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민 교사]정치시장과 좌파 상품 구매자들
[기고/배민 교사]정치시장과 좌파 상품 구매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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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장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인간의 행복에 기여한다. 상품시장, 노동시장, 교육시장, 의료시장, 지식시장, 결혼시장 등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시장은 그 본질이 ‘가치’의 확인과 교환이며, 시장에서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상승 혹은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게 된다. 그 결과 시장은 인간이 보다 나은 인간 (better self)이 되도록 만든다. 이는 분절적인 혹은 환원론적인 분석에 익숙한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잘 이해하기 힘든 사회적 현상이다.

물론 시장 중에는 비도덕적인 시장도 있기는 하다. 이름하여 정치 시장. 이 시장에는 가장 양심 불량의 상품들이 주로 팔린다. 고객의 눈속임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 상품들은 고객의 무지와 망각에 기대어 계속 팔려왔다. 이 시장이 이렇게 유난히 형편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절적인 혹은 환원론적 이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단순히 파는 사람이 양심 불량, 능력 부족의 인간이거나 구매자가 비도덕적인 인간이거나 해서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정치인들은 늘 부패와 부도덕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어왔다.

하지만 이 대답은 틀렸다. 상품시장이나 노동시장 등 다른 시장에 비해 이 시장에 참가하는 개개인이 딱히 더 사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정치시장이 부패한 이유는 이 시장이 (다른 모든 종류의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원리인)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적 전략에 바탕을 두고 구매행위가 이루어지는 독특한 시장이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공동구매를 해야 하는 이 시장의 구매자들은 자신의 가치와 행복 같은 개인적 목표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지불하는 다른 종류의 시장에서와 달리,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의 실현 등과 같은) 사회의 집단적인 목표를 위해 상품을 구매한다.

문제는 구매자들이 이 대의를 위해 지출하게 되는 비용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누가 얼마를 내야 하는지, 얼마를 내게 되는지, 심지어 비용이 있는지 조차 불분명하며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이 시장의 공동구매자들은 다른 종류의 시장에서는 하지 않는 특이한 스타일의 구매 행위를 하게 되는데, 바로 비용을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즉, 비용을 얘기하는 판매자들, 그리고 그들의 상품은 정치 시장에서 인기가 없으며 안팔린다.

노동자들의 투표권이 논란이 되던19세기 중반 이래 전세계 정치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져온 상품 제조 철학은 사회주의이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수 우파 상품들은 대개 그 정치철학을 효과적으로 어필해본 적이 드물다). 이는 역사적으로 시장 경제의 자유주의 원칙에 대항하는, 이른바 좌파적 시각의 본질이다. 사회주의 시각을 바탕으로 한 정치 상품들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철저한 보호보다는 집단 전체의 복리를 우선시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결과적 평등을 지향하는 공통 분모를 가진다.

이 상품의 판매자들은 자신의 상품을 선택했을 때 구매자 개인들에게 초래될 (정부행정의 비대화 및 비효율과 투자 위축, 자본의 이탈로 인한 경제 침체, 일자리 감소와 같은) 비용 부문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그 결과 이 상품이 열광적으로 팔리는 사회의 경제는 더욱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해진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주의 이론에서 즐겨 말하는) ‘착취와 억압’의 구조에 더 쉽게 노출되고 더 취약해진다.

