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익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지난 22일 세상을 떠난 故강남수 씨를 기억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발길 끊이지 않아
유족 측, “40년을 다닌 성당, 나쁘게 이야기할 생각 없지만...아버지에 대한 헛소문 퍼뜨리고 다닌 신자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이계성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장, “故강남수 씨의 장례는 오는 26일 ‘시민장’으로 치를 것...대한문 앞에서 노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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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홍익병원 목동관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강남수 씨의 분향소에 내걸린 강 씨의 영정 사진.(사진=박순종 기자)

지난 22일 세상을 떠난 한 천주교 신자의 빈소에는 문상객의 발길이 끊일 줄 몰랐다. 분향소에 내걸린 사진 속 주인공은 고(故) 강남수 씨. 향년 87세. 세례명 ‘베드로’. 사진 속 강 씨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고(故) 강남수 씨는 “(일부) ‘정치 사제’들로 인해 가톨릭교회가 공산혁명 기지로 변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며 지난달 30일 서울 강서구 소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화곡2동성당 앞에서 ‘순교’(殉敎)를 각오하고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강 씨가 세상을 떠난 지난 4월22일은 그로부터 24일째를 맞는 날이었다.

장례 이틀째를 맞는 23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자유·우파 진영의 여러 인사들이 서울 홍익병원 목동관 장례식장에 마련된 강 씨의 빈소를 찾았으며 강 씨의 죽음에 관심을 가진 적지 않은 유튜버들과 시민들 역시 강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지난 1934년 3월20일 태어난 고 강남수 씨는, 지금으로부터 230여년 전, 이 땅에 천주교가 전래됐을 때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인 ‘순교자 집안’의 5대손이라고 한다. 경기 안성시 보개면 양복리가 고향인 강 씨는 단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지난 1963년 입직해 1986년 퇴직 때까지 24년 간 경찰 공무원으로서 국민에 봉사했다.

“단식을 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이 아파 힘들 줄 알았는데, 정작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성당 사람들의 냉대였어요. 세상에, 길 위를 헤매는 짐승에게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텐데…….”

고 강남수 씨의 장녀(長女) 강미예 씨는 강 씨의 단식 기간 중 강 씨가 겪은 일들을 담담히 증언했다. 강미예 씨에 따르면 고 강남수 씨가 단식 농성을 시작한 화곡2동성당은 강 씨가 교적(敎籍)을 두고 지난 40년 동안 매일같이 출석해 온 성당이다.

“아버지께서는 원래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지난 1월부터 단식을 시작하려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겨울은 추우니 하시려거든 봄이 오거든 하세요’하고 별 생각 없이 말씀을 드렸는데, 3월이 되자 천막을 찾으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천막을 구해 원하시는 대로 화곡2동 성당 앞에 설치해 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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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남수 씨의 분향소 옆에는 강 씨가 지난 3월30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화곡2동 성당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할 때 내걸었던 기도 내용이 적힌 입간판이 서 있다.(사진=박순종 기자)

강미예 씨는 고 강남수 씨가 단식 농성에 이르게 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강 씨는 어려서부터 천주교 순교자들에 관한 서적을 탐독했다고 한다. 강 씨의 유족 측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이후 지난 3년 동안 고 강남수 씨는 나라와 교회가 기울어져가고 있음을 개탄하면서 ‘순교’ 의지를 굳히게 됐다고 했다.

이어서 강미예 씨는 “성당을 더 이상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강 씨가 화곡2동 성당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단식을 하는 동안 강 씨는 성당 측으로부터 냉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당 신자 중 어떤 여성은 우리 아버지에 대해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기도 했는데, 이 일이 참 가슴 아프다”고 덧붙였다. 강 씨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고 강남수 씨가 자신이 준 미음을 전부 들이켰다며 강 씨가 ‘진짜 단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유족 측은 또, 성당 측이 외부 인사들 내지는 단체들이 강남수 씨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디 23일 오전 11시에 예정된 고 강남수 씨의 장례미사도 성당 측이 오전 9시로 일정을 바꾸게 됐다고 장례미사 당일 아침에 유족 측에 급히 연락을 취해 왔다며 “아무리 봐도 외부 인사들이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성당 측이 별로 내켜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 강남수 씨의 빈소를 찾은 여러 시민들은 한결같이 “강 씨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24일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던 고 강남수 씨의 발인은 오는 26일 오전 10시로 연기됐다. 강 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시민들이 ‘3일장’이 아닌 ‘5일장’으로 해야 한다며 유족들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계성 씨에 따르면 26일 강 씨의 관(棺)이 나가면, 강 씨가 단식 농성을 했던 화곡2동 성당과 덕수궁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노제를 지낸 후, 시신 기증이 예정돼 있는 강남 성모병원으로 운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 씨는 “고 강남수 씨의 장례는 ‘시민장’으로 치르려 하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강 씨의 장례에 와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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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남수 씨가 생전 유족에게 남긴 친필 서한들. 강 씨는 이들 서한을 통해 “나는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가기 위한 것이니, (이런 내 뜻을) 알라”, ”(단식을 그만하라는) 너의 뜻을 알지만, (그것은) 절대 내 뜻은 아니다”, ”아직도 내 뜻을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등의 메시지를 자신의 가족들에게 전했다.(사진=박순종 기자)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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