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PenN 대표 겸 주필
정규재 대표 겸 주필.

한반도 정세 급류를 탔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첫 미북 정상회담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급류는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로서는 북핵 폐기라는 결과만 만들어 내면 되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과 북한 체제를 보호하고 인정해달라는 김정은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으로서도 어떤 형태건 북한 정권의 안정과 보호에 적극 동의하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미북 수교에 이어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수 있겠습니다. 항구적 평화체제로서의 연방제가 추진되고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은 전면 폐기될 수도 있습니다. 세미 통일, 유사 통일이라는 국면이 올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의 급진적 시나리오입니다.

트럼프의 초기 시나리오

트럼프 등장 초기에 그런 시나리오도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미군의 북한(평양) 주둔과 김정은 보호를 제안하면서 북핵 폐기를 성사시킬 것이라는 분석이었지요. 당시에 평양 주둔군의 규모까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편제와는 다릅니다만 대대급이라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그런 시나리오의 재부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군의 지위는 6.25전쟁 체제에서 오는 대북 억지군사력에서부터 한반도 평화유지군으로 위상이 바뀌게 됩니다. 원산항을 미국에게 개방한다는 조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반도를 대륙을 향한 미국의 교두보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북한도 확고하게 미국의 우산 아래 들어가는 겁니다. 이런 조건에서라며 중국이 과연 이를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마 최대한의 저항을 하겠지요. 김대중 당시에 ‘미군의 위상변화’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당시의 프레임으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ICBM문제

미국이 현 단계 핵 동결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습니다. 미국까지 날아가는 ICBM만 아니면 다 좋다고 생각할까요? 즉, 북의 핵폭탄 보유를 미국이 받아들일까요?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완전 페기로 밀어 부칠 겁니다. 이게 협상의 포인트입니다. 북으로서는 현 수준 동결, 즉 ICBM을 제외한 나머지는 용인해주기를 요구할 겁니다. 그러나 미군은 한국만 아니라 일본에도 주둔하고 북핵은 괌을 포함한 주한 주일 미국 주둔지를 모두 노릴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지라면 미국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세계적인 핵전략으로서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세계가 경쟁적인 핵무장으로 빠져 들어갈 것입니다. 일설에는 미국이 어떤 미사일도 막을 수 있는 방어 기술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북 김정은이 완전한 핵 폐기를 거부한다면 북핵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군사적 수단이라는 대안적 선택으로 다시 급격히 복귀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김정은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보수

문제는 대한민국이 북한 김정은을 수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북한의 현 체제를 수용 혹은 용인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범죄 행위입니다. 북핵에 가려져 왔던 북한 체제문제는 북핵 해결 과정에서도 당연히 문제되어야 합니다.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는 것은 민족의 분열과 분단을 항구화하고 제도화하며 살인적인 북한 독재정권을 용인해야 하는 실로 불가능한 법적 도덕적 정치적 문제, 특히나 양심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북한은 전례 없는 반(反)인권-반법치 국가이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이 결코 용인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문재인 김정은의 평화무드 속에서 이런 가치들은 쉽게 무시될 수도 있겠습니다. 보수와 미국과 문재인 정권은 이 지점에서 명확하게 엇갈립니다. 보수는 핵과 함께 북한 체제와 김정은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명확하고 또 보편적 가치에도 맞습니다. 미국은 핵 폐기가 우선입니다. 김정은 정권의 붕괴는 후순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핵은 폐기에 가깝다고 보지만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는 이를 보호하거나 온존시키는 것이 좋겠다 혹은 무방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3자는 극명하게 입장이 달라집니다.

한국내 정세의 전개

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체제를 보장하는 것은 북한의 핵개발 목적이 달성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권 혹은 좌익친북 정권은 의외로 생명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국민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핵 문제에 대해 어떻든 안심하게 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정치적 성과임이 분명합니다. 북한에 ‘친미 독재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라면 또 어떨까요. 김칫 국물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미국은 중국과 대적하는데 북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고 대(對)중국 전략에서 기선을 잡을 수 있습니다. 중국은 이를 받아들일까요? 한국내 정치는 당분간 문재인 정권의 페이스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지방선거나 개헌 정국에서의 향배도 일방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지요. 그렇게 되면 보수의 괴멸적 타격이 예상됩니다. 더구나 협상은 길고도 지루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문 정권의 주도권은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 전망

물론 길게보면 북한의 개혁개방은 김정은을 기어이 무너뜨릴 것입니다. 남북 경제교류가 인적왕래에 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그러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우회 전략은 한국의 지정학적 경제기반을 흔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꽤 먼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여러 가지 상황 변화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든 급류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4월말 남북정상회담과 5월 미북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는 놀라운 사태의 전개입니다. 남북 회담에서는 어떤 결과가 가능할까요. 항구적 평화체제라는 언어 속에서 문재인 정권은 가능한 선택들을 해 나갈 겁니다. 통일은 필요 없고 느슨한 형태의 결합이라면 국내 정치대중의 환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보수의 당혹감

급류가 다시 내달리기 시작한 것은 김정은이 그만큼 다급했다는 방증입니다. 무언가의 타결점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가능합니다. 국내 안보 보수 세력으로서는 깊은 고뇌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새로운 사태의 전개입니다. 이런 상황의 마지막 국면은 의외의 파국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보수 세력들은 북한을 폭격을 하더라도 핵을 제거해주기를 트럼프에게 기대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트럼프를 믿지 말라”, “허풍쟁이일 수도 있다” “트럼프는 한국 내 반미를 두려워할 뿐이다”는 등의 밉살스런 얘기를 해왔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말을 상기시켜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북폭이 지금까지 보수의 기도 제목일 정도였습니다. “(시위할 때)차라리 성조기를 내려야 한다“ ”구원병은 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던 것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급류는 탁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수의 선택

보수가 당혹감을 갖는 것은 논리적입니다. 그동안 북폭을 기원해왔거나 성조기 흔들며 북핵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통해 김정은 정권의 동시 붕괴를 기원해 왔던 보수로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보수로서는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갖는다는 것 자체에 깊이 실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조건에서도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양대 가치를 밀고 나가야 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변화를 요구하고 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이 기본노선에서 벗어나거나 친북적 시도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본연의 노력을 다해가야 합니다.

북 핵 담판을 기화로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킨다는 희망이 사라진 것에 과도하게 연연할 때가 아닙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어떤 경로를 걷더라도 붕괴됩니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수록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미북 대화가 성사되면서 북한 붕괴 가능성이 잠시 옅어진다고 해서 악이 최종적으로 승리했다는 식의 비탄에 빠질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당장 문재인 정권의 인기가 치솟고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며, 반자유주의적 개헌이 감행될 것입니다. 보수는 이 투쟁에도 매달려야 합니다. 힘을 모아야 합니다. 평양 붕괴론 따위로부터 우리의 올바른 노선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소위 안보 보수로부터 가치 보수로 명확한 재정립이 요구됩니다. 구원병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외부의 구원병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가치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평양 붕괴론조차 그렇습니다. 우리가 붕괴 시킨다면 모를까 누가 와서 대신해줄 일은 결코 아닙니다. 거친 들판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이야말로 태산 같은 믿음과 지력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정규재 대표 겸 주필 jkj@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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