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지금 주목되어야 하는 건 돈보다 그들의 인맥"
"이젠 어렵게 목소리 낸 할머니가 공격받고, 고발자들이 신변 위태로워져"
"운동 30년이란 실은 인맥 30년"...한국사회 주요 영역 장악한 주류와 그 주변부
"소수의 목소리가 보호되고 존중되어야만 좋은 사회"..."나도 이제 제대로 발언하겠다"
펜앤드마이크에 "나의 저술은 위안부 할머니 아닌 정대협 지적하는 것이었다"

'제국의 위안부' 집필로 고초를 겪은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26일 위안부 할머니들을 향한 문재인 정권 주요 인사들의 일사불란한 협공에 “할머니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도 이제 제대로 발언하기로 한다”라며 나섰다. 박 교수는 펜앤드마이크에 “(나의 작업은) 위안부 할머니가 아닌 정대협에 대한 문제제기였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헤이트스피치가 이토록 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지금 드러나고 있는 건 윤미향과 정대협이 쌓아온 게 대의나 활동만이 아니라 돈이기도 했다는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주목되어야 하는 건 인맥”이라고 했다.

그 인맥에 대해 박 교수는 “정치와 언론과 학계와 시민사회에, 그리고 젊은이들 세계에까지 깊고도 넓게 퍼져 있다. 운동 30년이란 실은 인맥 30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일제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앞세워 이용해놓고 도리어 이들을 공박하고 매도하며 논란 잠재우기에 나선 이들은 30년간 한국사회 주요 영역에서 철옹성과 같은 지위를 구축한 주류 세력의 ‘주변부 인물들’이다. 위안부 연구와 운동의 중심에서 인생을 건 주변부 인물들이 “할머니들의 피맺힌 호소를 배제한 것은 (주류의) 중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바로 그 믿음이 “운동이 종교가 되고 만 이유”라며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보다 소녀상에 대한 열기가 높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박 교수는 “이젠 어렵게 목소리를 낸 할머니가 공격받고, 나눔의 집 고발자들의 신변이 위태로워지고 있다”며 “내가 교류했던 할머니는 그것을 예상하고 끝까지 두려워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용수 할머니의 1차 기자회견에 말을 아꼈던 박 교수는 앞으로 적극 발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나도 이제 제대로 발언하기로 한다. 그들을 보호해야 하니까”라며 “소수의 목소리가 보호되고 존중되어야만 좋은 사회니까”라고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자신처럼 배제되고 억압받는 일이 또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박 교수는 펜앤드마이크에 “나의 저술 활동은 단 한 번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었다”며 “정대협이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하는 방식을 지적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묻혔던 목소리인 할머니들의 증언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2015년 11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학문의 자유에 속한다며 무죄 선고를 내렸으나 2017년 2심 재판부는 왜곡된 사실로 평가를 훼손시켰다며 유죄(벌금 1000만원)로 판결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3심 재판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이하는 박유하 교수의 글 전문(全文)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헤이트스피치가 이토록 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건  윤미향과 정대협이 쌓아온 게  “대의”나 활동만이 아니라 돈이기도 했다는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주목되어야 하는 건 인맥이다. 그 인맥은 정치와 언론과 학계와 시민사회에, 그리고 젊은이들 세계에까지 깊고도 넓게 퍼져 있다. 운동 30년이란 실은 인맥 30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헤이트스피치를 서슴없이 내뱉는 이들은 그 인맥적 주류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겐 문제가 언제까지고 보이지 않는다. 위안부를 생각해 온(것으로 착각한) 이들이  한순간에 돌아설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이 위로해 온 건 위안부라기보단 자신의 양심이었다. 이들이 지지한 건 할머니가 아니라 운동자체였다. 그 결과로 운동은 세계규모가 되었지만( 인맥 역시 글로벌 레벨이 되었다), 할머니들은 그 에너지의 분량만큼 소외되었었다. 수천명을 동원해 이루어진 김복동 할머니의 거대했던 장례식은 바로 그런 정황의 상징이다.

위안부 연구와 운동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이 운동과 연구에 “인생을 건 “ 이들이다. 문제는 진작부터 이들에게 이의를 제기한 이들이 없지 않았음에도 이들—주류는 상처하나 입지 않았다는 점. 할머니들의 피맺힌 호소가 정작 가 닿아야 할 사람들한테 오히려 배제된 건, 주변인들이 중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그 믿음이란 실상은 그들—중심조차 아닌,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해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싫어서, 작은 목소리보다는 큰 목소리- 그와 단단하게 이어진 자신의 신념을 지켜 온 셈. 운동이 종교가 되고 만 이유다.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보다 소녀상에 대한 열기가 높았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할머니의 첫번째 기자회견 이후 말을 아꼈다. 정의연과 윤미향에 대한 약간은 가혹해 보였던 공격에 가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발의 직접 원인이 된 2014년 심포지엄에서 내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내보낸 건, 책을 통해 내보냈던 “묻혔던” 목소리가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한다는 걸 (책을 내고 나서)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 이젠 어렵게 목소리를 낸 할머니가 공격받고 나눔의 집 고발자들의 신변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정황이다. 내가 교류했던 할머니는 그것을 예상하고 끝까지 두려워하다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도 이제 제대로 발언하기로 한다 . 그들을 보호해야 하니까. 그들이 나처럼 배제되고 억압받는 일이 또 있어서는 안되니까. 무엇보다, 소수의 목소리가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만 좋은 사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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