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칼럼] ‘국군포로’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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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6.03 11:13:59
  • 최종수정 2020.06.0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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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 분들과 그 가족에 대해 늘 생각하고 추모와 감사의 정을 갖는 것은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
황인희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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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어른이 된 후에도 6월6일 현충일이 오면 반드시 조기(弔旗)를 내걸고 오전 10시 사이렌 소리를 기다려 묵념도 했다. 나이가 어렸어도 나라를 지키느라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에 대한 경건함과 진심은 충만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6월이 돌아왔다. 어차피 올해 2020년은 ‘코로나19’ 때문에 엉망진창이 돼 버린 해다. 상반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사회가 정상화가 안 돼 있는 상황에서 6월의 의미가 정상적으로 표출될 것을 기대한 것이 잘못일까? 심지어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해인데, 올해 6월은 그 어느 해보다 더 뒤죽박죽이 돼 버린 느낌이다.

올해는 분노와 슬픔에 시달리게 하는 뉴스가 유독 많았다. 4월 말에는 ‘6·25 참전 소년소녀병전우회 ’라는 단체가 활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04년 설립된 이 단체의 소망은 “소년소녀병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해달라”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우파 정권이든 좌파 정권이든 가릴 것 없이 이들의 소망을 한결같이 외면했다.

소년소녀병은 14세부터 17세 사이 어린 나이에 참전한 병사들이다. 국방부가 가진 통계에 따르면 6·25전쟁에 참전한 소년소녀병은, 462명의 소녀병을 포함해, 모두 2만9,616명이다. 이 가운데 2,573명이 전사했다. 그들이 최초로 참전한 전투는 1950년 8월4일의 낙동강 방어선 다부동 전투라고 한다. 다부동 전투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55일 동안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냈기에 인천상륙작전도, 서울 수복도, 오늘의 자유대한민국도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우회의 마지막 회장을 맡은 윤한수 회장는 “그저 소년병 출신 노인들에게 ‘나라를 지키시느라 수고하셨다’ 한마디 해주면 됩니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안 해주는지 모르겠네요. 이젠 그런 기대를 접으렵니다”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웠을까? 관련 부처에서는 “개별 공적을 따지는 다른 국가유공자와 달리 어려서 참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면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라는 이유로 이들의 청원서를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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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현충원. 이곳이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을 모신 경건한 곳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지난 5월20일 정부는 5·24 대북 제재 조치에 대해 “남북 간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공식 발표를 내놨다. 5·24 조치는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의 책임을 물어 북한에 가한 제재 조치다다. 정부 주변에선 “사실상 5·24 조치 폐기 선언 아니냐”라는 말도 나왔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인정이나 사과 한마디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그냥 그들의 만행을 용서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느닷없이 당장 꼭 필요한 것도 아닌 그런 결정을 한 이 정부는, 천안함 폭침으로 목숨을 잃었거나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분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방의 바다를 수호하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까?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희생에 죄송하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을까? 하긴 북한과 전투를 치르다 희생당한 분들의 유가족을 초청한 식탁에 김정은과 대통령이 사이좋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사진을 팜플렛에 담아 자랑스럽게 내놓는 정부이다. 그러니 그런 생각 갖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듯하다.

5월 말에 불거진 백선엽 장군에 관한 뉴스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말만 나오게 한다. 백선엽 장군은 6.25 당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영웅이다. 그런 분에게 서울현충원에 자리가 없고 그곳에 묻히면 나중에 ‘이장(移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했다는 것은 도대체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예의라는 개념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의심스럽게 한다.

이맘 때면 자주 들먹여지는 미국 영화가 한 편 있다. 로스 카츠(Ross Katz) 감독의 〈챈스 일병의 귀환〉(원제: Taking Chance)’이다. 이는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영화에는 2004년 9월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국 해병대의 챈스 펠프스(Chance Phelps) 일병의 유해를 유족에게 운구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운구 책임을 맡았던 마이클 스트로블(Michael Strobl) 미 해병대 중령은 전사자 명단에서 자신과 출신지가 같은 챈스 일병(19세로 전사)의 이름을 발견하고 장교로는 이례적으로 운구 임무에 자원한다. 스트로블 중령은 이라크에서 수송기 편으로 미국 델라웨어 주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한 챈스 일병의 유해를 인수하여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자동차로 몇 시간 동안 달려 챈스 일병의 부모가 살고 있는 와이오밍 주의 작은 마을에 다다른다.

