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 작가의 펜앤투어] 신춘대곡
[김정산 작가의 펜앤투어] 신춘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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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꿈과 희망 물거품처럼 사라져
예약 취소 영업 중단 자영업 최대 위기
생업 포기하고 마스크 사러 다니는 사람들
국민을 볼모로 삼은 외교의 당연한 결과
그러고도 냉대와 홀대 지속 국민으로서 굴욕감 느껴
민심, 국익과 동떨어진 정치 언제나 바로잡힐까
김정산 작가
김정산 작가

기다리던 봄이 왔다. 사계절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계절은 봄일 것이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맞는 봄은 평균 연령으로 따졌을 때 팔, 구 십 개, 채 백 개가 되지 않지만 계절 변화가 극심한 이 척박한 기후에서 그 봄이 없다면 생은 누구에게나 삭막한 지옥일지 모른다. 봄 없는 겨울을 무슨 수로 견디랴. 겨울은 간절히 봄을 기다리는 계절, 그래서 팔, 구 십 개의 봄을 맞이할 때마다 인생은 항상 새롭고 벅차고 설레는 것이리라.

봄을 기다리는 마음엔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없다. 남녀노소도 없고 지위고하나 부귀빈천도 없다. 하긴 인생만 그런 게 아니다. 짐승도, 풀과 나무도, 생명을 가진 지상 위의 그 모든 것들이 한결같이 다 봄을 기다린다. 겨울을 견디는 모든 생명에게 해마다 새싹과 새 희망을 잉태하고 새 역사를 쓰게 만드는 봄!

그런데 어쩌나. 이건 봄이 아니다. 겨울을 견디며 가꿔온 꿈은 한순간 날아가고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천지에 희망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비수기의 불황을 견디며 답사를 다니고, 식당과 숙소를 알아보며 열심히 봄날을 준비했지만 나의 봄 역시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설마 공든 탑이 무너지랴, 하지만 현실은 공든 탑도 무너졌다.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 덕이었을까. 1월 말부터 현저히 들썩거리던 여행 경기, 하루가 다르게 걸려오기 시작하던 예약 전화는 2월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뚝 끊어져 버렸다. 예약은커녕 문의 한 통 없는 날이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 예약한 손님들은 다 빠져나갔고, 일정도 국내와 해외 모두 줄줄이 최소되었다. 우리가 이용하던 국내 유명 식당과 관광지 특급호텔 역시 문을 닫거나 거의 휴가에 들어갔다. 가뜩이나 끝을 알 수 없이 추락하던 경기 악화에 고통을 받아온 숱한 자영업자들, 그네들이 혹은 오기로, 혹은 깡으로, 혹은 그냥 죽기 살기로 버티던 최소한의 가느다란 생명줄마저 이 봄은 잔인하게, 너무나도 잔인하게 댕강댕강 잘라버리고 있다.

지난주엔 친구 하나가 낙향했다. 울분을 토로하다가 소주 반병에 울어버린 그에게도 봄날엔 봄꽃처럼 화사한 꿈이 있었다. 물론 그 꿈도 지금은 꽃잎처럼 떨어졌다.

울지마라 친구야, 딸은 다시 시집가겠지.

혹여 위안이나 될까 하고 나도 술잔을 뒤집으며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 세상에 많을 거야. 필시 내 꿈도 곧 접을 거라네.

살다가 이런 봄도 있구나.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 봄. 꽃이 피지 않는 봄. 간절한 꿈이 피어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흩어지는 봄.

이 봄에 얼마나 많은 이가 새로운 꿈을 꾸었을까? 그 장밋빛 봄날 꿈들이 난데없는 날벼락에 와르르 송두리째 무너진다.

오늘 아침엔 밤을 꼬박 지샜다는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새벽에 깨어 잠 못 드는 나이라지만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대뜸 쪽팔려서 못 살겠다고 말했다. 생업을 팽개치고 마스크를 사러 며칠째 돌아다닌다는 그.

“80킬로 운전해 가서 마스크 5장 구해 나오는데 그 뉴스가 나옵디다. 우리 외교부 장관이 중국에 대고 우리가 당신네들 입국 제한을 하지 않은 걸 고려해달라고 애걸복걸하듯이 설명했다니 이 정도 되면 백 프로 짝사랑 아닙니까? 개인 사이에도 이쯤 되면 끝난 거 아닌가요? 정말이지 쪽팔려 못 살겠어요! 여기가 어딘지, 내가 지금 뭐 하는지 싶어요.”

