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미국의 대표적 제조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은 토마스 에디슨에 의해 1878년에 설립돼 올해로 140년 되는 장수기업이다. GE는 미국 증시 다우존스지수에 1907년 11월 편입됐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인 GE가 다우존스에서 퇴출 위기로 까지 몰렸다.

▲ 1등 아니면 2등을 해라. 못하면 매각 한다

잭 웰치는 “1등 아니면 2등을 해라. 못하면 매각한다”라는 경영전략을 통해 10만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함으로써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상시적으로 조직에 위기의식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의 전략은 크게 성공했다. 그가 퇴임한 2001년 말 기준으로 GE의 기업 가치는 4500억 달러로 1981년 회장으로 부임할 당시의 120억 달러보다 40배 늘어났다. 그는 후임자 선임도 남달랐다. ‘후계 승계프로그램’을 가동해 시스템적 접근을 선택했다. 제프리 이멜트가 최종 낙점됐다. 그는 2001년 9월 약관 45세의 나이에 세계 1위 기업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잭 웰치는 GE를 21년 이끌었으며 ‘경영의 귀재’로 추앙되었다. 이멜트도 17년간 GE를 이끌었다. 최소한 2사람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지금 GE는 난파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20% 이상 올랐지만, GE 주가는 거꾸로 반토막이 됐다. 증발된 시가총액만 1000억달러(110조원)를 넘는다. 실적이 악화 되면서 전구, 기관차, 헬스케어 사업 등의 매각이 논의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넘어 그룹 해체 직전 까지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무엇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기업제국 GE의 몰락을 가져 왔는가. 웰치 후임으로 지명된 이멜트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어 보이지만 그 위기의 씨는 이미 웰치 때 잉태되었다고 봐야 한다.

▲ 부자의 샘(금융부문)에서 가난한 샘(제조업)으로 퍼 나르기

증권시장에 ‘폰지 사기’란 말이 있다. 일종의 다단계 판매 사기다. 높은 수익 보장은 미끼로 자금을 끌어 모으는 사기다. 돈을 벌어 수익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돈을 유치해 앞에 돈 댄 사람의 수익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사기인 것이다. 그 사람에겐 또 다른 사람의 돈을 유치에 수익금을 지급한다. 결국 폰지 사기의 랠리는 “더 이상 호구를 찾을 수 없을 때”까지 지속된다.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고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식이기 때문에” 게임은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다. 사기꾼을 제외한 모두가 모든 것을 잃는 파국을 맞게 된다. 폰지 사기꾼은 호구를 찾아 앞 사람의 투자금을 지급하는 동안 최고의 수탁자이자 투자의 연금술사로 추앙받는다.

물론 GE와 폰지 사기는 관계가 없다. 하지만 개운하지 않은 구석이 없지 않아 있다. GE는 부자의 샘에서 가난한 샘으로 물을 끊임없이 퍼 나름으로써 모든 사업부의 경영이 견실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여기서 ‘부자의 샘’은 금융부문이며 ‘가난한 샘’은 제조업 부문이다. 하지만 부자의 샘이라고 늘 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샘을 깊이 파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홍수가 져서 물이 고인 것인 데도, 물이 계속 샘솟는 것으로 착각했다.

GE캐피털은 GE의 캐시 카우(cash cow)였다. 미국 경제 성장에 힘입어 GE캐피털은 보험, 항공기 리스, 모기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맘모스가 되었다. GE는 GE캐피털을 이용해 미국 정부에서 달러를 빌려 법인세율이 낮은 해외 사업에 투자했다. 가스엔진사업부터 헬스케어까지 GE의 모든 사업부문이 대출을 일으켜 사업할 수 있도록 해줬다. 경제가 순항할 때 금융사업은 손쉽게 성장세를 이어나갈 수 있다. 금융사업에서 벌어들인 이익은 GE 전체의 성장을 이끌었다. 웰치 회장이 퇴임한 2001년 GE캐피털 영업이익은 그룹 전체의 46%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를 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반면 기술혁신과 제조업의 생산성 향상에 기반한 이익은 점점 감소했다.