이 영화에는 스펙타클한 장면이나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도 사용되지 않았다. 제작비를 많이 들였다든가 과장을 위해 인위적인 가공을 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여정 중에 평범한 시민들이 운구 과정을 대하는 모습들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섬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다해 전사자와 유족을 예우하는 그들의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몇 번을 되풀이해 봐도 질리지 않는 감동의 영화이다. 영화가 끝나면 언제나 ‘우리나라에서는 왜 저렇게 못 하는 걸까? 엄청난 예산을 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예우를 갖추자는 것인데…’하는 안타까움이 몰려온다. 해마다 정부의 몰지각한 행동에 비판도 하고 남의 나라 영화까지 들먹이며 상황이 나아지기를 촉구해 보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분들과 유가족에 대한 ‘정부’라는 조직의 태도는 점점 더 나빠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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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1월21일 열린 국군포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 안내문.

어떤 정치 성향을 지닌 정권이 집권했든 좀처럼 해결이 안 되는 문제 중 하나는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의 문제이다. 전쟁 후 국군포로가 북한에 억류되었고 아직도 그곳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들과 그들을 기다리는 남한의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6.25전쟁 때 국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던 이분들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김일성교시43호’에 따라 북한에 억류되고 ‘내무성건설대’에 강제로 편입되었다. 당시 북한 당국은 마치 희망자를 남한으로 보내줄 것처럼 “남조선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일어나라”라며 말하고는 일어선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쏘았다고 한다. 당연히 이후에는 누구도 남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 표시를 할 수 없었다. 이른바 ‘자발적 북한 귀순’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의 숫자는 최소 5만 명, 최대 7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후 국군포로들과 북한에서 이룬 그 가족들은 ‘43호’라 불리며 갖은 멸시를 견디며 탄광 등지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북한에서 최하위 계층으로 분류된 그들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살았는가는 탈북한 국군포로와 가족들의 입을 통해 남한 사회에 조금씩 전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50년 넘게 북한에서 어처구니없는 고통 속에 시달린 후에 사선을 넘어 고향을 찾아온 분들이다. 탈북한 국군포로는 6.25 때 17세의 소년병이었다 하더라도 70년이 지난 지금 80대 후반이다. 그러니 그들은 모두 고령의 할아버지이다. 총 80여 명의 탈북 ‘국군포로’ 가운데 2020년 1월 현재 23명만이 생존해 있다고 한다.

​아직도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부는 그분들을 모셔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평양까지 갔을 때도, 공산주의자이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으로 돌려보낼 때도, 엄연히 남한의 국민인 국군포로를 데려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2020년 6월, 국군포로와 관련하여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이 있다. 김정은과 북한 당국을 상대로 국군포로 어르신 두 분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송은 제기된 지 3년을 넘긴 올해 1월에야 처음으로 정식 재판이 열렸고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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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의 끊어진 다리 너머 북한 땅에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이 살고 있다.

지난 1월 21일 첫 재판이 끝난 후 기자들 앞에 선 변호인단은, 이번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핵심은 포로 송환을 거부하고 이들을 억류한 북한에 책임을 묻는 동시에 우리 국민에게 ‘국군포로’ 문제를 알리는 데에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은 이 소송의 취지대로 많은 국민이 국군포로 문제를 인식하기를 기대해본다. 올 6월 출간 예정인 신이산 작가의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소설도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의 비참하고도 억울한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가지로 우울하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살아계시거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 분들과 그 가족에 대해 늘 생각하고 추모와 감사의 정을 갖는 것은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다. 정부가 그들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는다고 한탄이나 비난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잘못하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늘 촉구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가장 나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눈을 감고 외면해버리는 것이다. 안된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면 될 때까지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앞서 실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인간의 도리’를 제대로 하는, 부끄럽지 않은 국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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