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영 전북대 명예교수]통합, 중도, 세대교체의 주술에 걸려 참패한 보수 야당
[기고/이재영 전북대 명예교수]통합, 중도, 세대교체의 주술에 걸려 참패한 보수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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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 만큼 자유 우파 국민들이 비장하게 별렀으나 참담하게 끝난 선거는 없었다. 피가 거꾸로 솟을 정도다. 이 절망적인 결과를 오로지 코로나19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미래통합당 지도부의 형편없는 리더십과 공천 전략 실패가 자초한 재앙이다. 탄핵 정국 이후에 보수 진영에서는 통합, 중도 확장, 세대교체라는 키워드가 주문처럼 끊임없이 맴돌았다. 보수 야당은 선거를 앞두고 이 주술에 홀려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듯 비틀거렸다.

자유한국당이 매달렸던 지상 과제는 탄핵 정국에서 갈라진 당의 원상 복구였다. 새보수당과 합당이 추진되던 지난 1월에 주목할 만한 여론 조사 결과가 있었다. 그 당시 자유한국당은 지지율 32%, 새보수당은 4%였으나 합당 예상 지지율은 25%에 불과했다. 두 당의 합산 지지율 36% 보다 11%p나 낮은 수치이다. 기대하던 합당의 시너지 효과는 커녕 역효과를 예측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이를 두고 합당을 저해하는 코미디 수준의 여론 조작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핵심 지지층이 탄핵 세력으로 규정한 새보수당에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수긍할 만한 결과였으며 이런 합당이 보수 진영의 많은 국민들이 바라는 통합이 결코 아님을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합당 과정은 얼토당토않은 사람들이 나서서 주도하고 자유한국당이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108석의 자유한국당이 8석의 새보수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치른 대가는 너무 컸다. 공천은 유승민의 비위를 맞추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당내 기존 세력의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당의 스탠스는 왼쪽으로 좀 더 기울어졌다. 또 다른 큰 대가는 당명을 포기한 것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한 원로 언론인은 “총선을 코앞에 두고 당명을 바꾸는 것은 넌센스”라며 선거에 패배하면 ‘미래통합당’이라는 어색한 당명이 중요 패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야권의 통합은 필요했다. 그러나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중요했다. 두 당의 합당은 많은 자유 우파 국민들의 마음과는 거리가 너무 먼 통합이었다. 지나간 일을 놓고 따져봐야 소용이 없지만 차라리 모든 우파 정당과 세력을 포함하는 선거 연대가 더 좋은 방안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미래통합당이 열심히 쫓아다닌 신기루는 중도 외연 확장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말해주듯이 신기루는 역시 허상에 불과했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서 광화문 태극기 세력을 비롯한 골수 우파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중도층의 정서를 조금이라도 건드릴까 우려하여 확실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그리고 막말 프레임에 걸린 두 명의 후보를 가차없이 제명했다. 이 초유의 자해 행위 또한 중도 표심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훨씬 심한 막말 논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시종일관 아랑곳하지 않았다. 좌파 진영은 집권 이후 수없이 발생한 온갖 부정과 부도덕한 비리에도 위축되기는 커녕 오히려 뻔뻔스럽게 억지를 써서 반격하며 지지층을 결집시켰다. 그들은 구걸보다 중도층에게 훨씬 더 잘 먹히는 거짓 선동의 비결을 알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상대가 헛기침만 해도 행여 중도표가 달아날까 노심초사하여 읍소하는 비굴함으로 일관했다. 그때마다 우파 국민들은 분노와 모멸감에 투표 의욕 마저 상실했다. 핵심 지지층을 외면한 채 중도 외연 확장이 과연 가능한가? 그 것은 콤파스의 중심축을 고정하지 않고 원을 크게 그리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미래통합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은 이유는 중도층 보다 먼저 정통 보수층의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미래통합당을 압박했던 또 다른 강박 관념은 세대교체였다. 정작 젊은 세대를 대변할 듯한 더불어민주당은 이 번 총선의 지역구 후보로 586세대를 158명이나 공천하여 세대교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본다. 반면에 미래통합당은 꼰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인지 세대교체에 집착하는 모습이 공천 결과에서 나타났다. 경쟁력있는 후보를 배제하고 인지도가 낮은 신인을 다수 공천했다. 세대교체가 그렇게 시급했을까? 압도적으로 우세한 판세라면 내친 김에 세대교체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석이 아쉬운 절박한 상황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내쳐서 무소속 경쟁 후보로 만들다니 제정신인가? 또 특정 지역구에 기반이 견고한 후보를 연고가 약한 지역구로 바꿔서 공천한 것도 세대교체의 일환이었는지 아리송하다. 결과적으로 세대교체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따 놓은 의석수만 공연히 날린 공천이 되고 말았다. 꼰대 이미지가 보수 정당의 본질적인 속성이라면 굳이 이를 벗겨내려고 애쓰는 대신에 풍부한 경험과 통찰력을 지닌 현자다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노력이 필요했다.

보수 야당의 참패로 끝난 이번 선거 결과는 많은 자유 우파 국민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렇다고 누구의 탓만하며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이제 결연한 각오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보수 진영은 우선 탄핵사태 이후 짓눌러왔던 패배주의를 탈피하고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보수의 이념과 가치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자유 우파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보수 진영이 지금은 비록 지리멸렬할 지라도 대한민국을 우뚝 세운 중심축이었으며 앞으로도 나라의 번영과 안위를 지킬 수 있는 버팀목임을 모든 국민들이 깨닫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이재영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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