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칼럼] 마스크 대란보다 더 심각한 ‘한국인 입국 금지’
[황인희 칼럼] 마스크 대란보다 더 심각한 ‘한국인 입국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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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3.17 10:36:42
  • 최종수정 2020.03.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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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遼西)에서부터 양자강(揚子江) 일대까지, 한때 광활한 영토 자랑했던 백제는 어떻게 무너졌나?
조금 살 만해지니 ‘이 정도면 됐겠지’ 병(病)...대륙의 고토를 되찾겠다는 패기 잃고 ‘무사안일’ 주의에 빠졌을 때 ‘망국의 조짐’
막강한 ‘여권(旅券) 파워’ 자랑한 대한민국, 이제는 전 세계 140여개국이 ‘한국인 입국’ 제한하고 있어
신뢰를 잃는 것은 한 순간, 신뢰를 되찾는 것은 쉽지 않아...‘코로나19’ 사태 끝나면 한국은 ‘국제 신인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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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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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과서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백제가 대륙을 다스렸음을 말해주는 기록은 중국의 정통 역사책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애당초 온조가 세웠다는 도읍 위례성도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랴오시(遼西·요서) 지방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문헌에 나오는 ‘하남 위례성’에서 ‘하(河)’는 한강이 아니라 랴오시의 랴오허(遼河·요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우리나라 학자는 대륙 백제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사 교과서에서도 “백제가 요서에 진출했다”라는 정도로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대륙 백제를 인정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요서에 있던 나라들의 사료에 대륙 백제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신라 왕족의 후손으로, 고려가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를 계승했다고 왜곡한 사람이다. 그런데 신라에 의해 패망한 백제를 대륙까지 아우른 큰 나라로 적었을 리 만무하다. 또 북중국 왕조들의 역사책에 백제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바다 건너온 이민족에게 점령당했던 것을 뭐 자랑이라고 확실하게 적어놓았겠는가?

백제가 최대의 영토를 차지한 때는 13대(代) 근초고왕 때이다. 이때 그 영토가 남쪽으로는 양쯔강(揚子江·양자강)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랴오둥(遼東·요동)에 가까웠으며 전체 크기는 한반도 백제의 몇 배나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벌어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근초고왕은 직접 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까지 쳐들어갔다. 이 전쟁에서 고구려가 크게 패하고 고국원왕은 전사했다.

그 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정복 사업으로 대륙 백제가 잠식되고 백제는 위축되어갔다. 대륙 백제를 완전히 상실한 것은 무령왕의 아들 26대 성왕 때이다. 성왕도 노력을 안 한 건 아니다. 사비(현재의 충남 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나라 이름도 ‘남부여’로 바꿨다. 성왕은 백제가 저 멀리 북방에 있던 부여의 후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라 이름을 부여로 바꾼 것은 북진 정책의 선언이었다. 또 사비는 수로를 통해 서해로 바로 나갈 수 있는 길목이다. 백제는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바다로의 빠른 진입이 가능한 사비를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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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北伐)을 외치던 백제 제26대 성왕의 동상.

그런데 계획과 달리 백제는 한반도에서도 땅을 넓히지 못하고 바다를 건너지도 못했다. 안타깝게도 성왕이 관산성(管山城, 현재의 충북 옥천)에서 전사한 후 백제 사람들은 아예 대륙 백제를 잊은 듯 했다. 북벌을 외치던 왕을 졸지에 잃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3만 명의 정예군을 잃은 탓에 진취적 기상이 있다 해도 그를 실현할 수가 없었다.

서동으로 잘 알려진 29대 무왕 때의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에서 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국력이 신장되었다. 또 무왕이 나라 안의 통치도 잘해서 백제는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살 만해지니 ‘이 정도면 됐겠지’ 병(病)이 여지없이 나타났다.

무왕은 여유롭고 한가한 생활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좋게 얘기하면 풍류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사치스러운 삶이었다. 백제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나라와 치열하게 전투를 하던 그 벌판에서 사냥을 하고 궁궐을 중수하며 호화스러운 절을 짓기도 했다.

무왕은 이렇게 태평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40년의 재위를 마치고 서기 641년 세상을 떠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왕이 전쟁에 승승장구하고 태평성대에 여생을 보낸 팔자 좋은 왕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재위했던 시기는,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오랜 전쟁으로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섰으며 당태종이 정변을 일으켜 황제의 위를 찬탈하는 등 주변 국가들이 격변을 겪은 때였다. 또 신라나 고구려와의 국경이 아직 불안한 상황이었다. 이 점을 상기한다면 무왕이 그렇게 한가한 삶을 즐길 틈은 없었던 것이다. 무왕은, 신라와 고구려를 넘어서 불과 1백 년 전까지 백제의 땅이었던 대륙 백제를 되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땅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백제 망국의 조짐은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백제가 대륙의 땅을 다시 찾겠다는 패기를 잃고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정국을 이끌었다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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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이 태평성대를 즐긴 서동공원.

