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무부, ‘금융제재법 위반’ 혐의로 조선무역은행 관계 북한인 28명, 중국인 5명을 연방대배심에 기소
250개 위장회사를 통해 최소 25억 달러 거래...美은행 이용돼

뉴욕 타임즈 해당 기사 화면 캡처

미국 법무부가 북한의 조선무역은행 관계자 등 30여 명을 미국의 금융제재법 위반 혐의로 연방대배심에 기소했다. 이는 미국이 기소한 북한의 제재 위반 사건 중 최대 규모다. 미국 정부가 제재 지정이나 주의보 발령 등을 넘어 실질적으로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 이번 조치의 가장 큰 의미로 보인다. 또한 중국과의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중국에 대북협조에 대해 경고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 법무부는 28일(현지시간) 북한 국적자 28명과 중국인 5명에 대한 연방 대배심 기소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이들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운용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250여 개 위장회사를 이용해 25억 달러(3조 1천억원) 규모의 돈세탁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기소장에는 이들의 위법 행위가 50쪽에 걸쳐 상세히 담겨 있으며 상당 부분 ‘대북 제재’와 관련돼 있다.

미국 정부는 이 자금이 북한정권이 운영하는 조선무역은행에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이 자금을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자금으로 사용했다.

피의자 33명은 모두 조선무역은행과 이 은행을 통해 운영된 위장회사 소속 직원들이다. 지난 2월 5일 연방 대배심에 의해 기소됐는데 법무부는 이날 예고 없이 기소 사실을 공개했다.

피의자는 조선무역은행 은행장으로 활동하던 고철만과 김성의, 부은행장인 한웅과 리정남 등 핵심 인물들과 이 은행 본사 직원인 조은희와 오성휘, 리명진 등이다.

또한 중국 베이징과 선양, 주하이를 비롯해 러시아 모스크바와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 그리고 리비아와 쿠웨이트 등에서 조선무역은행을 운영하거나 대리한 북한인들도 대거 기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조선무역은행 선양지점에 소속된 김동철과 김진 등은 위장회사인 ‘수머 인터내셔널 그룹’과 ‘헤드순 트레이딩’ ‘선양 브라이트 센츄리’ 등의 운영에 관여해 이들 회사와 관련된 중국인 황하일린 등과 함께 기소됐다.

피의자들은 미국의 긴급경제권한법(IEEPA)과 대북제재법, 대량살상무기 확산제재법, 국제돈세탁, 은행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달러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위법 사항이다. 또한 송금 등을 할 때 간접적이지만 미 금융망을 이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미국은 각종 불법 활동에 미국 화폐를 이용하는 행위에 ‘돈 세탁’과 ‘은행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피의자들과 다른 공모자들이 250개 위장회사를 통해 최소 25억 달러를 거래했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의 은행이 이용됐다는 내용이 기소장에 적시됐다. 마이클 셔윈 워싱턴DC 연방 검사는 “이번 검사는 미국의 금융시스템에 불법적으로 접근하려는 북한의 역량을 방해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또한 셔윈 검사는 “미국은 불법적 활동을 통한 자금으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는 북한의 능력을 제한하는 데도 전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소장에는 이 25억 달러가 언제, 어떻게 거래됐는지도 상세하게 적시됐다. 예를 들어 지난해 3월 20일 고철만과 한웅, 리정남은 조선무역회사의 위장회사가 북한정권을 대신해 미국의 회사에 19만 5천 달러를 지불하도록 했다. 또한 김동철은 2014년 4월 3일 ‘인터내셔널 브릿지 커머셜 그룹’이라는 회사가 2만 4910 달러를 중국 전자회사의 중국 계좌에 송금하도록 했는데 이 금액이 미국의 은행을 통해 처리됐다는 설명이었다.

앞서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2013년 조선무역은행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이 은행 관계자와 위장회사 등에 대해 추가적으로 대규모 독자 제재를 단행했다. 이번에 기소된 피의자 상당수는 당시 미국의 제재 명단에 오른 인물들이다.

미국은 연방수사국(FBI)과 검찰 등의 수사를 토대로 일반인들로 구성된 대배심원들이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의 법체계를 갖고 있다. 기소장에 따르면 이번에 기소를 결정한 연방 대배심은 2018년 5월 3일에 구성됐으며 판결은 워싱턴 DC 연방법원이 담당한다.

다만 피의자 대부분은 북한과 중국 등 제3국에 머물고 있어 실제 미국으로 송화돼 재판을 받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지적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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