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과 김정렴 실장의 공통점...애국심 높고, 사심 없으며, 현장 중시하고, 매우 실용적으로 해결하고 대처해 왔다는 것"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경제발전 업적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 높아...12년 간의 비서실장 직책 수행은 그 업적이 녹아 있다"

지난 25일 별세한 고(故) 김정렴(96·사진 왼쪽)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지난 196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는 모습.
지난 25일 별세한 고(故) 김정렴(96·사진 왼쪽)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지난 196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비서실장 임명장을 받는 모습.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박근혜 정부)은 27일 박정희 정부에서 최장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을 추모하며 "이런 유능한 경제사령탑이 있었기에 고도 성장이 가능하고, 근대적인 경제개혁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과 상공부 장관을 지내고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3개월간 비서실장으로 일한 김정렴 회장은 지난 25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허현전 전 행정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경제발전의 업적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12년 간의 비서실장 직책 수행은 그 업적이 녹아 있다"며 "박정희식 경제발전에 성공하는데는 현장을 중시하고, 유연하게 사고하여 실용적으로 대처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또 "이승만과 장면 정권에서 일한 바 있는 김정렴은 5.16 군사정변 이후 혁명정부에 의해 좌천되었다"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화폐개혁을 단행하고자 하는 박정희 의장의 강력한 의지로 혁명정부의 관료들이 김정렴을 다시 불러들였다"고 했다.

허 전 행정관은 "이승만 정부에서 화폐개혁의 전문을 준비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애국심을 자극하는 혁명정부의 요청이 그는 다시 일을 맡았고, 이 과정에서 박정희 의장은 김정렴이 매우 꼼꼼하고 빈틈이 없으며 실용적인 능력이 뛰어남을 확인했다"며 "마치 군에서 만난 박태준과 같은 인물어있다. 당시 혁명정부 주변에는 큰소리치고 과장되게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에서 수출주도공업화 전략으로 전환, 중화학공업의 육성, 새마을 운동 등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인이나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국장과 과장 등 담당자의 의견 등을 중시하였다"며 "적지 않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이겨내는데는 이런 현장 중시, 유연한 대처, 실용적인 방안을 중시한 결과"라고 했다.

허 전 행정관은 "박정희식 경제발전 뒤에는 오원철, 김정렴 실장이 늘 함께 했다"며 "이런 유능한 경제사령탑이 있었기에 고도 성장이 가능하고, 근대적인 경제개혁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도자의 첫째 덕목은 사심이 없는 것이요, 둘째 덕목은 인재를 알아보고 쓰는 것이라 한다"고 했다.

허 전 행정관은 마지막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김정렴 실장의 공통점은 애국심이 높고, 사심이 없으며, 현장을 중시하고, 매우 실용적으로 해결하고 대처해 왔다는 것"이라며 "김정렴 선생을 보내며 우리 현대사의 빛나는 별들에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심민현 기자 smh418@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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