웰치 회장에 대한 세평(世評)은 우호적이었다. ‘6시그마·e비즈니스·세계화’ 등의 전략으로 GE를 혁신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금융사에의 이익 의존이 너무 깊었다. GE를 혁신해 돈을 번 것이 아니라 대출사업으로 손쉽게 돈을 벌은 것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산업은 더 이상 캐시카우가 되지 못했다. 부자의 샘은 급격히 말라갔다.

GE위기의 본질은 금융기법이 ‘수익 원천’으로 변질 된 것이다. 항공기 리스, 모기지금융까지 세를 확장한 GE캐피털은 법인세가 아주 낮은 나라에 투자하면서 대출이자로 미국 내 사업장 이익을 상쇄해 미국 내 세금까지 최소화하고, 분기 말에 유동성 자산의 매매를 통해 실적을 부풀렸다. ‘업의 본질’을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 ‘업의 본질’을 망각한 방향성 없는 인수·합병(M&A)

이메트 회장은 웰치를 벤치마킹해 기업을 인수하고 매각해 끊임없이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하지만 기업을 사고파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업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천착과 고민이 경영판단이 첫걸음이다. 삼성그룹 고(故) 이병철 회장의 지론은 ‘업의 본질’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수평적으로 비교하기는 곤란하지만 GE그룹은 ‘업의 본질’에 대한 깊은 숙고가 결여되어 보인다.

이멜트는 2001년 CEO자리에 오른 후 “미디어, 게임, 메디케어, 우주, 석유, 전력” 등 11개 기업과 4개 지분을 인수했다. 구체적으로 “비벤디 유니버설지분(게임, 2003.10, 120억불), 이머샴(헬스케어, 2003.10, 98억), 스미스그룹(우주, 2007.1, 40억불), NBC 유니버설지분(인터테인먼트, 2009.12, 58억불), 알스톰(전력, 2014.4 131억). 베이커휴즈(석유, 2016. 10, 325억불) 등을 인수했다. 이멜트의 인수합병 전략에 큰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헬스 케어, 게임, 인터테인먼트, 전력, 에너지 등 다양한 기업 인수의 공통분모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결국 M&A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고, 문어발식 확장이란 비판을 자초했다.

이멜트 회장은 2015년 4월 “제조업의 뿌리로 돌아가겠다”며 GE캐피털의 대부분 사업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그해 12월까지 대부분의 GE캐피털을 매각했다. 40여개국 3만5000여 명의 직원을 둔 거대 조직은 항공, 에너지, 헬스케어기기 사업부문 등의 금융 기능만 남기고 대폭 축소되었다. 2014년 기준 GE캐피털 자산 규모는 4990억달러, 순이익 70억달러였다. 금융에의 지나친 의존이 화를 부른 것이다.

▲ 장기간병보험(Long Term Care) 잠재부실 뇌관

지난 1월엔 GE캐피털의 보험사업 부채와 관련한 악재가 터졌다. 이멜트 후임으로 선임된 플레너리는 2017년 8월 취입 직후부터 GE캐피털이 보유 중인 과거 장기간병보험(LTC) 계약의 준비금 부족이 심각하다고 언급했다. GE는 구체적 수치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시장에서는 25억불 수준의 준비금이 추가로 적립되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후 GE는 지난 1월 16일 LTC 손실로 인한 ‘총 212억불의 대규모 준비금 적립계획’을 발표한다. 2017년 말에 62억불을 적립하고 2018~2014년 7년간 150억불을 추가 적립한다는 것이다. GE 추가 준비금 212억불은 시장예상(25억불) 대비 8.5배로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만약 GE가 해체된다면 장기간병보험 손실이 방아쇠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GE의 LTC 대형 손실은 주로 90년대에 판매한 기존계약에서 발생한 것이다. GE는 2004년 LTC 보험을 판매했던 Genworth사를 GE캐피털에서 분사해 매각했으나, 과거 부실계약 부분은 매각처를 찾지 못해 GE캐피털이 현재 보유 중이다.

