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제2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 발표...“북한 인권 문제선 상대방 수용 가능성 고려해야”
朴 정부의 1차 계획 뒤집는 내용...당시는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중단토록 한다” 적시
‘북한의 사전 허가’ 암시하는 조항 근거로 시민단체의 대북 정책 비판 무용화할 수도
‘사고나 재난 차원에서 월선(남하)한 북한주민 송환’ 조항도...강제북송 사례 늘어날 듯
유엔이 만든 ‘지속가능발전목표’, 북한주민 삶의 질 제고 추진에 끼워맞춰
통일부, 이번 계획 국회에 제출한 날 정례 브리핑 생략...이날도 함구하다 뒤늦게 발표

김연철 통일부 장관./연합뉴스
김연철 통일부 장관./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24일 북한 인권 증진 계획에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문구를 명시했다. 사실상 북한 지도부의 허락을 구하기 전까지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어서 저자세 외교 논란이 예상된다.

이날 통일부가 발표한 ‘제2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은 향후 3개년 계획으로 추진된다. 이 계획안의 비전과 목표에는 ‘북한 인권 문제는 상대방이 있는 만큼, 실질적 개선을 위해 북한의 수용 가능성, 남북관계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북한인권 개선의 성과 창출을 위해 대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보다 실효적인 방법을 강구’ 등의 문구가 담겨 있다.

이는 모두 박근혜 정부가 2017년 4월 확정한 ‘제1차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에 담긴 북한 인권 개선 방안을 뒤집은 내용이다. 1차 계획엔 ‘북한 당국이 보편적 가치와 국제규범에 따라 인권 보호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행위를 중단하도록 하고, 인권·민생 친화적인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해 실질적 인권 개선에 호응해 나오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 적시됐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북한 눈치보기를 단순히 미사여구로 포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 지도부의 사전 허가’로 비칠 수 있는 조항을 근거로, 향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국내 시민단체 등의 비판을 무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이 계획안에는 또한 ‘인도주의·인권 차원에서 사고 및 재난 등으로 월선(남하)한 북한주민 및 선박 등 소환’ 방침도 적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 20대 탈북 선원 2명에게 ‘선장 외 승선원 15명을 살해한 혐의’를 적용해 강제 북송하면서 국제적인 규탄을 받았다. 당시 귀순 의사를 밝힌 이들의 살해 혐의는 입증하지 못한 채 북한 지도부의 송환 요청을 받아 돌려보낸 것이다.

이 계획안이 효력을 가지면 앞으로는 강제 북송과 같은 사안이 무차별적으로 발생할 공산이 크다. 북한 지도부 의중에 따라 귀순 의사를 가진 탈북민을 불투명한 사고나 재난 등으로 위장해 돌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서는 인도적 이유로 돌려보내는 경우라도 대신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납북자·억류국민 등을 받겠다는 뜻은 조금도 시사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계획안에 거론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 지원 등을 통한 북한주민의 삶의 질 제고 추진’이란 내용도 논란을 유발하는 대목이다. SDGs는 빈곤, 질병, 교육, 성평등, 난민, 분쟁 등을 국제사회가 공동 해결을 목표로 하는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대표는 “세계 여러 곳에서 요즘 SDGs가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중대 인권문제들을 회피하고 외부지원 정당화하려는 부작용이 나타나 골몰하고 있다”며 “억압적인 독재국가들과 두둔하는 나라들이 주로 물타기를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 정부는 대북지원 구실 찾기에 골몰했고, 결국 유엔에서 좋은 취지로 만든 SDGs 프레임을 편리하게 요리해서 구색 붙인 것”이라며 “달리 말하면, 10년 넘은 노력 끝에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의 노골적인 무력화이자 악용 시도”라고 지적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인권증진기본계획에 대해 함구했다가 TJWG에서 언론 등에 알리고 기자들의 확인 문의가 시작되자 뒤늦게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는 지난 22일 국회에 이 계획안을 제출했지만, 우한 코로나를 이유로 당일 정례브리핑을 생략하기도 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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