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역사는 머릿수로 써가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소수의 개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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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평세 북한학 박사

“동료 보수주의자 여러분, 이제 더 성장합시다(let’s grow up). 우리가 이 정당을 되찾고자 한다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바로 그 일에 착수합시다(let’s get to work)!”

이 말은 1960년 6월7일, 미국 공화당 경선에서 자타공인 보수주의자인 배리 골드워터가 ‘유사보수’ 리처드 닉슨에게 패한 뒤 연설에서 나온 ‘패자발언’이다. 러셀 커크와 윌리엄 버클리(Buckley) 등을 통해 겨우 보수주의의 정신을 되찾아 꿈틀거리던 미국 보수는, 골드워터의 이 소집명령에 따라 본격적인 보수주의 정치행동의 스타트를 끊게 된다. 그날 저녁 골드워터와 버클리는, 몇 개월 후 11월 대선 직후 코네티컷 샤론(Sharon)에 위치한 버클리의 저택에 전국에서 보수주의 운동을 이끌 젊은이들을 집결시키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11월 19일, 미국 24개주 44개 대학에서 모인 90명의 대학청년들이 샤론의 저택에 마주앉는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열띤 토론을 거쳐 보수주의 가치의 정수를 담은 ‘샤론선언문’을 발표하고, 미국 보수판 ‘전국대학생협의회(전대협)’이라고 할 수 있는 Young Americans for Freedom (YAF) 을 결성한다. 결국 4년 후인 1964년 7월, 그들은 배리 골드워터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불과 1년 전 벌어진 케네디 암살에 대한 동정표로 인해 상대 후보인 린든 존슨의 압승은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1964년 대선을 불과 2개월 앞둔 9월 11일 YAF 유세현장에 연설자로 나선 윌리엄 버클리는, 집회를 급히 비공개로 바꾸고 그곳에 모인 젊은 운동가들 모두를 경악하게 한 다음의 발언을 한다.

“지혜의 시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으로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곧 닥칠 골드워터의 패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충격적인 참패 이후에는 종종 극심한 혼린이 뒤따르는데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다가오는 그 패배는, 어느 위대한 ‘11월 그날’에 열매 맺게 될 희망의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버클리의 예상대로 골드워터는 그해 대선에서 린든 존슨에게 참패한다. 하지만 버클리의 예방접종으로 미국 보수는 절망하기 보다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11월 그날’을 향한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날은 거저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16년 동안 미국 보수는 묵묵히 견디고 때로는 치열하게 싸웠다. 보수 출판사들은 적자를 감수하며 보수주의 가치를 담은 책들을 끊임없이 찍어냈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쉬지 않았다. 거액을 투자한 수많은 기업인들도 있었다. 러셀 커크와 하이에크, 프랭크 마이어(Meyer) 등은 보수주의를 재정립하고 계속해서 자유주의와 연합해 나갔으며, 여러 보수학생 단체들을 키워냈다. YAF나 미국보수연합(American Conservative Union)을 비롯한 정치세력은 CPAC과 같은 연례 컨벤션을 통해 로널드 레이건과 같은 위대한 보수정치인들을 키워냈다. 모턴 블랙웰과 에드윈 퓰너 등의 보수 브레인들은 각각 리더십인스티튜트와 헤리티지재단 등의 싱크탱크를 만들어 승리를 위한 전략과 보수주의 정책들을 고안해냈다. 미 복음주의 기독세력도 보수 세력의 도덕적 중추를 맡아 연대를 구축하였다. 16년간 계속된 이러한 노력들은 1980년 레이건의 당선으로 미국 정치계에 보수주의를 부활시키는 대성과를 거둔다.

21대 총선에 참패한 대한민국 보수 세력이 나아가야 할 길을 묻게 되는 지금, 이 16년간의 미 보수주의 운동사를 돌아보면 이제부터 한국 보수가 밟아나가야 할 로드맵이 보인다.

한국 보수의 패배를 맞이하는 다섯 유형

한국 보수진영은 대략 다섯 가지 유형으로 이번 참패를 맞이하고 있다. 먼저 이번 선거가 조작되었거나 무효라는 ‘현실부정형’이다. 엄연한 사실로 드러난 드루킹 여론조작이나 중국의 국내 여론개입(‘차이나게이트’), 그리고 북·중의 사이버전쟁은 분명 한국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합리적 의혹제기를 넘어 극단적 음모론을 좇는 경우가 있다. 여론조사와 출구조사, 그리고 사전선거와 개표절차의 완벽한 조작을 주장하는 ‘부정선거론’이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허술함과 여당 편파적 선거운동 간섭 등은 분명 문제시되어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검은 세력의 완전한 조작”을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보수진영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우습게 만들어 버리고 에너지를 낭비케 한다.

두 번째로는 이민을 가겠다거나 정치에 더 이상 관심을 끄겠다고 엄포(?)를 놓는 ‘현실도피형’이다. 물론 실제로 이민을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관심을 끄겠다는 다짐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또한 누군가 말했듯이, “그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진다고 해서 정치가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지지 않는다.”