미국의 LTC는 공적인 요양제도가 미비된 상황에서 민영보험사가 90년대부터 적극 판매하였고 판매 10년 후부터 상품부실로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손실 발생의 주요인은 ‘저금리, 요율산출 부실, 과도한 보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금리 확정형(7.5%) 판매 후 금리가 급락해 ’이차역마진‘이 발생한 것이다. 고금리를 상정해(높은 예정이율) 보험료를 낮게 책정했는데, 금리가 낮아지면서 받은 보험료를 운용해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요구수익률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또한 고령화 추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요율을 낮게 책정한 것도 손실을 키운 요인이다. 보장도 정액보장이 아닌 실손보장으로 구조적으로 과다진료를 유발하게 되어 있다. GE캐피털의 LTC 실패는 초장기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체크해야 할 기본사항 조차 간과한 ’위기관리(risk management) 실패’의 전형으로 평가될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GE가 이런 막대한 규모의 부채를 이멜트가 떠나지 직전인 지난해 3월에야 완전히 인식했다는 점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GE가 관련 회계감사를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 기업제국이 쇠하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GE의 쇠락이 주는 충격은 코닥 필름 도산과는 급이 다르다. GE가 도산할 리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예전의 기업‘으로 서서히 사라질 것(fade out)은 분명해 보인다. 그 자체가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것이다.

사세가 기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GE제국의 몰락은 결국 ’업의 본질‘에 대한 깊은 천착과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GE캐피털이 왜 초장기 금융상품인 장기간병보험(LTC)을 별다른 ‘위험관리’ 안전장치 없이 판매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GE캐피털의 추가준비금 212억 달러는 노쇠한 GE그룹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짐이 아닐 수 없다. GE가 혹여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몰린다면 과거 Genworth사의 우발 채무가 방아쇠가 될 공산이 크다.

GE그룹의 지배구조도 ‘위기관리’ 실패에 일조하고 있다. 미국 대기업은 주지하다시피 ‘사업부’제이다. 반면 우리는 계열구조가 주종을 이룬다. 많은 좌파학자들은 그동안 미국의 사업부제를 칭송해왔다. 한국의 계열구조가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경영전권을 휘두르게’ 한다는 것이 주요 논거였다.

한국의 계열사는 회계적으로 독립된 법인이기 때문에 무임승자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GE캐피털이 GE그룹 이익의 절반을 벌어드릴 때, 다른 사업부서는 GE캐피털에 편승해 안주할 수 있었다. 그만큼 구조조정에 실기(失機)할 개연성이 커지는 것이다. 또한 사업부제를 채택하면, 구조조정을 할 때 특정사업부문을 ‘분사화’ 해야 한다. 하지만 분사화는 그 자체로서 많은 ‘거래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반면 계열조직은 이미 하나의 독립된 법인격을 갖기 때문에 분사화할 필요가 없다.

GE의 쇠몰(衰沒)은 ‘주주행동주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GE는 실적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도 2014~2016년 자사주 매입에 490억 달러를 지출했다. 2015년 GE주식 1.5%를 사들인 행동주의 투자자 트라이언펀드는 채권 발행을 통해 더 많은 자사주를 매입할 것을 요구했다. 기관투자가로부터 주가부양 압박을 받는 경영진 입장에서 자사주 매입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선택지다. 하지만 주주행동주의자와 투자자 입맛에 맞춘 경영판단은 장기적으로 기업에 독이 될 수 있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한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는 없다. 이멜트 회장 17년 임기 동안 GE주가는 8% 오르는 데 그쳤다. 하지만 같은 기간 S&P500지수는 214% 상승했다. 주주행동주의 예찬론자가 답해야 할 차례이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겸 바른사회 공동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