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의 조기 탈락이 자유우파 세력에게는 다행이라는 자조 나올 정도
대통합 전략 실패와 당의 가치 실종에 대해 책임있는 자 책임져라.
박형준, 김세연, 유승민도 책임져야
유승민계와 안철수계에 대한 지나친 특혜가 독이 됐다
미래통합당에서 정치적 상상력 찾기 힘들어
대구 경북에서 차세대 리더감 발견하기 힘들어

강규형 객원 칼럼니스트

21대 총선의 후유증은 상당히 클 것이고 오래 갈 것이다. 투개표에서 선거부정이 없었다는 전제 하에 요약하자면, 요번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은 난데없는 우한 바이러스 사태가 가장 큰 요인일성 싶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없었던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방송 등 선전선동 기구들을 장악한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우한 폐렴 초기대응 실패를 교묘히 성공 스토리로 윤색(潤色)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덧붙여 사회보장으로 위장한 노골적인 매표(買票)행위가 통하는 한국사회의 미성숙도 역할을 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서울 광진구의 고민정 후보 지원 유세에서 “고(민정) 후보를 당선시켜 주시면 저와 민주당은 100%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 하겠다”는 역대급 악성 매표 행위를 스스럼없이 행했다. 이제 고 씨가 당선됐으니 국민 전부가 ‘하사금’을 받을 차례인가? 설사 지원금이 전국민에게 지급된다 해도 그게 고 후보의 당선 때문이라는 괴상한 논리가 성립되니, 집권세력은 이런 넌센스같은 상황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이것은 노골적인 선거법 위반행위이다. 또한 이런 매표행위들이 통하는 대책 없는 대중영합주의 사회로 한국이 향하고 있다는 어두운 지표이기도 하다.

게다가 광진구 선거관리위원회는 허위 사실을 적시한 공보물을 유권자들에게 발송한 혐의로 고민정 후보를 검찰에 수사 의뢰한 상태이다. 친정권적 성향이 강한 선관위조차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선거운동은 막 나갔다. 고민정 후보는 또한 경희대 수원분교를 나왔음에도 그동안 여러 곳에서 서울본교를 나온 것처럼 허위 기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문제가 지적되자 고 씨의 약력은 여기저기서 황급히 수원 캠퍼스로 바뀌었다.

이런 이유 외에도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무기력함도 지적을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다. 리더로서 내세운 ‘황교안’이라는 상품은 정치 초년생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유권자들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황교안이라는 잠재적 대권 후보가 조기 탈락한 것이 자유우파 세력에게는 다행이라고까지 자조(自嘲)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황 대표가 택한 전략은 ‘대통합’이었고 그가 기용한 책사는 박형준 전 의원이었다. 한 유튜버가 잘 요약했듯이 요번 총선은 황의 “대권욕”과 박형준의 “몽상”이 빚은 “대참사”였다. 박 전 의원은 부드럽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재능은 있으나, 지금까지 자신이 주도한 여러 승부에서는 거의 언제나 참패를 하는 징크스도 갖게 됐다. 심각히 정계 은퇴를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더군다나 막후에서 황의 생각을 좌지우지한 사람이 유모 씨라는 항간의 소문은 기자들의 취재로 거의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최우석 "황교안, 과거 논란에 휩싸인 선진국민연대(이명박 외곽 조직) 핵심 말 듣다 선거 망쳤다" 월간조선 2020.04.17.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9307&Newsnumb=2020049307)

유 씨는 간단히 얘기하면 재주 있는 정치브로커이다. 이런 중차대한 일에 이런 류의 사람을 고위 전략가(chief strategist)로 썼다는 사실은 황교안 리더쉽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필자는 누누이 요번에 제1야당에서 통합과 혁신은 같이 갈 수 없다고 강변했었다. 대통합은 우파의 여러 정파들을 끌어 안아야 가능한 것으로, 여기에는 혁신이 자리잡을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파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 이런 전략을 쓴 것까지는 이해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번 대통합은 주로 소위 중원, 즉 중도층을 공력하는데 집중됐다. 총선을 주도한 세력의 평소 지론이 탈이념 중도실용이니 능히 예측 가능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향이 너무 치우친 형태로 진행되면서 정당의 생명인 가치와 이념이라는 공통분모는 철저히 무너졌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우익 정당에 취약한 것이 공통가치의 부재(不在)였는데 요번에 그런 상황이 더 악화됐다.