물론 타인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혹은 경쟁이 될 수밖에 없는 시장이라는 사회적 공간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세속을 해탈한 개인이 시장에서의 경쟁을 부정하며 살아가거나, 헌신적 열정으로 가득 찬 개인이 공동체적 삶에 온전히 봉사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시장의 메커니즘으로부터의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코 한 사회가 시장을 억압하거나 규제해야 할 필요성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전자는 개인 취향의 문제이며, 후자는 사회적인 법과 정책의 문제이다. 마치 생물학의 적자생존 이론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는 자가 다 가져도 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 안에 내재해 있는 동물적이고 잔인한 본성을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 진정으로 보다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한 핵심임을 의미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사회적 시장은 곧 생물학적 시장이기도 하다. 진정한 자유는 억압의 반대편에, 무지의 반대편에 서 있지, 한 사회 전체가 경쟁을 집단적으로 부정하고 비용청구서를 외면하는 현실의 집단적 도피를 통해 실현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좌파적 시각의 일차원적, 근시안적 접근은 이러한 경제학적, 생물학적 시장의 불가피한 존재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좌파적 시각에 자신도 모르게 세뇌된 (그래서 정치시장에서 좌파 상품들을 열광적으로 공동구매하고 있는) 사람들은 시장 경제 체제가 빈자와 부자의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한다고 보는, 시장에 대한 분절적이고 환원론적 시각에 근거한 오해와 편견에 사로 잡혀 있다. 이들 구매자들은 자신의 사고가 좌파 상품이 가진 프레임에 의해 한발짝도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은 그들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 상대를 경제적 불평등에 무심한 냉혈한으로 인식하는 자신들의 프레임을 가동시켜 은연 중에 인격재판을 시도한다. 시장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우파 개인주의자들에 대한 이러한 도덕적 프레임을 이용한 공격은, 경제 영역 외의 많은 다양한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역사에서 ‘친일’ 프레임, 현대사에서 ‘군부독재’와 ‘민주화 탄압’ 프레임이며, 그 외에도 끝없이 이어진다. 교육에서 정시 제도를 비판하는 ‘시험성적으로 경쟁시키는 비인간적 입시제도’ 프레임도 그 하나이다.

대개 이들 좌파 상품 구매자들은 의도가 좋아야 결과가 좋다고 보는 이른바 인문학적 감수성 혹은 (의도가 좋으면 결과도 좋으리라 보는) 세상을 일차함수로 이해하는 단선적인 사고의 틀을 잘 극복하지 못한다. 가령 한국이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 중 하나는 1965년부터 시작된 한미일 공조였다라는 얘기를 하면, 이들은 내가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감사해야 된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으로 이해하는 식이다. 실제로 내가 그렇게 얘기한 것은 한미일 공조를 통해 냉전시대 자유 진영의 시장과 무역에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을, 자본이 극히 빈약했던) 한국이 편입될 수 있었고, 이는 일본의 의도와 관계 없이 한국의 무역 증가를 통해 기록적인 경제발전을 초래했음을 의미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한 여러 문물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20세기 전반 한국인들의 삶의 수준이 그 이전과 비교해서 급격히 발전했다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좌파 상품 구매자들이 홍위병이 되어 설치는 한국사회 지성의 수준이다. 철도, 도로 등의 기간 시설 증대로 인한 교역체계 확립, 민사령 시행을 비롯한 시장경제의 법체계 확립, 무역의 증가로 인한 내수시장 증가 등 한국인이 아닌 제3국의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라면 쉽게 분석할 수 있는 그 시대 사회발전의 원인들이 무시된다. 이전 시대와의 비교를 통한 객관적인 맥락 보다는 그 의도 자체가 선하지 못했다는 전제에 입각해 그 시대의 통치는 문제가 많았다는 식으로 바라본다.

잘 생각해보면, ‘정치인의 선한 의도’처럼 이 세상에서 무의미하면서도 위험한 개념이 또 있을까? 하지만 선하고 훌륭한 정치인이 정치시장에서 자신들이 구매한 상품의 비용을 면제해주기라도 할 듯이 믿고 있는 많은 좌파 상품 구매자들은 이렇듯 의도와 결과를 단순 인과관계로 연결시키는 집단감성과 일차원적 사고의 틀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 결과 사회를 경제적 불평등,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로서 이해하는 거대한 사회주의 프레임의 노예로 자신도 모르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주 창살 없는 감옥을 스스로 만들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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