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후 칼럼] 20년 전 홍콩의 운명을 예언한 영화 《누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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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5.25 11:05:49
  • 최종수정 2020.05.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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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이 홍콩 진입하면 일국양제·기본법이 무너지고, 홍콩 경제도 붕괴될 것”이라는 영화 대사가 현실로
홍콩판 치안유지법 제정 움직임에 ‘시대혁명’(時代革命)과 ‘광복홍콩’(光復香港) 외치는 홍콩인들로부터 한국인들은 자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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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이듬해인 1990년 개봉된 홍콩 영화 가운데 《누님 안녕하세요!》(원제: 表姐, 你好嘢!)가 있다. 성격이 괄괄한 중국출신의 여자 공안 누님 정석남(鄭碩男)이 홍콩에서 범죄조직을 검거해 중국으로 압송한다는 스토리의 블랙코미디다. 영화 가운데 전설적인 장면은 여자 공안 ‘누님’이 갱단에게 잡혀 협박을 받자 호기롭게 일갈하는 부분이다. “나의 부친은 중국의 27군을 지휘하는 장성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잡혀 부친이 화가 나면 군대를 이끌고 홍콩에 진입할 것이다. 그러면 (중영)연합성명, 일국양제·기본법이 사라진다. 홍콩달러와 금융시장, 주식시장, 부동산이 폭락할 것이다. 모조리 폭락할 것이다”라는 저주에 가까운 대사가 아주 이채롭다. 국민당 군관 출신의 홍콩인과 중국 공안 역의 누님, 홍콩의 황가경찰(皇家警察) 등 양안삼지(兩岸三地)의 배역이 등장해 전반적으로 코믹한 분위기의 이 영화는 중국 공안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됐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누님’이 내뱉은 대사는 현실이 됐다. 연합성명도 기본법도 끝나고 홍콩의 금융 부동산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 놀라울 정도로 적중해 20년 전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5월21일에서 22일사이, 단 이틀 간이라는 역사상 최단기간에 치러진 중국의 연례 정치행사 ‘양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점이 홍콩을 완전히 멸망시키겠다는 중국공산당의 결정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홍콩판 치안유지법을 제안했다. 전인대 상임위원회는 이 법안을 5월28일 표결에 부쳐 9월 이전에 입법을 완료할 방침이다.

홍콩 치안유지법은 국가 분열, 중앙정부 전복, 외국의 간섭, 그리고 테러행위를 금지한다는 네 가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홍콩의 입법회를 무시하고 베이징 당국이 치안유지법을 제정해 홍콩 정부로 하여금 집행을 강제한다고 한다. 치안유지법이 시행되면 홍콩의 독립 관세구역 지위는 사라져 경제적 번영은 물거품이 된다. 그리고 국제 인권 조직의 활동이 금지되고 언론과 종교의 자유도 말살된다. 쉽게 말해 기존의 홍콩기본법과 중영공동성명의 정신을 무시하고 홍콩인에게 자치를 허용한다는 ‘1국가2체제’를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다. ‘1국가2체제’가 폐기되면 홍콩은 더 이상 특구가 아닌 광저우(廣州), 상하이(上海)처럼 중국의 일개 지방 도시 홍콩으로 변하는 것이다.

영화 속 누님의 공포스러운 대사 가운데 홍콩 경제가 붕괴된다는 것도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전인대가 홍콩 치안유지법을 심의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22일, 홍콩의 금융시장도 요동쳤다. 홍콩 항셍지수는 1349포인트, 5.56%가 폭락한 22,930.14로 마감했다. 심리적 저지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23,000선이 무너졌는데, 대부분의 중국 주식이 5% 가량 폭락했다. 특히 부동산 관련주들의 폭락세는 더욱 처참했다.

부동산 폭락으로 가장 큰 손해를 겪은 이는 장강그룹(長江集團) 창설자인 리카싱(李嘉誠)이다. 그의 부는 순식간에 14억 달러 가량이 증발했다. 리카싱 다음으로 헝디그룹(恒地集團)의 창설자인 리자오지(李兆基)의 자산도 10억 달러 가량이 증발했다.

홍콩 치안유지법은 주식 시장 뿐 아니라 부동산 현물시장에도 곧 타격을 가할 전망이다. 홍콩이공대학의 사회과학 교수인 종젠화(鍾劍華)의 분석에 따르면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중산층이 유동자산을 처분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하향세를 보일지 예측할 수조자 없는 상황이다. 종젠화 교수는 예전이 홍콩시민이 이민을 가게 되면 부동산을 세를 주고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렸지만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렌트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사라져 홍콩을 탈출하기를 희망하는 중산층들이 부동산을 대거 팔아치울 전망이라는 것이다.

금융 중심으로서의 홍콩의 지위도 사라질 전망이다. 미 백악관 경제고문위원회의 케빈 헤셋(Kevin Hassett)은 22일 홍콩에서 대규모의 자금이탈이 발생해 아시아 금융중심의 지위가 상실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해셋은 홍콩에 대한 중국의 극단적인 조치는 법치가 무시당하는 곳에 투자하기를 꺼려하는 자금을 해외로 내쫓게 될 것이라면서 홍콩의 자치를 말살하는 중국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2019년 통계로 홍콩에 거주하고 있는 미국인은 8만5000명에 달하고 1334개의 기업이 아시아 지역본부를 홍콩에 두고 있지만, 이제는 그들이 홍콩에 더 이상 미련을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인대가 홍콩 치안유지법을 제정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홍콩의 자유 시민들은 참혹할지도 모를 장래 운명에 몸서리쳤다. 홍콩 입장신문(立場新聞)의 보도에 따르면 홍콩의 인터넷 검색 빅데이터에서 국가안전법과 이민이란 단어의 검색 상관도가 99%에 달했다. 우한폐렴 사태의 여파 속에서 잠시 관심에서 사라진 것 같지만 ‘시대혁명’(時代革命)과 ‘광복홍콩’(光復香港)의 몸부림은 계속돼 왔으며 앞으로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자유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처럼, 홍콩의 자유 시민들은 그동안 많은 피를 흘려왔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피를 흘리게 될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홍콩의 자유 시민들은 시대의 소명이라면서 투쟁 의지를 굳히고 있다.

20년 전의 블랙코미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홍콩인들의 운명, 그리고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홍콩에서 살아갈 다음세대를 위해 ‘시대혁명’과 ‘광복홍콩’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홍콩 자유 시민들로부터 한국인은 무엇을 깨달아야 할지를 생각해 본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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