바른미래당-새보수당 인사들, 특히 유승민계에겐 유 의원의 불출마 대신에 지나친 특혜가 주어졌으며, 안철수 측이 지역구 후보를 안 내는 대신에 안철수계 인사들에게도 엄청난 배려가 행해졌다. 대신 그동안 자유한국당을 지켜온 인사들은 오히려 찬밥 신세가 됐고,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진성우파 세력은 무시됐다. 특히 ‘조국 사태’로 격발된 10월 항쟁의 정신은 사라진 철저한 좌클릭이었다. 그 결과 실체 없는 중도층 흡수는 실패했고, 대신 자유우파적 가치는 실종된 혼이 없는 정당, 잡탕밥인 정당이 돼버렸다. 통합당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인 조성은(32) 씨는 대표적인 박지원 계로서 과거 “문재인 대통령 짱 존경” “성군이 되셔야 한다”는 문비어천가를 읊어대고 박지원 의원 찬양에 바빴던 사람이었다. 이 정도 되면 피아(彼我)가 구분이 안 되는 상태다. 엉망진창인 미래통합당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일 것이다. 이런 인사의 글이 통합당 젊은 인재의 의견이라는 식의 칼럼으로도 실렸다. 과거 ‘조국 빠’인 나다은 씨를 인재영입이라고 했다가 망신당한 경우 등 이런 한심한 예는 너무나 많았다. 이런 사안들을 전혀 체크해내지 못한 미래통합당 당료들의 무능함과 안이함도 문제였다 ("나다은은 자기 식대로 살았을 뿐 더 큰 잘못은 걸러내지 못한 黨에 있다"...질타받는 한국당 사무처 펜앤드마이크 2020.01.13.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27121)

결과적으로 고정 지지층이 있는 영남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처참한 패배가 기다렸다.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연동형비례제-공수처 설치 등의 패스트트랙을 오히려 열렬히 지지한 안철수(국민의당)계 사람들이 별 반성도 없이 무조건 공천을 받는 당에게 무슨 가치와 기준을 기대할 수 있겠나. 또한 망신스러운 “윤지오 파동”의 주역이었던 안철수계 김수민 의원이 단독공천을 받는 당에게 뭘 또 바라겠나. 결과는 이들의 처참한 낙선이었다. 안철수가 만든 비례용 정당 ‘국민의당’도 비례선거에서 겨우 세 석을 얻는 참패를 맞았다. 이런 안씨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시려는 생각까지 했던 미래통합당이 새삼 한심할 뿐이다.

유승민계는 영남에서 주로 공천을 받아 쉬운 당선을 따낸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새로운 주도세력이 돼서는 안 된다. 하태경 의원은 부산 해운대에서 땅 짚고 헤엄치는 쉬운 당선을 따냈다. 하지만 하 의원은 그동안 그가 한국 우파에게 가한 왜곡된 비판과 더불어 집권세력과 북한체제에 대해 유화적인 언행을 한 것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하고 시작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번에 불미스러운 사태로 부산시장에서 사퇴한 오거돈 시장에 대해 “나는 돈빠(오거돈 빠)다“라고 얘기하며 노골적으로 지지한 것에 대해 입장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유승민 의원도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는 순간 더 추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럴 수 없는 일이 있다.

이런 공천을 주도한 김세연 의원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거늘 오히려 차세대 지도자로 추대되는 움직임조차 있으니 통합당은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 듯하다. 김세연 의원은 당분간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 행여 부산시장이니 하는 계획은 갖지 않길 바란다. 하긴 조국 전 '무법장관'의 부산시장 아이디어도 돌아다니는 이 판국에 너무 강한 요구일지는 모르겠으나 좀 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김종인 전 의원에게 매달리는 현재 미래통합당의 모습에서 정치적 상상력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 신선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 생각은 못 하고 흘러간 옛 노래에 집착하는가. ‘전희경 비상대책위원장’ 정도의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없는 무기력한 정당에서 뭘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전희경 비대위원장 안은 하나의 예를 든 것에 불과하다. 생명을 다한 공룡과 같은 미래통합당 대신 경량(輕量)이기에 유연성과 민첩성을 가질 수 있는 미래한국당을 중심으로 야권개편을 하는 식의 역발상을 해보기는 했는가.

그나마 영남에서의 압승으로 개헌저지선을 확보했고, 4월 15일의 본투표에서는 승리했으며, 비례대표 선거에서 1위를 한 것이 작은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가지고는 턱도 없다. 영남지역에서 비교적 쉽게 당선된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몇 명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차세대 리더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다.

특히 선거전에서 “대구코로나”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사용한 민주당 이탄희 당선자(경기 용인 정)같은 식의 특정 지역 희생양 만들기의 역풍으로 사실상 전원 당선된 대구·경북지역에서 기대주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엄연한 사실은 우익 정당뿐 아니라 이 지역에 어두운 미래를 예견한다. 대구·경북지역에서의 공천을 너무 안이하게 했다는 아쉬움을 지울 길이 없다. 해결해야 할 난제이다.

*해당 칼럼은 매일신문 2020년 4월 29일 자에 게재된 칼럼을 필자가 대폭 증보한 글이다.

강규형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교수,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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