2.

세계의 패권국이 되는 것은 단지 영토나 군사력, 경제력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극동의 반도 국가, 그나마도 분단이 되어 섬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기적을 일구어낸 대한민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 패권국으로 전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만 했다. K-POP으로 한류의 중심에 서는가 하면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우리 영화가 한꺼번에 네 번이나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일궈내고 세계인이 부러워할 만한 응원 문화를 만들어낸 것도 잊을 수 없는 쾌거이다. 또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에서 따낸 감동의 금메달과 미국의 여자 골프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대거 상위권을 차지한 것도 우연히 생긴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오랜 시간을 들여 기초부터 쌓아 올려 만들어낸 결실들이다.

우리가 오랜 시간을 들여 이뤄낸 성과 중 하나는 대한민국의 여권(旅券) 파워였다. 2019년 말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면 거의 200개에 가까운 나라에 비자 없이 여행이 가능했다. 전 세계 웬만한 나라에 가서도 우리는 당당하게 대한민국 여권을 내놓았다.

그런데 지금 그 파워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3월16일 오전 9시 기준 한국으로부터 입국을 막거나 입국 절차를 강화한 곳은 총 140개 국가에 이른다고 한다. UN 가입국이 193개국인 점을 감안하면 전 세계의 70%가 넘는 나라에서 한국인을 그냥 입국시키지 않는 셈이다. 이제 대한민국 여권으로는 웬만한 나라에 못 들어간다. 그나마 동맹의 의리를 지키고 있는 미국이 아직까지 입국 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여권에는, 여권 주인의 인적 사항보다 앞서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 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라는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 이는 그저 여권이면 형식적으로 있는 문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그 문구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었는지 이제야 조금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한국인 입국 금지를 단지 여행할 수 없는 불편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민간의 해외 여행 길이 막히면 국내 수많은 여행업체가 도산의 위기에 처하는 것도 큰일이다.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산업과 무역을 위해 각국에 출장 다녀야 하는 비즈니스맨들의 발도 묶인다는 것이다. 가든 안 가든 상관없는 여행객이 아닌, 반드시 가야 하는 사람들이 지금 애만 태우고 있다. 국제 물류에도 커다란 차질이 생긴다. 한류 등 외국과의 문화 교류도 당분간 스톱이다. 스포츠 교류도 어려워졌다. 그 외에도 코로나19로 인한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가 몰고 올 심각한 여파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이는 이제껏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국력을 쇠잔하게 만들고 있다.

여러 나라의 입국 금지 조치에 대해 우리 국민이나 정부 관리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다음의 몇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우려된다.

첫째, 상대국이 금지했는데 우리가 어떡하겠는가? 기다려봐야지.

둘째, 그냥 우리끼리 부족한 대로 살아도 된다.

셋째, 곧 날이 따뜻해질 것이고 그러면 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이며 자동으로 입국 금지 조치가 풀려 우리는 언제 이런 일을 겪었냐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우선 당장 눈앞에 닥친 전염병에 신경 쓰느라 그런 일까지는 생각할 수 없다.

신뢰를 잃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신뢰를 되찾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 날이 따뜻해져 코로나19가 물러간 후 대한민국의 국제적 신인도(信認度)가 바로 예전같이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백제의 부흥 운동이 허망하게 끝나버린 임존성
백제의 부흥 운동이 허망하게 끝나버린 역사의 현장인 임존성.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고 더 멀리 나아가겠다는 진취성을 잃으면 앞에 쓴 백제의 경우와 같이 나라의 힘이 빠지고 결국 망국의 길로 향하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땅도 좁고 자원도 별로 없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까지 이뤄놓은 것이 있으니 그걸 파먹고 살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져서는 더욱 더 안 된다.

지금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때문에 정신이 없지만 이도 끝날 날이 반드시 있다. 그때 우리의 국가 신인도를 더 빨리 되찾을 수 있도록 지금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는 한국인 입국 금지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민은 그렇게 되도록 정부에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지금 국내에서는 마스크 사기 전쟁이 한창이다. 약국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인파의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마스크가 질병 예방과 전염 방지에 꼭 필요하다는 데는 나도 이견이 없다. 그런데 꼭 그 ‘공적 마스크’를 사서 써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며칠 전 ‘KF94’라는 같은 규격의 마스크를 약국에서 줄 서지 않고 다른 마트에서 샀다. 다섯 장 포장에 4,500원이니 비싼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줄 서서 반드시 공적 마스크를 사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마스크 사는 데 몰두하고 잘못된 시스템에 많은 사람이 분개하는 데 비해 대한민국의 발전을 몇 10년 뒤로 돌릴지도 모르는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그저 무심한 듯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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