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한 표 줍쇼' 시대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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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4.22 10:47:10
  • 최종수정 2020.04.2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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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다들 망했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이만하면 잘했다. 선거를 말아먹기 위해 당 지도부가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얻은 소득치고는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다. 선거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일관성 있게 흔들리며 지지표를 털어낸 선거였다. 표를 주고 싶어도 “저한테 왜 이러세요” 손을 뿌리친 선거였다. 전대미문의 선거였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선거일 것이다. 공천 과정에서 김을 빼는 건 이 당의 유구한 전통이다. 지도부 말 안 듣는다고 홍준표, 김태호를 잘라냈고 동지인지 적인지도 확인도 안 해 보고 공천을 줬다 망신을 불렀다. 탈脫원전 폐기를 공약 1호로 내걸어놓고는 막상 정부의 탈원전에 맞서 싸웠던 활동가들은 공천자 명단에서 깨끗하게 밀어냈다. 비례 대표는 아예 초판을 갈아엎어 안 되는 집구석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청년 세대를 위한 정당을 떠들어내고는 청년의 씨를 말렸으니 그 당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할 말이 없게 됐다. 이슈 선점에서는 주도권을 내줬고 내내 말려들어갔다. 여당에서 돈 준다니까 우리도 주겠다며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도 안 하는 ‘따라 하기’를 했다. 막판은 정말 가관이었다. 엎드려 절까지 해가며 표를 구걸했다. 정치도 상품이다. 소비자의 선택을 ‘표’로 환산해 받는 상품이다. 가족이나 친지는 손해보고 그냥 사 준다. 그런데 일반인들까지 아무리 봐도 아닌 상품을 사는 일은 없다. 당당하게, “내 정치를 사시오”라고 소비자에게 펼쳐 보이는 게 선거다. 그토록 시장경제를 부르짖으면서 선거에서는 시장市場을 시장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한 표 줍쇼, 안 그러면 이 나라 망합니다는 시장의 슬로건이 아니다. 그건 시장에서 앵벌이하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다. 구걸 선거의 특징은 구질구질하다는 것이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사람들은 절하는 사람을 피해갔다. 정말이지 이렇게 시종일관 무능하기도 힘든 선거였다. 이만하면 잘했다, 라고는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특히 나경원, 심재철, 전희경, 민경욱, 오세훈은 아프다. 내 살 다친 것처럼 아프다.

멸종

이전 칼럼에서도 쓴 적 있다. 한국에 보수나 우파는 없고 다만 있는 것은 산업화 세력이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이번 선거는 그 세대가 생물학적으로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다.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는 그래서 답이 쉽다. 새로운 보수, 2세대 보수가 나올 차례다. 산업화 세력에게 특별히 빚 진 거 없고 산업화에 대한 기억이 없는 세대가 보수를 끌어가야 할 순서라는 얘기다. 해서 보수의 재건이라는 표현은 위험하다. 일단 재건할 보수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으니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보수의 재건은 은퇴가 마땅한 구세대의 컴백을 정당화시켜주는 간악한 슬로건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 맞고 옳다. 새로운 보수가 할 일은 많다. 산업화 세대가 했던 것만큼이나 많다. 선거 결과를 놓고 좀 더 좌클릭해야 한다는 주문이 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그럼 대체 왜 보수가 필요한 건데? 새로운 보수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바로 그 일이다. 이 나라에 보수가 왜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내야 한다. 답에 자신이 없거나 목소리에 확신이 없는 사람은 그쯤에서 포기하시기를 바란다. 그래서 필요한 게 이념이다. 이념을 너무 고리타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념은 사람이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틀이고 정신적인 구심점이다. 그게 없으면 최종적인 순간에 흔들린다. 마지막 판단을 해야 할 때 어이없는 수를 던진다. 종교인에게 신앙이 필요한 것처럼 정치인에게는 이념이 필수다. 정치 공학적으로 좌클릭이 필요할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념이 있고 난 후에야 전술적 유연함도 있는 것이다. 이념이 빠진 전술적 유연함은 정치적 자살 행위다. 나중에 수습이 안 된다. 자기 확신에 성공했다면 그 다음은 그 확신을 정치 소비자에게 전염시키는 것이다. 왜 보수가 필요한지 알려줘야 한다. 중소상공인, 자영업자가 기댈 곳이 보수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설득한 소비자의 층이 두터우면 보수의 외연은 확대되고 실패하면 한국 보수는 문을 닫아야 한다. 아주 간단한 프로세스다.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선거는 끝났다. 패인 분석도 끝났고 뭘 해야 할지도 명확하다.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든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또 김종인 얘기가 나온다. 사람이 그렇게 없나. 자기 운명은 자기가 결정하는 것이다. 다선 및 내부 중진 인사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면 된다. 앞으로 일을 실제로 해 나갈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된다. 그런데도 외부에서 사람을 들이겠다는 이 당의 발상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자기가 바보라는 것을 세상에 광고하는 셈이다. 우리 당에 ‘머리’는 없고 죄 ‘대가리’뿐이라는 사실을 신나게 알리는 꼴이다. 내가 다 부끄럽다. 다선, 중진들이 할 일은 명확하다. 초선 의원들의 교육이다. 이념적으로 교육하고 정치적으로 교육하고 뼈아픈 실패담을 들려주는 것이다. 의정활동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실수와 참사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당대회를 성공적으로, 축제처럼 만드는 것이 그 최종본이 될 것이다. 급하지 않다. 서두를 일이 전혀 아니다. 전당대회가 조금 미뤄진다고 분개할 보수는 없다. 천천히 구멍 난 부분을 메워나가는 것 그리고 그 구멍을 채우는 데 적당한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 그게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할 일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딱 하나다. 다음에도 자기가 나서겠다는 생각은 제발 버리시길 바란다. 그게 진정으로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는 일이다. 다선, 중진들은 패배한 이번 전투의 패장들이다. 살아 돌아왔다고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절대 아니다. 던지고 내려놓으시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히 지키는 것, 그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예전에 경험해 본 나라’로 되돌리는 길이다. 동맹을 흔들고 따져보면 별 영양가도 없는 나라에 아양이나 떨고 경제를 상식이 아니라 취향으로 운영하는 정권의 손에서 대한민국을 구하는 일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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