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 PenN 정치사회부 기자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기준’이 되는 교육과정‧집필기준 마련이 놀라울 정도의 무관심 속에 진행되고 있다. 국정교과서가 개발 단계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무관심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새로운 집필기준이 근현대사 서술을 대폭 수정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내용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적시한 ‘자유민주’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대체했다. 또 이전 집필기준이 ‘유독 경제성장을 강조했다’는 이유로 경제 성장에 대한 서술 비중을 줄이는 한편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서술을 강화했다.

아직 시안이라고는 하지만, 확정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평가원이 이달 안으로 교육과정을 확정 고시하면 출판사들은 일제히 검정도서 개발에 돌입한다. 새로운 교과서가 평가원의 검정 절차를 거쳐 학교에 배포되는 시기는 2020년 3월이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물론 역사학과 교수들도 ‘새로운 역사 교과서 교육과정 시안이 나왔다’는 소식에 깜깜인 분위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차 공청회 이후 “교육과정 개정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서울‧세종‧광주‧부산 등 4회에 걸쳐 열렸던 1차 공청회에 참석해 의견을 제시한 교사는 전국을 통틀어 185명뿐이다. 2차 공청회도 관계자를 제외하면 100여명 참석하는 데 그쳤다.

국정교과서가 근현대사 서술에 대한 논란 끝에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은 예견된 것이다. 그럼에도 공청회는 물론 그 어떤 통로를 통해서도 문제제기를 하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교육부와 평가원이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짬짜미’로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을 뒤엎어야 하는 평가원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짧은 연구 기간에 비해 수정 폭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자 연구개발에 참여한 평가원 관계자도 “조금만 수정하면 저야 훨씬 편하겠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논란이라면 한 번은 부딪히고 가는 수밖에 없다. 역사학계에서조차 합의되지 않은 사안을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도 없이 확정할 순 없다. 현재 평가원이 개발 중인 교과서 집필기준은 향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우리나라를 인식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대로라면 새로 나올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국정 못지않은 ‘독재 검정기준’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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