례 개편했다.

자동차번호판에서 시도명이 없어지면서 활용할 수 있는 번호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서울 11 가 1234와 부산 11 가 1234가 동시에 있을 수 있었지만 전국 번호판이 되면서 시도명만 다르고 다른 번호는 동일한 번호판이 불가능해졌다. 특히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지급할 번호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현행 번호판체계로는 내년 하반기부터 신규 등록차량에 새로운 번호를 지급할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번호판 포화 상태가 다가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내년 상반기에 또 번호판체계를 개편하겠다고 11일 밝혔다. 현재 '52가3108'같은 번호 체계에서 맨 앞에 숫자 한 자릿 수를 더한 '152가3108' 체계나 한글에 받침을 더한 '52각3108' 체계 중 하나로 결정하기로 하고 의견수렴에 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걸핏하면 제도를 보완하면서 국민 세금 낭비와 자동차 소유자들의 혼란 같은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 자동차번호판체계 도입 때도 이런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묵살당했다.

지역감정 해소라는 명분을 내건 정책은 자동차 번호판이 처음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주장한 호적제 폐지 역시 '지역'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벌어졌다.

남성 위주의 사회를 바꾼다는 여성 운동가들의 요구를 정치권이 수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호적제 폐지와 더불어 본적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서류상으로는 출신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호적제가 폐지되고 노 대통령 퇴임 직전인 2008년 1월 가족관계등록제도 시행 등을 통해 본적을 등록기준지가 대체했고 부모의 고향을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본적과 달리 등록기준지는 신청자가 자신의 고향을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본적지는 없어졌지만 정부나 공공기관 등의 고위 인사 임명 과정에서 출신지 확인은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또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서 특정 인사의 출신지를 공개하거나 비공개하는 등 음성적인 후유증이 적지 않다. 미국 일본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요 인사의 출신지는 당연히 공개되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종전의 '지번 주소'에서 시군구와 읍면까지는 같지만 동이나 리(里), 아파트 이름 대신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사용하는 도로명주소 역시 본격시행한지 4년 여나 지났지만 여전히 편리함보다 불편함이 더 많은 정책으로 꼽힌다. 도로명주소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0년대 후반 일부 지자체 시범사업을 거쳐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4월 국회에서 도로명 주소법이 제정되면서 본격화했다. 2011년 7월 도로명 주소 고지(告知)에 이어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월 전면시행에 들어갔다.

총 4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도로명주소는 개인이 거주하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명기하던 기존 주소를 도로명과 숫자(동·아파트 번호)로 대처하면서 주소만 봐서는 정확히 거주하는 공간을 직관적으로 연상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익숙한 동과 리가 새로운 주소 체계에서 사라져 새 주소만으로는 제대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워 택시 탑승 등 실생활에서는 도로명 주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또 주소에서 동네와 아파트 이름을 빼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돼 현재 도로명주소는 숫자 뒤에 아파트와 동네 이름을 병기하고 있다. 스스로 기존 주소와 차별을 두지 않으면서 시행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것이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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