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하며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인식하는 근대의 요체 사라져
무책임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사회적 병리현상
중국체제로의 재편입을 갈망하면서 중국 조공국으로의 회귀?
공산 왕정의 전근대사회를 살고있는 북한 사회와의 동조현상이기도
​​​​​​​잠시 동안의 사회경제적 풍요는 일장춘몽

강규형 객원 칼럼니스트

개인이건 사회건 회귀본능(回歸本能 또는 귀소본능 歸巢本能)이라는 것은 강력한 인자이다. 원래 살았던 방식대로, 또는 원래 습성대로 사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거대한 회귀본능에 빠져버렸다.

사실상 한국사회는 중국 문명이라는 거대한 구심력에 이끌리는 하위 문명으로 산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짧게 봐도 한(漢)나라 한무제(漢武帝) 이후였으니 그 기간의 장구함과 깊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중국문명은 기본적으로 대륙 문명으로,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해양 문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명이었다. 게다가 중국을 세계, 혹은 우주의 중심으로 보는 중화주의(中華主義)적 세계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반도에서는 이런 경향이 조선 시대에서 절정을 이루게 됐다.

그 결과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경악할만한 자폐증(自閉症)적인 세계 속에 살면서 세계사의 흐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리고 가장 소외된 지역으로서 살다가 근대화와 서구화에 처참하게 실패했다. 결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세 나라 중 한 나라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결과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한국인들은 애써 외면하려는 사실 중의 하나가 조선은 사실상 중국, 19세기 말 당시로서는 청(淸)나라의 제후국(諸侯國)·조공국(朝貢國)·속국(屬國)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이 국제법적으로 독립국의 지위를 얻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청일전쟁(淸日戰爭)의 결과 맺어진 시모노세키 조약(1895년) 1조에서 ”청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자주독립에 해가 되는 청국에 대한 공헌(貢獻), 전례(典禮)등은 장래에 완전히 폐지한다“라는 조항때문이었다.

이후 조선은 1897년 칭제건원(稱帝建元), 즉 제국(대한제국)을 칭하고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했다. 이제 고종은 중국의 천자(天子, 황제)에 충성하는 (제후국의) 왕이 아닌 황제가 됐다. 비록 허울뿐인 황제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영은문 자리에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세운 것이 바로 독립문이다. 흔히 독립문에서 일본에 대한 독립의 세리모니를 하는 것은 주소가 틀려도 한참 틀린 행위임을 이제는 깨달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대부분 한국인 들은 아직도 독립문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징하는 건물로 잘못 알고 있다. 왜 일제가 독립문을 부수지 않고 오히려 사적지로 보존했는지 도통 이해가 불가능한 이유였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장구한 중국문명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지만, 그 뒤를 이은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간접적으로 근대문명을 접하다가, 해방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서구 근대문명이 한반도에 물밀 듯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오직 남쪽에만 국한됐기에 북한은 대륙 문명의 영향권에 다시 들어서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훗날 역사의 패배자가 되는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게 된다, 북한체제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레짐(regime)이다. 공산체제와 전근대 사회, 더 나아가서는 일본 천황체제의 기묘한 혼합체로서 현대전체주의 사회 중 가장 기이하고 억압적인 레짐이 만들어졌다. 거의 사이비 종교집단과 같은 가공할 샤머니즘의 세계였다.

반면 남한은 전통문화 더하기 서양문명이 적절히 퓨전(fusion)되면서 묘한 하이브리드(hybrid) 문명이 생겨났다. 기본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 대단한 번영을 누렸지만, 그러나 그 내실은 의외로 허약한 사회가 됐다. 이인호 교수는 한국사회를 골다공증에 걸린 사회라고 적절히 표현한다. 키나 몸은 훌쩍 컸지만, 그 성장의 요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속 빈 강정과 같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숙성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혹은 건전한 시장경제 체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상태에서 강력한 과거로의 귀소본능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이다. 합리성과 이성을 중시하며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인식하는 근대의 요체는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은 탈근대는 커녕 근대성도 이루지 못한 정신적 지진아의 모습과 다르지않다. 그 증상은 전근대적인 무책임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사회적 병리현상들이다. 노신(루쉰[魯迅])이 질타했던 중국 전통사회의 아큐(阿Q)같은 위선적인 인간들이 널려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들이 학창시절 읽었던 한국문학을 보면 상당 부분 “좋았던 옛 시절”이라는 허구 세계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신비주의적이며 퇴행적인 복고주의적 경향이 강했다. 심지어는 우리의 정서 속에 강력하게 내재 된 샤머니즘으로의 회귀를 욕구하는 방향도 많았다. 국사 교육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환상세계를 예찬하는 복고적 국수주의에 다름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 한국사회는 거짓이 판치고, 사실(팩트)보다는 선동이 앞서며,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곳이 돼 버렸다. 전(前)근대사회로의 역주행 현상이다. 심지어는 중국공산당 주도의 중국체제로의 재편입을 갈망하면서 한반도의 중국 조공국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로서 재등장했다. 아직도 공산 왕정의 전근대사회를 살고있는 북한 사회와의 동조현상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에 따라 21세기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런데 아쉽게도 큰 물줄기는 미래로의 전진보다는 과거로의 역주행이 대세인 듯하다. 특히 대중영합주의에 마취되기까지 한 젊은 미래 세대가 이 방향을 선호하고 있다면 대세를 되돌리기는 상당히 힘들 것이다.

사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이후 발전과정이라는 것은 한반도 역사에서 대단히 이색적인 길이었다. 잠시 동안의 번영은 한국에게는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을 수도 있다. 일부 지도자들의 사상과 국제정치경제학적 환경이 이렇게 생소한 길을 가게 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한국 좌파는 이런 경로를 일탈(逸脫)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해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정상과정으로의 복귀“라고 가정하고 있다. 이들의 해석대로 한국사회는 거세게 과거라는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으며, 이 상황을 되돌리는 것은 내부적인 역량으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외생변수의 강력한 충격파가 이런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결국 한국의 운명은 한국인들이 선택해야 한다. 미래냐 아니면 후조선(後朝鮮) 시대와 같은 과거로의 회귀냐를 선택이다. 사회경제적 풍요는 일장춘몽이었고, 베네수엘라와 그리스로의 길이 활짝 열려져 있는가.

강규형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교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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