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 따라 교과서 내용 수정…교과서 '가치' 무너져
책임자도 모르게 일방적으로 내용 수정…교육현장서 절차상의 정의 무시하나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교육은 교사와 학습자 그리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교육내용,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교과서는 교육내용을 담고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그 중요한 교과서에 경고등이 켜졌다. 교과서에서 ‘가치있고 바람직한 것들’이 사라지고, 만들어지는 절차도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입맛’에 맞춰 바뀌는 교과서 내용…가치의 실종

올해 신학기부터 6학년 초등학생들은 총 213건이 수정된 사회 교과서를 사용한다. ▲'북한은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148페이지)는 문장이 삭제됐고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이 모두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뀌었다. ▲또 '유신 체제' '유신 헌법에 따른 통치'는 '유신 독재'로 고쳤고, ▲새마을운동 관련 사진은 누락됐다.

▲5·16 군사정변에 대한 설명은 ‘중립성’을 의심받을 만한 표현으로 수정됐다, 종전 교과서는 “정부가 4·19 혁명 후 각계각층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자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군인이 국민 생활 안정과 공산주의 반대를 주장하며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잡았다”고 서술했으나, 새 교과서는 “당시 정부가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세운 계획을 이유로 군대를 축소하려고 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이 정부의 무능과 사회 혼란을 구실로 군대를 동원하여 정권을 차지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설명은 ‘과격’하게 변했다. 기존 교과서는 '일본군위안부'라는 명칭이 초등학생들에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넣지 않았으나, 수정된 교과서에는 교과서에 '일본군위안부'라는 명칭은 물론 또렷한 위안부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또 “식민지 한국의 여성들뿐 아니라 일제가 점령한 지역의 여성들까지 강제로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통을 당하였다”는 설명도 추가했다. 일본이란 나라와는 두고두고 외교관계를 전향적으로 유지 할 수 없게 기술된 대목이다.

정규 수업시간에 사용하는 교과서에 버금가는 ‘초·중·고 통일교육 교재’ 역시 우려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이 지난 5일 발간한 '북한 이해' 최신판의 내용을 보면 ▲‘金씨 일가 3대 권력 세습'은 '김정은 체제 공고화'로 바뀌었고, ▲공개처형·정치범수용소 내용은 삭제됐다. ▲2017년판까지만 해도 서술돼 있던 북한도발 역사도 사라졌다. “북한은 지난 반세기 동안 3040회에 이르는 대남 군사도발을 감행했다” “(북은) 평화 제스처와 위장평화 공세를 선행한 후 군사력과 압력을 행사했다”는 서술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북한의 인권 관련 내용도 대폭 축소되어, 교재에서 '인권 침해' 챕터는 '인권상황'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고, 분량도 12페이지에서 3페이지로 줄었다. ▲특히 '공개 처형', '정치범수용소'라는 표현과 관련 내용은 모두 삭제됐다. ▲또 핵심계층, 동요계층, 복잡계층 등 북한의 출신성분을 다룬 '사회계층 구조' 챕터, 사상·정치조직·법을 통해 주민을 통제하는 방법을 소개한 '사회통제 방식' 챕터도 없어졌다. ▲대신 북한 주민들의 의식주, 여가, 명절, 관혼상제 등 관련 내용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북한 체제에 대한 표현도 상당 부분 수정됐다. “수령 독재 체제”와 “일당 독재 체제” 표현은 각각 “수령 체제”와 “일당 지배 체제”로 바뀌었다. '독재'란 표현을 의도적으로 뺀 것이다.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도 '유일 체제'로 바꿨다. '개인을 신격화한 정치체제'란 표현은 '개인숭배 정치체제'로 대체됐다. '세습'이란 단어대신 '권력 세습과 김정은 체제'란 챕터는 '김정은 체제 형성과 공고화'란 표현으로 바뀌었다. 김일성→김정일, 김정일→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 과정을 기술한 '권력 세습 과정' 챕터는 아예 사라졌다.

또한 이번에 사라지는 장(章) 중의 하나가 '사상전에서 승리하는 길'인데, 역사적으로 패망한 나라의 사례를 소개하며 '국가 존립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는 위협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이란 교훈을 담고 있었다. 특히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종북세력' '종북세력, 그들은 누구인가' '북한과 종북세력의 관계' 등을 자세히 소개하며 '이적행위' '주사파' 등의 표현이 많았는데 이러한 내용이 모두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필진도 모르게 바뀌는 교과서 수정 절차…절차상의 정의도 무너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과서 수정 절차다. 해당 교과서가 연구·집필을 총괄하는 책임자를 배제한 채 교과서가 집필되어 출판되는 것이다. 한 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이 교과서 연구·집필 책임자인 박 모 교수는 "전체 책임자인 내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민감한 교과서 내용이 정권 입맛에 맞게 다 수정됐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종전 교과서의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구에 대해 “정권에 따라 교과서를 고치는 행위는 교육적 소신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른 집필진과 수정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교육부 교과서정책과 담당 연구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외의 다른 부분은 집필진에게 수정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해본 필자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통 교과서를 수정할 경우에는 수정해야 할 곳에 대한 민원이나 검토의견을 받아 해당 내용을 연구·집필 책임자가 다른 집필자들과 협의해 수정할 사항을 정하고, 통상 출판사를 통해 교육부나 교육청에 공문으로 수정 승인을 요청한다. 그러면 집필진이 해당 부분의 내용을 수정하기 위해 회의를 거쳐 합의에 이른 후 수정을 확정하게 된다. 그런 수정 과정과 내용은 모두 회의록으로 작성해 기록으로 남기게 되어 있다.

참고로 필자가 참여했던 <인증도서 집필과 수정>과정에 받은 공문의 일부를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문에 표기된 요청 사항을 보면 ‘전집필자가 상의하여 합치된 의견으로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의 교과서 수정과정에 일어난 일은 도저히 납득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회과 교육의 목표는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절차상의 정의조차 지켜지지 않는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인간다우며 인류공영의 삶에 이바지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교과서에는 ‘가치 있는 내용’과 학습자에게 ‘의미 있고 바람직한 것’이 담겨져야 한다. 그리고 그 절차가 정의로워야 한다. 적어도 교육을 행하는 교사가 교육을 받는 학습자에게 제대로 된 학습내용을 전달해야만 이 땅의 교육이 바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생각은 확고하다. ‘교육의 3요소’를 걱정하는 국가라면 당연히 해야 할 걱정을 일개 교사가 주제넘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