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급변사태 이후 가정한 특별법으로 北 고위급-군부와 주민에 적용할 형사법 체계 수립해야
형사법의 '한반도주의', 한반도 전체에 대한 대내외적 주권 선언이자 평화통일의 초석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보름 여 동안 한반도에서 뉴스의 중심은 보이지 않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 말대로 “짠”하고 나타나거나, 아니면 사실상의 유고가 확인되거나 간에 우리는 북한의 급격한 상황 변화를 염두에 둔 태세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 외부 세계의 온갖 추측과 소문 속에서 김정은의 잠행이 오래될수록 우리에게 주어진 준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도 있다.

북한의 급변 사태를 가정하여 갖춰 두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는 북한의 고위 당정 및 군부 요인들과 주민에게 적용될 수 있는 형사법 체계를 수립해 두는 일이다.

우리 대법원 판례는 대체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의 규정과 형법은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적용한다’는 제2조에 따라 북한 지역에도 당연히 남한 형법이 적용되지만, 사실상 북한 지역에 남한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하므로 남한이 수사권 및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을 뿐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정신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에 충실한 해석이어서 향후 통일 한반도에서의 사법적 정의를 세워 가는 큰 원칙으로 봐야 한다.

이제는 이러한 원칙을 입법을 통해 보다 구체화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북한 주민이 북한 지역에서 행한 범죄에 관하여는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의 경우 보호대상자로 결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북한이탈 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2호의 소극적 내용 외에 별다른 규정이 없다.

정부가 작년 11월 동해상에 나포된 북한 주민 2명을 북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강제로 북한으로 추방하였던 사건은 통일 이전이라도 북한에서의 북한 주민 범죄에 대한 분명한 관할권을 법률에 의해 대한민국이 행사하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적 차원에서도 미룰 수 없는 입법 과제인 것이다.

사실 이미 북한의 법을 행위 준칙으로 삼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지역에서 행한 모든 범죄에 대하여 남한 형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도 않고, 과연 죄형법정주의에 부합하느냐는 사법 정의적 관점에서의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형법 중에서도 북한 주민에게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범죄 유형을 따로 추린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 특별법의 제정에는 이른바 형사법 세계주의에 관한 규정이 참고가 될 수 있다. 형사법상의 세계주의란 범죄지, 범인 또는 피해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인류 공통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국내 형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연대를 통해 반인류·비인도적인 범죄를 처벌하고 방지하는 것은 모든 문명 국가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사고가 그 바탕이다.

일례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이 자국의 형법에 세계주의를 도입하여 범죄지. 범인의 국적 및 피해자의 국적을 묻지 않고 인류공동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국내 형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엔 이른바 효과주의(effects principle)에 따라 타국에서 외국인이 범한 범죄라도 결과적으로 그 영향이 미국 내에 미치면 국내범처럼 취급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2013년 형법 제296조의 2를 신설하여 약취·유인, 인신매매 등의 행위에 대하여는 외국인이 외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밖에도 특별법으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 테러자금 관련한 범죄, 마약거래와 관련된 범죄 등에도 우리 형사법의 적용 범위를 타국에서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에 확장하고 하고 있다.

이러한 기존의 입법 사례 및 남북한의 특수한 상태를 감안하여 북한 주민에게 적용되는 형벌 체계, 이른바 형사법의 ‘한반도주의’를 갖춰놓아야 한다. 이 법에는 세계주의에 따른 인류 공통의 법익 침해 범죄는 물론,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통일 한반도의 국가 이익을 수호하는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예컨대, 북한 유사시에 발생할 수 있는 정치범 수용소 등에서의 집단살해 및 그 지시 행위, 고위 당 및 군대 간부들에 의하여 벌어질지도 모를 제3국을 상대로 한 매국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 등을 미리 성문 법제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입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이 한반도 전체에 미친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다시 한번 선언하면서, 단기적으로는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하고,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사이의 형사 사법 체계의 정비를 통한 평화 통일의 초석을 쌓는 길이 될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그 날이 도적같이 오기 전에 준비해 주길 바란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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