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진술이 ‘역사’이며 무조건적인 ‘사실’이라는 논리 내세워 온 이들...정작 그 ‘사실’이 자신을 겨누자 말 바꾸기에 급급”
"정의기억연대에 위안부란 무엇인가? 황금알을 낳는 노파다"
“정의기억연대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왔다”는 이용수 씨 폭로에 “주도권 다툼” 지적해 많은 공감 받아

1
인터넷 매체 ‘제3의길’의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연준 씨.(사진=펜앤드마이크TV)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에 이은 ‘정의기억연대’의 ‘해명 기자회견’이 있은 11일, 인터넷 매체 ‘제3의길’의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연준 씨는 ‘대단히’ 도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해 적지 않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받았다.

이날 나 씨는 〈이용수와 정의연, 위안부 서사와 운동의 파탄〉라는 제목의 글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自任)해 온 ‘정의기억연대’(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또는 ‘정대협’)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광주 서구갑 선거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주동식(62) 씨의 선거대책본부 본부장으로 선거를 치른 인물이기도 하다.

해당 글에서 나 씨는 최근 전개중인 ‘정의기억연대’ 사태와 관련해 “(이들이) 갈등을 겪은 이유는 서사의 진위여부가 아니라 누가 서사를 독점하느냐의 문제”라는 표현으로 정의기억연대와 이용수 할머니 사이의 국면을 풀이했다.

나 씨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군이 순결한 소녀를 납치해 갔다’는 식의 이야기는 왜곡과 과장의 결과물인데, 지난 30여년 동안 이용수 씨와 정의기억연대는 ‘위안부 서사’를 매개로 공생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 씨는 이용수 할머니도 ‘순수한 피해자’로 규정될 수 없다는 분석도 내놨다. 이 할머니 역시 정의기억연대가 만들어 온 ‘위안부 서사’의 주역으로 행동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 씨는, 피해자의 진술이 곧 ‘역사’이며 무조건적인 ‘사실’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연구자들을 벙어리들로 만들고 더러 이들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지만, 그 ‘사실’이 자신을 겨누자 “나이 많은 이용수의 기억이 ‘왜곡’됐다”,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말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나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같은 행태는 “’자기부정’이자 ‘운동 일관성’에 대한 ‘거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나 씨는 11일 〈이용수와 정의연, 위안부 서사와 운동의 파탄〉라는 제목으로 ‘대단히’ 도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재했다.(이미지=나연준 씨 페이스북 캡처)

나 씨는 또 정의기억연대와의 연대를 거부한 ‘무궁화회’ 소속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의기억연대(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가리켜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고 “(정의기억연대는) 자신들이 데뷔시킨 ‘투사’들을 삐에로처럼 써먹었다”고도 했다.

나 씨는 “(정의기억연대는) 진실을 외치면서 진실을 두려워하고, 협상을 외치면서 협상을 거부하며, 당사자를 위한다면서 당사자를 등쳐먹었고, 당하자가 하지 말라는 운동을 당사자의 이름으로 자행했다”며 정의기억연대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의연에게 위안부란 무엇인가? 황금알을 낳는 노파다. 위안부를 가장 모욕하는 집단이 누구인가? 정의연이다"라고 글을 맺었다.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의식이 담긴 나 씨의 120명이 넘는 페이스북 이용자들로부터 공감을 받았다.

한편, 서울 종로구 소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 규탄 기자회견 및 집회를 벌여온 ‘반일동상진실규명공동대책위원회’와 ‘위안부인권회복연대’ 회원들은 12일 정오(正午) 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관련 동상(소위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곳에서 윤미향 전(前) 정의기억연대 상임대표를 형사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이들은 이어서 오는 13일 정오부터 약 한 시간 여 동안, 정의기억연대가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여온 ‘일본군 위안부’ 관련 집회(소위 ‘수요시위’ 또는 ‘수요집회’) 집회 장소 인근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이 최근 진행중인 ‘일본군 위안부’ 사태와 관련한 해명을 내놓을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잇따라 개최할 예정이기도 하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이하 나연준 씨 페이스북 공개 게시물 전문(全文).

〈이용수와 정의연, 위안부 서사와 운동의 파탄〉

나는 이용수를 순수한 피해자로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용수는 정의연(구 정대협)과 함께 위안부 서사를 만들어온 주역이기 때문이다. 정의연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강렬한 서사에 있다.

위안부 서사는 ‘순결한 처녀가 성노예로 끌려갔다’는 극단적 비극, 여기에 다시 극적인 반전을 추가한다. ‘그녀들은 침묵을 깨치고 투사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용수의 구술과 최근 기자회견은 이 서사에 충실하다.

위안부 시절에 대한 이용수의 구술을 점차 강제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정의연의 비위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에서 스스로를 ‘여성인권운동가’라고 정체화하면서 자신에게 ‘장하다’는 표현을 몇 차례 썼다. 그녀는 자기 삶을 위안부 서사에 맞추었다.

이용수의 서사는 정의연의 서사이기도 하다. 전국에 세워진 130여개 소녀상은 말 그대로 ‘소녀’다. 윤미향은 위안부 김복동이 임종하는 순간 ‘일본에 대한 강한 분노를 욕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역시 ‘순결한 소녀-성노예-투사’의 서사와 일치한다.

