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 문항 70% EBS와 연계 '합헌'…현직 교사로서 전적 수긍 어려워
공교육 위축, 사교육 부담 증가 등 부작용 우려
비중 높아지는 ‘공룡’ EBS, 교재 내용·강사 검증도 문제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지난 3월 1일, 헌법재판소는 수능시험 문항의 70%를 EBS와 연계해 출제하는 정책은 '헌법에 부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EBS가 본래의 취지대로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한 바가 있으므로 수능을 EBS 교재와 70% 연계하여 출제하는  '2018학년도 수능 시행기본계획'은 학생, 학부모, 교사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정이었다. 또 다른 기각 이유로는 공익이 사익보다 중요하므로 개인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EBS가 질 좋은 강의를 저렴하게 제공하여 보급한 덕분에 경제적으로 형편이 딱한 학생들이 비싼 사교육 대신 인터넷 강의로 보충학습을 하고, 수험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비싼 과외 대신 학교에서 저렴한 교재로, 교사가 지도하는 EBS를 따르면 70%나 '배려'를 받을 수 있었으니 EBS가 전혀 긍정적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입장에서는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공교육 정상화 아닌 또 다른 의미의 공교육 위축이다.

‘EBS 교재의 수능 연계 70%’ 이후 학교에서는 EBS 교재를 안 다룰 수가 없게 되었다. 수능에서 70%나 반영되는 문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땅 짚고 헤엄치는 70%’를 잃어버리게 되는데 다루어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교과서는 부교재이고 EBS교재는 교과서가 된다. 일부 아이들은 EBS 교재를 보면 70%는 보장받는 다는 사실에  손쉽게 안도해 다양한 교재로 공부하기보다 문제풀이에만 매몰된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EBS가 공교육이라고 철석같이 믿기도 한다. 간혹 딴 짓을 하는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면 나중에 EBS를 들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수능만으로 정시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겐 과정형 평가를 위한 수업참여나 다양한 활동의 권유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가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에겐 굳이 수업 시간이 아니어도 좋은 EBS 문제 풀이가 가장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70%를 제외한 30%에 더 매달리는 학생들은 교과, 비교과에 모두 열심인 학생들이므로 EBS 반영 70%가 공교육 정상화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입시학원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변질되는 가는 수험생의 교실. 그 중심에 ‘EBS 문제집과 수능 반영 70%’가 있다.

●사교육 금지도 아니지만 축소는 더욱 아니다.

EBS 교재를 집중적으로 다루며 공부해야만 하는 수험생에게 EBS 반영 교재는 16권(자연계열 17권), 제 2외국어까지 응시해야 하는 학생에겐 18~19권으로 반드시 보아야만 하는 교재가 교과서에 보태진다. 즉 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들의 부담을 경감시키기는커녕 이중 삼중으로 입시부담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EBSi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강의와 교재들이 제공되고 있어 꼭 연계교재가 아니라도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숱한 교재 중 무엇을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 수험생들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고민에 맞춰 사교육 시장엔 EBS만을 활용하여 족집게 식으로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갖가지 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소위 ‘1타 강사’들의 ‘EBS 강좌’가 열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EBS가 사교육을 돕자는 것인지, 대체하자는 것인지 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교육을 파생시켰으니 헌재가 강변한 것처럼 사교육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닌 것은 맞는 듯도 하다. 그러나 ‘EBS 교재의 수능 연계 70%’가 ‘EBS 반영 족집게’를 표방한 제법 고액의 사교육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고 있다면 이는 축소시킨 것이 아니며 도리어 사교육을 조장한 것은 아닐까싶다. 심지어 다양한 교재로 창의적 학습을 할 기회를 박탈하고 교사의 자유로운 교재 선택권과 학부모의 자녀 교육권을 침해한 것이 분명한 것은 아닌지. 이것이 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의 보장 등을 침해한 것이 아니면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부합하는가?

2015 교육과정은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EBS 교재의 수능 연계 70%’는 입시를 위해 기계식으로 문제를 풀게 하는 기능적 인간의 양성에 더 부합한 방식이다. 교육당국이 국가차원에서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겠다고 기염을 토하면서도 교육 분야에 자생적 시장이 기능하는 것은 막고 인위적으로 일일이 설계하기 위해 만든 것이 EBS다. 공교육의 보완재로 출발한 그 EBS가 이제는 거대한 공룡이 되어 공교육을 도리어 위협하고ㅠ있으니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인 것이다. EBS 문제집으로 단련된 ‘문제풀이형’ 인간을 만들 것인지,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성장’하는 인간을 기를 것인지, 정부는 제발 한 가지만 했으면 한다.

●비중 높아지는 ‘공룡’ EBS, 교재 내용과 강사 검증은 누가 하나

EBS 강사가 강의도중 군대에 가면 사람 죽이는 것을 배운다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수능 대비를 위한 교재에 취업유발계수 등을 읽기자료로 제시하며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기도 하는 등 내용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수험생이 교과서보다도 더 의존하고 필수로 보아야 하는 교재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사실은 ‘수능 반영 비율’ 정도가 문제가 아니다. 촘촘한 모니터링과 내용에 대한 엄격한 검토와 인증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연 그 까다로운 내용 검증과 검토를 누가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국교육방송공사’라는 그럴듯한 포장이 진실과 내용보장의 인증마크라도 되는 듯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EBS 교재로 수업을 하다보면 교재에 탑재된 제시문이나 심화학습자료, 읽기 자료 등에서 문제를 느낄 때가 많다. 철저한 여과 장치 없이 뿌려지는 EBS 교재들은 현재 입시시장에서 거의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교육에 기여한 바가 있다 해서 내용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현재 입시시장에서 엄청나게 덩치를 불려놓은 거대공룡 EBS는 역기능이 만만치 않게 커지는 중이다. 교재 팔아 남긴 돈으로 개인별 성과와 무관하게 무차별 성과금을 뿌리거나, 수요조차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대량으로 찍어내 수십억원의 예산을 낭비했다는 후문마저 돌고 있다. 초심으로 돌아가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공교육의 보완재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죽으나 사나 ‘파킨슨의 법칙’ 대로 갈지도 알 수 없다.

‘EBS 교재의 수능 연계 70%’의 그 70%도 실은 모호하기 그지없다. ‘영역별 과목별 특성에 따라 개념이나 원리, 지문이나 자료, 핵심 제재나 논지 등을 활용한 방법과 문항을 변형하거나 재구성’ 하는 것을 물론, EBS 연계 교재의 지문과 주제, 소재, 요지가 유사 한 다른 지문을 활용하는 경우도 연계를 의미한다. 또 교재에 소개되었던 통계나 그래프 등을 활용 하는 경우 역시도 연계교재 반영에 해당된다. 이처럼 광의의 적용을 받으니 실은 명분만 ‘70%’ 이지 ‘이현령 비현령’일 수도 있다.

‘EBS 교재의 수능 연계 70%’. 이렇게 많은 문제를 품고 있지만 여전히 ‘전가의 보도’이다. 오늘도 고3 교실로 가는 이 교사의 손에 들린 교재는 ‘EBS 수능 특강’.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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