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유민주 진영은 가능한 한 빨리 노선을 재정비하고 일어나 가야 한다
박형준 김형오 김세연으로 대표되는 통합당의 ‘중도 실용’ 계열과 ‘황교안 방식’엔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아야
자유민주 헌법질서와 개인의 인권 등 자유민주 진영 본연의 정체성 다시 한번 확인해야
내부를 향한 칼질과 독선과 배타성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류근일 언론인
류근일 언론인

보수라 해야 할지, 우파라 해야 할지, 자유민주 진영이라 해야 할지, 대한민국 세력이라 해야 할지, 이름 붙이기에 따라 ‘특정한 딱지’가 붙을 수도 있기에 정말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지금 여기 이 글에선 ‘자유민주 진영’이라 해 두기로 한다. 하나 더 밝혀 둘 것은, 필자는 어떤 개인, 단체, 모임, 조직을 대변하지 않는 순전 개인이란 점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화두를 던진다. 미래통합당과 그것을 포함한 광의의 자유민주 진영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필자 개인의 의견은 이렇다. 박형준 김형오 김세연 등으로 대표되는 미래통합당의 이른바 ‘중도 실용’ 계열, 그리고 그들 등에 올라탔다가 추락한 ‘황교안 방식’엔 더 이상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대신 자유민주 헌법 질서-견제와 균형-법에 의한 지배-개인의 인권-글로벌 시장경제-자유기업-한미동맹 등 자유민주 진영 본연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면 한다. “왜 나와-우리와 똑같이 생각하지 않느냐?”는 ‘내부를 향한’ 칼질과 독선과 배타성엔 빠지진 않으면서 말이다.

‘중도’ ‘중도 실용’ ‘중도 표심(swing voters) 배려’ ‘중도로 외연 확대’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보수-우파라던 야당이 그 본연의 가치-철학-사관(史觀)-미학(美學)-정체성을 버리고 “우리도 50%쯤은 좌(左)클릭 하겠다”고 한다 해서 ‘중도 표심’과 청장년층이 반드시 그리로 따라오리란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이점은 4. 15 총선 기간 미래통합당 당권파인 ‘중도 실용’ 계열의 ‘엉망진창 공천’에 대한 수도권 민심의 현저한 거부감에서 여실히 입증된 바 있다. 물론, 총선 결과와 관련해선 통계 전문가들이 사전투표 과정의 ‘디지탈 데이터 조작’ 의혹을 제기해 일부 낙선자가 법원에 고소-고발까지 한 상태다. 향후의 법정(法廷) 공방을 지켜볼 일이다.

이럼에도, 총선을 지휘한 미래통합당 ‘중도 실용’ 계열과 일부 주요 미디어들은 4. 15 총선의 보수 패배 책임이 마치 ‘김대호-차명진 막말‘ ’보수 유튜버에 휩쓸린 탓‘에 있는 양 떠넘기려 했다. 당치도 않은 소리다. 김대호-차명진 발언이 정말 막말이었느냐 하는 것부터 새삼 따져봐야 하겠지만, 그 발언들이 나오기 훨씬 전인 선거 초반에 이미 대세는 집권 여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잡혀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었다. 공천에서 선거관리에 이르기까지 ’중도 실용‘ 계열 자기들이 ’차(車)치고 포(包)치고‘ 해놓고선 막상 선거에서 지니까 그 책임을 자신들 아닌 ’광화문 국민‘에게 있다는 양, 뒤집어씌웠다.

총선 결과를 놓고 일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달라지고 국민 눈높이가 올라간 현실에선 ‘중도’로 가야 하지 전통적 자유주의-보수주의-냉전 반공주의-천민(賤民)자본주의에 머물러선 안 된다” “좌익을 너무 치열하게 공격하는 것도 ‘틀딱-꼰대-수구-꼴통’으로 보여 안 된다” 운운. 말은 번지레하다. 현학적이고 유식한 것 같기도 하고 신식 유행 같기도 하다.

‘냉전 반공주의로는 안 된다“고? 그렇다면 궁금한 게 있다. 평양 신정(神政) 체제의 수용소 군도(群島)를 열정적으로 비판하면 그건 ‘냉전 반공주의’인가 아닌가? 미래한국당 당선인 지성호 씨와 미래통합당 당선인 태영호 씨 같은 탈북자들이 김정은 체제를 버리고 온 것도 냉전 반공주의(A)인가 아닌(B)가? A라면 왜 그렇고 B라면 또 왜 그런가? 지난 5월 3일 새벽, 우리 측 군 초소(哨所)에 총격을 가한 북한군을 향해 우리 군이 대응 사격을 한 것 역시 냉전 반공주의인가 아닌가?

또 뭐, 천민자본주의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지난 산업화를 성공시킨 우리 경제와 기업을 꼭 그렇게 부정적(천민적)으로 설명하는 게 정확한 것일까? 그간의 성장 과정과 기업문화에 그림자 부분이 있었을 수는 있다. 있었다면 앞으로 계속 법률적으로, 윤리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치 처음부터 천민자본주의를 의도적으로 선택해 그렇게만 끌고 왔다는 식으로 비관하진 않아도 괜찮을 듯싶다.

한국 자본주의를 포함한 세상만사는 언제나 불완전한 모습으로 시작해 시행착오를 거쳐 점차 나아지는 것이라고 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2차대전 후 대한민국의 네이션 빌딩(나라 만들기)과 자유 시장경제 역사는 전체적으로 보아 대단한 역작이었다고 필자는 바라본다. 삼성 현대-기아 LG SK가 있었다는 게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들 자유기업을 지원하고 선도한 정치 리더십도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공칠과삼(功七過三)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성찰(省察)적 조명이야 물론 있어야 하겠지만.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게 있다. 이번 선거 기간에 정부-여당이 ‘재난 지원금 100만원 씩’ 주겠다고 한 ‘매표 행위’는 온당한 짓이었느냐 하는 물음이다. 노인층 일부는 “지금의 정부가 자식보다 낫다”고 말했다는 설이 있긴 하다. 사실이라면 노인층의 그런 심정을 이해는 하더라도 그게 우리 미래를 위해 희망적인 정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칭 ‘진보’ 엘리트와 대중이 함께 “와~” 하며 어디론가 떼 지어 몰려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의 결말에 대해선 필부(匹夫)도 책임이 있다고 했듯이.

한국 자유민주 진영은 가능한 한 빨리 노선을 재정비하고 일어나 가야 한다. 미래통합당 내부 상황과 대중적 무감각을 보면 한국 자유민주 진영에 과연 희망이 있을지 회의하게 된다. 그러나 내일 아침 태양은 다시 떠오를 것이다. 처절하고 진지한 고민 끝에 희망의 싹을 발견했으면 한다.

류근일(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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