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은 넘치는데 콤플렉스에 갇혀 있는’ 리더십 유형
불확실성 시대에 가장 불안하고 위험한 최고지도자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성 착취 영상으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n번방 사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강조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해 조사하고, 회원 중에 공직자가 있는지도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은 너무 나갔다. 세부적인 일은 수사기관에게 맡기면 될 것을 무슨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는지 몰라도 최고 통치자의 ‘값’을 스스로 깎아 내렸다.  

대통령의 이런 돌출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은 전부터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7월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에 대해 특별수사단 구성을 지시했을 때 문 대통령은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이었다. 온갖 야단법석을 떤 그 결과가 ‘기소 대상자 전원 무죄’라는 헛발질로 끝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바다. 해외 순방 중에는 일단 외교에 전념했어야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입시제도 문제에서까지 같은 면모를 보였다. 교육부가 ‘정시 확대 반대’를 밝힌 바로 다음날에 대통령이 180도 반대 방향인 ‘정시 확대’를 천명한 것이다. 교육 현장은 당연히 혼란에 빠졌다. 더구나 ‘대입제도를 변경할 때는 4년 전에 학생들에게 예고한 뒤 시행한다’는 오랜 사회적 합의는 대통령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당시 여론의 분노가 한창 들끓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의 범죄행위를 입시제도 탓으로 호도하려는 꼼수이기도 했다. 절차와 대상을 전혀 개의치 않는 그의 넓은 오지랖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부터 ‘가야사 연구’ 지시까지 다양하게 이르렀다.

국가적 위기인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그는 “곧 종식될 것”이라거나 “중국의 어려움은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등 뜬금없는 메시지로 국민들을 다독이기는커녕 더 심난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문재인이라는 인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년의 집권 기간을 통해 밖으로 드러난 그의 특징으로는 앞서 언급한 ‘돌출성’과 함께,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다시 확인된 ‘자화자찬’, 자신의 잘못 인정에 극히 인색한 ‘완벽 본능’ 등 세 가지가 두드러진다. 이런 캐릭터를 바탕으로 그의 리더십을 유형화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남은 2년 임기에 벌어질 일도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그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사람이 미국 듀크대 교수를 지낸 정치학자 제임스 바버이다. 그는 대통령의 캐릭터에 대한 오랜 연구로 명성을 얻었는데 대통령 리더십의 유형을 4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대통령이 업무에 에너지를 많이 투입하는 정도에 따라 ‘적극적 업무 수행’ ‘소극적 업무 수행’으로 나눈 뒤, 자기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낮은 정도에 따라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으로 또 분류했다. 이 방식으로 ‘적극적 업무 수행’과 ‘긍정적 감정’을 함께 지닌 대통령을 비롯해 총 4개의 유형이 도출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유형에 속할까.

문 대통령은 취임 1000일을 맞은 올해 2월 3일 페이스북을 통해 소회를 밝혔다. ‘돌아보면 그저 일, 일, 일 또 일이었다’고 했다. 단군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쑥과 마늘의 1000일’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럴 정도이니 자기 일에 에너지를 투입하는 측면에서는 ‘적극적 업무 수행’ 스타일임이 분명하다.

반면에 그가 느끼는 업무 만족도라는 측면에서는 국회와 야당, 언론 등 ‘남의 탓’을 많이 하는 점이나, 경제와 북핵 문제 등에서 성급한 자기 칭찬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스스로에게 만족도가 높다면 이와 반대로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 대통령은 바버가 분류한 4가지 대통령 유형 중에서 ‘적극적 업무 수행’과 ‘부정적 감정’을 같이 보유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유형이 초래할 부작용이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한국의 대통령제보다 역사가 훨씬 오래됐으므로 미국의 축적된 정치 경험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바버는 이런 유형의 리더십에 대해 ‘권력 추구 욕망이 강하며 스스로 지배력과 통제력을 유지하는 것에서 심리적인 만족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거나 환경이 유리하게 전개되지 않을 경우 극도의 자기 방어와 파괴적 성향 등 강박증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로 인해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모순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일만 해도 전통시장 상인이 요즘 경기가 ‘거지 같다’는 말을 대통령에게 한 뒤 ‘문빠’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한 사건이 상징적이다. 대통령은 그 상인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안타깝다’는 말을 밝혔으나 정작 가해자인 ‘문빠’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SNS에 관심이 많다는 문 대통령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주는 ‘문빠’를 통해 지배력을 확인하고 심리적 만족감에 빠져 들지 모른다. 그가 고르는 공직자들만 봐도 같은 이념 일색이다. 검증 과정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도 어떻게 해서든 임명을 관철한다. 이런 ‘외통수 정치’는 빈번한 상황 오판과 함께, 심할 경우 국가적 파국까지 부를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확진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시점에서 영화 ‘기생충’ 관계자를 청와대로 불러 ‘짜파구리 파티’를 벌이며 파안대소를 한 일이나, 한미 통화스와프가 미국 측 주도에 의해 이뤄졌는데도 대통령이 ‘우리 측 사명감의 결실’이라고 엉뚱한 자평(自評)을 한 것에서도 ‘지배력 확인’ ‘극도의 자기 방어’ 같은 바버의 틀이 정확히 들어맞는 기시감을 느낀다. 거의 막무가내인 친중(親中) 노선과, 국민적 소통 과정이나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밀어 붙이는 탈(脫)원전,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서도 강박증이나 공격성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바버는 4가지 유형 가운데 가장 위험한 리더십으로 문 대통령과 같은 ‘적극적 업무 수행’ ‘부정적 감정’ 유형을 꼽았다. 즉 ‘의욕은 넘치는데 콤플렉스에 갇혀 있는 지도자’는 나라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끝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최근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회고록을 낸 김종인 씨는 문 대통령에 대해 ‘편안하게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인다’고 예언했다. 이 말이 적중한다면 최대 피해자는 국민들이 될 것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이 시대에 우리는 가장 불안하고 위험한 대통령을 두고 있는 셈이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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