세 번째로, 한국인은 역시 ‘개, 돼지’ 수준이라거나 “더 망해봐야 된다”는 자조 내지 비아냥형도 있다. 이는 ‘자기위로’를 위한 것인 만큼 중독성이 강하고 너무 빠지면 해로울 수도 있다.

위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보수 세력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구경꾼들이다. 옆에 두고 듣고 있으면 속은 시원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적대시하고 “도려낼”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허탈한 패배주의만 자극하기 때문에 선은 분명히 그어야 한다. 또한 이 세 부류 때문에 보수주의와 보수운동을 거북해하는 수많은 ‘중도’ 일반인들도 생각보다 많다. 일반대중에게 보수주의의 문턱을 낮추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효과적인 보수운동에 필수적이다.

네 번째 부류는 이번 총선패배의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아 공격하는 ‘책임전가형’, 혹은 패배원인을 냉철하게 파고들어 따끔하게 지적하는 ‘원인복기분석형’이다. 종종 “내가 이렇게 될 거라 그랬지”라는 비평을 가장한 자기자랑을 수반하기 때문에 들어주기 힘들 수 있지만 꼭 필요한 소리이기도 하다. 이들을 통해 통렬하고 냉혹하지만 객관적이고 반성적인 복기는 필수적이다.

마지막 유형으로는, 서둘러 자기가 다음 해야 할 일을 찾아 묵묵히 일에 착수하는 청지기형이 있다. 이들은 분명 곳곳에 많이 있지만 대부분 조용히 이미 할 일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은 이들이 보수주의 운동을 이끌어 나갈 주인공이다.

보수가 버릴 것과 끌어안을 것

미국 보수주의는 16년간 보수주의의 성공적 재건을 위해, 멀리할 것은 분명히 멀리하고 끌어안을 것은 확실히 끌어안았다. 먼저 보수주의의 가치에 반하는 극단적·적대적 무신론을 차단했다.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영향력 있는 자유우파였던 에인 랜드(Ayn Rand)를 보수주의 운동에서 내쫓는 강수를 두었다.

두 번째로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음모론자들을 멀리했다. 대표적으로 끊임없이 소모적인 논란을 만들어냈던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에 선을 그었다. 이 단체는 무려 10만 명에 달하는 회원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반공세력이었지만, 이들과 분명한 거리를 둠을 통해서 오히려 수많은 중도, 온건보수들이 보수주의 운동에 합류할 수 있었다.

반면 자유주의세력, 반공주의세력, 그리고 전통보수주의(paleo-conservative) 세력, 이 셋은 적극적으로 끌어안아 보수텐트에 주류로 합류시켰다. 그중 특히 우리 한국보수에도 함의점이 있는 것은 바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연합이다. 보수주의 운동 초기에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등을 비롯한 경제학 배경의 자유주의자들은, 러셀 커크가 정립한 보수주의 정치철학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심지어 하이에크는 자신의 책 《법, 입법, 그리고 자유》의 부록으로 “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라는 에세이를 써넣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어와 버클리의 집요한 설득으로 보수주의와 세력을 합친다. 한국의 보수주의도 자유주의를, 혹은 자유주의가 보수주의를, 끌어안아야 한다.

한국 보수도 분명히 차단하고 거리를 두어야 할 반(反)보수주의 세력과 비상식 음모론이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무신론 혹은 불가지론을 넘어 ‘인간 상위 도덕’을 부정하는 세력들은 보수의 가치에 반하기 때문에 차단해야 한다. 또한 핵심가치를 타협하지 않는 선에서 분명히 연합해야 할, 그러나 서로 꺼림칙한 사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보수주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또한 PC주의와 극단적 페미니즘에 환멸을 느끼고 ‘보수화’된 2030 ‘비(非)이념’ 젊은 보수들과 ‘반공어르신’들이 있다. 이들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보수라는 큰 텐트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수주의에 대한 공부와 이해가 필수적이고, 또한 핵심가치와 정체성 빼고는 다 뜯어고치겠다는 환골탈태의 마음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참혹한 패배감에 가려질 수 있는 이번 총선의 소중한 성과도 분명히 헤아릴 필요가 있다. 시퍼런 물결을 뚫고 적진에 투입된 보수의 선수들과 그 잠재력을 좌절에 빠져서 잊어버리고 방치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적어도 우리 보수에겐 국회에 다시 돌아온 홍준표, 박진, 윤상현 등과, 북한주민들의 인권과 자유통일의 열망을 대표할 탈북민 태영호 전 공사 및 지성호 대표, 그리고 2030 청년층과 여성층 보수를 대표할 전 언론인 배현진과 김은혜 등이 있다. 또 비교적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보수주의적 가정관과 생명주의를 옹호할 성일종 의원과 김미애 변호사 등도 있다. 보수진영은 이들이 적진에서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하는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켜보며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보수의 역사는 머릿수로 써가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소수의 개인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조평세(북한학 박사 ·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 위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써 트루스포럼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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