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곳 넘는 학회 회장들 靑 불러 수보회의...우한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의협 호소한 '中 입국금지' 제언은 안 나와
범대위 소속 학자들에 "전문가님, 전문가 선생님들이 질본 부족한 부분 채워주고 소통하며 끌어달라"
지난 5일 與특위 전문가 간담회땐 최대집 의협 회장-임영진 병협 회장 초청하더니..."해외유입 차단" 불편했나

중국발 우한폐렴(코로나19) 국내 대(大)유행이 확인되기 직전까지는 국민들에게 "정부의 대응을 믿으라"며 일상 경제활동에 임해달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방역 주체'에 국민을 끌어들였다. 집권 전 단골메뉴처럼 들먹이던 '대통령·정부 무한 책임론'과는 지극히 거리가 먼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4시2분까지 청와대 여민1관 회의실에서 '전문가 초청 간담회' 형식으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했다. 이런 가운데 "범학계 코로나19 대책위원회(범대위)와 질병관리본부, 지방자치단체, 민간 의료기관, 나아가 국민까지 하나가 돼서 각자가 방역 주체라는 같은 마음으로 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고 강민석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지난 21일 내수·소비업계 간담회에서 "국민과 정부가 함께 힘을 모아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레토릭(수사)을 구사한 뒤 거듭해서 방역주체에 '국민'을 끼워넣는 발언을 한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국민께서도 정부의 대응을 믿고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경제활동에 임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당부드린다"고 정부 대응 노력을 거듭 자신하고도 사흘 만에 한층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24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에서 전문가 초청 간담회 형식으로 개최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앞서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론을 불식시키며 정부 대응을 자신, 낙관하는 발언으로 일관한 바 있다. 지난 12일 서울 남대문시장 방문 때 "국민들은 방역 본부가 가르쳐주는 행동 수칙과 행동 요령을 따르면 충분히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빨리 활발하게 다시 활동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했었다. 

13일 경제계와의 간담회에선 "국내에서의 방역 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며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7일에는 청와대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선 "국민들께서도 정부의 대응을 믿고, 각자의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정상적인 일상활동과 경제활동으로 복귀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같은 언급들은 19일부터 우한 코로나 국내 확진자가 두자릿수 이상 발생하면서 근거를 잃었다.

이날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또 범대위 참석자들에게 '전문가님', '전문가 선생님'이라고 극존칭을 연신 썼다. 토론 마무리발언에서 "'전문가님'들이 회의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 우리 질본이 세계적으로 우수하고, 대단히 헌신적으로 해왔는데, '전문가 선생님'들이 질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고, 소통하면서 끌어주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 주시라"고 당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전문가 선생님들이 질본과 함께하고 정부와 함께하는 것이 국민이 좀 더 안심하지 않을까 한다. 상황이 끝날 때까지 정부와 민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견 전문가 의견 청취 노력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일 수보회의에는 우한 코로나로 인한 국내 사망자가 발생하기까지 여섯번에 걸쳐 '중국 전역으로 입국 금지지역 확대'를 정부에 촉구했던 대한의사협회(의협), 해외여행력 정보 제공프로그램 점검을 주장했던 대한병원협회(병협) 관계자가 초청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최대집 의협 회장, 임영진 병협 회장 등을 초청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 특별위원회(위원장 김상희)를 연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해외유입 차단" 등 쓴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여권에서 의협과 병협을 전문가 그룹으로 간주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대통령 주재 수보회의에선 배제해버린 셈이다.

중국발 전염병 명칭을 놓고 정치권·언론·국민 입단속에만 집착하거나 근거없는 '코로나19 곧 종식'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도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은 셈이다. 오히려 이날까지도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중수본)는 중국발 입국 전면금지 요구를 "이 수준으로 위험 요인을 차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억지를 써가며 거부하는 동시에, 국내 확산피해를 놓고는 "전파 양상의 규모는 크지만 일부 지역 또는 집단에 의한 전파가 주된 원인"이라고 대구시민과 신천지교를 감염원으로 주저 없이 지목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문 대통령이 수보회의에 초청해 참석한 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 허탁 대한응급학회 이사장, 김성란 대한감염관리간호사회 회장, 엄중석 대한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정책이사, 정희진 대한항균오법학부 회장, 최은화 대한소아감염학회 부회장, 김상일 범학계 코로나19대책위원회 실무TF장 등 중에서도 중국발 입국 전면금지와 같은 상식적인 제언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현 정부여당이 선후(先後)를 뒤바꿔 코로나19 국내에서 대확산되는 상황을 중국발 입국금지 무용론의 근거로 악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한기호 기자 hkh@pennmike.com

관련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