그러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한국 장관의 항의에 외교보다 방역이 더 중요하다고 일침을 가했다니 진짜 이건 두 번 죽이는 일, 시쳇말로 쪽팔려서 못살 만큼 굴욕적이다. 이따위 외교를 하고도 국민의 세금으로 녹봉을 준다니 억장이 무너진다.

상식적이라면 당장 절교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야 할 사안이지만 살신성인의 이 정부는 또 어떤 이유로 중국 정부를 이해하겠지. 거긴 사람이 많으니까. 더 광범위하게 퍼지면 안 되니까. 그럼 우리의 새로 사귄 이웃 중국이 많은 피해를 보니까. 그러다 자칫 세계로라도 퍼진다면 정말 큰일이니까. 우린 인류를 너무도 사랑하니까.

이 같은 인접국과 우리의 미묘한 갈등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간 사례는 이미 외교사에 수두룩하다. 공통적인 것은 어떤 나라든 외교가 지향하는 근본은 바로 국익이라는 사실이다. 외교는 항상 국익을 좇아야 한다. 우방과의 선린관계는 해치지 않으면서 적국을 새 우방으로 만드는 게 외교이지, 무턱대고 적국과 손을 잡는다고 외교가 아니다. 심지어 70년 우방과 혈맹을 배척하면서까지 적국과 손을 못 잡아 안달복달하는 건 그 어떤 외교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이 정부만의 신기술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달복달하는 적국과도 사사건건 자국민들이 쪽팔려할 정도의 이런 홀대와 냉대를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그야말로 이건 외교 운운할 자격도 없는 그냥 미친 짓이다.

지금 우리나라 외교는 외교가 아니다. 왜 그런가? 공복들이 국익을 좇아 일하는 게 아니라 사익을 좇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관념, 자신들의 시각, 자신들의 정파, 자신들의 사익만을 추구하지 그보다 훨씬 더 큰 국가 전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자꾸 무시하기 때문에 번번이 이런 결과를 낳는다. 이번에도 역시 그렇다. 사태의 초기에 중국인 입국을 막자고 할 때 외교부는 여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시진핑의 방한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단언컨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이 모든 어려움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 것이다.

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제 중국은 우리를 차단하고 우리는 중국인을 막지 못한다. 이 정부의 적나라한 외교술이다. 어떤 게 국익인가? 우리 국민은 마스크를 사러 생업도 팽개치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데 정부는 중국에, 중국은 일본에 마스크와 구호용품을 거저 가져다준단다. 이건 국익인가? 이 정부의 외교는 무엇을 좇고 무엇을 추구하는가?

후배뿐 아니라 실은 나도 쪽팔려서 못 살겠다. 우리나라를 뺀 다른 모든 국가의 공무원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 자기 나라 국민과 국익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 같은데, 오직 우리나라만, 우리 정부만 뭔가 다른 걸 위해 일하는 것 같다. 하느니 바보짓이고, 걸핏하면 사방팔방에서 무시만 당한다. 우리 국민이 세계 각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고 있는 건 말할 거리조차 안 된다. 오늘 기사엔 외교부 장관이란 사람도 영국에서 보기 좋게 따돌림을 당했다니 대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래저래 슬프고 심란한 봄날, 전혀 봄 같지 않은 봄날, 희망도 꿈도 송두리째 잃어버린 굴욕의 봄날이다.

이런 봄도 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꽃잎보다 먼저 흩어져버린 꿈, 산산이 무너지고 깨져버린 희망 앞에서 수많은 이의 탄식과 절규는 누가 듣는가?

먹고살기는커녕 숨쉬기조차 힘든 세상에서 우리 국민은 이제 또다시 자신을 뽑아달라고 소리치는 자들의 공허한 메아리를 들어야 한다. 돌고 도는 세상, 날벼락을 맞고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린 국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영화감독을 불러 파안대소하는 그네도 한때는 그랬던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내지르던 그때 그 목소리는 아직도 우리 귓가에 쟁쟁하다.

세상살이 참 지긋지긋하다.

김정산(펜앤투어 대표작가) penntour@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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