지난 30년간 이용수와 정의연은 위안부 서사를 매개로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이용수는 ‘피해자 증언’이라는 무소불위의 언어로 위안부 서사를 ‘사실’로 만들었고, 정의연은 그 ‘사실’를 확대, 재생산, 정전화(正典化)하며 조직을 키워갔다.

많은 위안부 출신 여성들은 이러한 서사와 거리가 먼 ‘실존’을 살았다. 위안부가 되는 경로는 다양했다. 일본군이 순결한 소녀를 납치해갔다는 식의 이야기는 왜곡과 과장의 결과물이다.

위안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일부는 ‘투사’의 길을 걸었지만, 또 일부는 아시아 기금을 수령했다. 자칭 진보의 뇌내망상과 달리 ‘순결한 소녀-성노예-투사’의 서사에 일치하지 않은 위안부도 있다.

1997년 아시아 기금을 받으려는 위안부 출신 여성에게 당시 윤정옥 정대협 대표는 “아시아 여성기금을 받는다면 자원해 나간 공창이 되는 것”이라고 떠들었다. 정대협은 서사에 맞지 않은 위안부의 실존을 내다버린 것이다.

위안부 서사를 함께 만들어 갔던 이용수와 정의연이 갈등을 겪었던 이유는 서사의 진위여부가 아니다. 누가 서사를 독점하느냐의 문제다. 이용수에게 이 서사는 자신을 비롯한 위안부‘만’의 것이어야 한다. 반면 정의연은 이 서사를 공유해야한다. 팔아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갈등의 본질은 서사를 공유하는 운동집단 내부의 주도권과 지분이다. 비유하자면 연기자와 기획사의 갈등과 비슷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용수와 정의연 중 누구의 편도 들기 싫다. 다만 이들의 갈등이 현재 여성운동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위안부 서사는 ‘피해자의 진술이 곧 역사다’라는 무소불위의 언어 위에서 가능했다. 이 언어가 연구자를 벙어리로 만들었다. 몇몇은 밥줄이 날아갔고, 또 누구는 자신의 연구를 법정에서 평가받았다.

자칭 진보 입장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무조건 ‘사실’이어야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자신을 겨누자 말을 바꿨다. 윤미향은 나이많은 이용수의 기억이 ‘왜곡’되었다고 했으며, 우희종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변영주는 동네 노친네의 변덕쯤으로 취급했다. 어제의 ‘투사’가 오늘은 치매걸린 노친네가 된 것이다. 심지어 기자회견 전에 누구를 만났다는 둥, 정치공작이라는 둥 미친 소리까지 나왔다.

위안부의 ‘기억’을 무기로 싸워왔던 정의연이 이제 그 ‘기억’을 부정하고 있다. 자기 부정이자, 운동 일관성에 대한 거부이다. 운동의 기본 명분을 스스로 뿌리 뽑았다. 이런 단체가 무슨 운동을 지속한단 말인가?

1400회가 넘는 수요집회 때마다 정의연은 위안부를 광장에 전시했다. 대중 앞에서 위안부들은 정의연이 원하는 서사를 읊어댔고, 정의연은 동냥주머니를 흔들었다. 그렇게 번 돈 중 위안부를 위해 쓴 돈은 18.7%에 지나지 않는다.

정의연은 자신이 데뷔시킨 ‘투사’들을 삐에로처럼 써먹은 것이다. 위안부는 그렇게 받은 알량한 푼돈마저 ‘기부’라는 이름으로 뱉어냈다. 그 중 일부는 시민단체 활동가 자녀들에게 장학금이란 명목으로 배분되었다.

2004년 무궁화회 할머니는 정대협을 이렇게 규탄했다.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인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지금 전국에 130여개의 소녀상이 있다. 개당 5천만원만 잡아도 65억이다. 7천만원이면 90억이 넘는다. 모금해서 동상 세울 돈은 있어도 살아있는 위안부에게는 인색했다. 정의연은 시민단체인가, 제사단체인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의연은 해산해야 한다.

이나영은 정의연의 운동이 30년간 이어온 세계적 운동이라고 목에 힘을 줬다. 그래, 그녀가 자랑하는 30년을 이어온 수요집회를 2004년 무궁화회 할머니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수요집회를 지속해야 정대협이라는 배가 항해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국내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결같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수요집회를 꺼려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결국 정의연은 당사자 일부가 거부하는 운동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직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서 말이다. 여기서 정체성은 앞서 말한 위안부 서사와 다르지 않다. 그 서사는 협상과 동시에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위안부는 영원히 투쟁해야만 하고 협상은 영원히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최근 정의연은 문희상안을 거부했다.

그래서 정의연은 사라져야 한다. 진실을 외치면서 진실을 두려워하고, 협상을 외치면서 협상을 거부하며, 당사자를 위한다면서 당사자를 등쳐먹었고, 당사자가 하지말라는 운동을 당사자의 이름으로 자행했다. 오직 위안부 서사를 자기 조직의 돈과 권력으로 환전했을 뿐이다.

정의연에게 위안부란 무엇인가?

황금알을 낳는 노파다.

위안부를 가장 모욕하는 집단이 누구인가?

정의연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