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이 연·기금 종자돈 삼아 기업 장악한 후 국영처럼 쥐락펴락하는 '연금 사회주의'
자본시장법 시행령서 국민연금 주식보유 목적에 '일반 투자' 끼워넣은 文정권, '경영참여' 노린 꼼수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만 724조...시가총액 1717조 100대 기업들 지분 10%만 가져가도 대주주行
2030년 되면 1700조 이를 국민연금 적립금, 연금 사회주의 종자돈으로 쓰이면 안 된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연금 사회주의란 국가 권력이 국민연금 등을 통해 기업들을 장악한 후 국영기업처럼 쥐락펴락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번 3월 주총부터 연금 사회주의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 같다. 국민연금 공단의 2월 7일자 공시가 신호탄이다. 공시의 내용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대한항공 등 56개 상장기업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 목적'에서 '일반 투자 목적'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일반 투자 목적’이란 기업에 대한 배당 요구, 정관 변경 요구, 위법 행위를 한 임원의 해임 청구 같은 행위를 말한다.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이들 기업의 주식을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주가 상승와 배당 수취 등을 목적으로는 투자를 단순투자이다. 재무적 투자라고도 부른다. 주식 보유의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바꿨다는 것은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경영 참여를 하면서도 목적을 ‘경영 참여’가 아니라 ‘일반 투자’ 목적이라고 썼을까. 나는 국민연금과 현 정권이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본다.

자본시장법(147조)은 투자 목적을 ‘경영 참여’와 그렇지 않은 투자의 두가지로 구분한다. 그리고 ‘경영 참여’ 목적이 아닌 투자를 일반적으로 ‘단순 투자’ 목적의 투자로 부른다. 경영참여 목적의 투자에 대해서는 엄격한 공시요건을 부여하는데 이는 기존 경영진에게 경영권 방어에를 위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자본시장법에 딸려있는 시행령에다가 ‘일반 투자’ 목적이라는 것을 만들어 넣었다. 일반 투자 목적이란 조금 전에 설명했던 배당 요구, 정권 변경 등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를 포함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들 특히 정관 변경 같은 경우는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여서 마땅히 경영 참여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법률도 아닌 시행령에다가 일반 투자 목적이라고 개념을 신설해서 그런 행위들을 허용했다. ‘경영참여’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상당 수준의 경영 참여가 가능하도록 길을 터놓았으니 자본시장법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바꾼 셈이다. 국회의 허락도 없이 공무원들이 법률을 바꾼 것이다.

왜 그랬을까? 국민연금은 자기들이 기업경영에 관여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연금 관리자의 본분은 투자를 잘 해서 최대한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야 가입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러라고 맡긴 돈을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데 쓰는 것이 본분일 수 없음을 자신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경영 참여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삼성전자니 현대차, LG전자, 대한항공 같은 기업을 쥐락펴락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면 떨어지는 콩고물도 많을 것이고 이곳 저곳에 선심 쓰기도 좋을 터이다.

‘일반 투자 목적’이라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의 새로운 법률 용어는 경영에 개입을 하면서도 경영참여라는 단어는 쓰지 않기 위해 찾아낸 꼼수임이 분명하다. 쓰기는 ‘일반 투자 목적’이라고 쓰고 읽을 때는 ‘경영 참여 목적’이라고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법 개정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시행령에 넣었다. 국민연금은 그 ‘일반 투자’라는 이름으로 경영 참여를 할 준비를 끝냈다.

이번에 국민연금이 개입하겠다고 밝힌 기업의 숫자는 56개이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기금의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국민연금은 거의 모든 상장 기업의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는 2019년말 기준 724조원인데, 코스피 코스닥 상장기업 시가총액 합계가 1717조원이다.(e-나라지표,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079) 그러니까 전체 상장 기업 주식의 10%를 확보한다 고 가정하면 172조가 필요한데 이는 기존 적립금의 23.7%에 불과하다. 지분 10%면 대다수 기업에서 최대주주 또는 2대 주주가 될 수 있다. 적립금의 1/4 투자만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코스피 시가총액 100대 기업 중에서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소유한 곳이 37개이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에 투자한 금액이 123조원에 불과한데도 벌써 그렇다. 앞으로 200조원를 국내주식에 투자를 한다고 하면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 LG 전자. 현대차, SK 하이닉스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기업을 국민연금이 접수할 수 있다. 이는 청와대와 민주당, 좌파 시민단체와 민노총 등의 연합군이 접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들은 사정이 어떨까. 한국경제연구원이 아일랜드 일본 노르웨이 스웨덴 등 7개 국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기금의 국내 주식 투자 상황을 조사했다.(국민연금의 기업 영향력 막강, 한국경제연구원 보도자료, 2019년 12월 5일.) 대부분은 연금 기금의 국내 주식 투자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들어 아일랜드의 국민연금기금펀드(NPRF: National Pension Reserve Fund)는 회사 지배가 가능한 정도의 주식보유는 금지된다. 일본의 후생연금펀드(GPIF: 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는 개별기업 발행주식의 5% 초과 보유가 금지된다. 따라서 GPIF가 개별기업의 최대주주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노르웨이 정부연금펀드는 정부 스스로 기업별 주식 보유한도를 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스웨덴 AP Fonden의 경우 국내 비상장사 주식투자는 자산의 5%, 국내 상장사는 시총의 2%가 상한이다. 호주는 900개에 이르는 개별펀드가 투자를 하므로 기업 최대주주로 있는 경우 희박하다. 캐나다의 경우 국내기업 주식투자 비중이 낮아 캐나다 연기금이 개별기업의 최대주주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폴란드와 프랑스는 공적기금이 국내기업 경영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 직접 행사를 제한한다. 이들 나라들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특히 지배주주가 되지 못하도록 신중을 기하는 것은 국민의 돈이 민간 기업의 국영화 자금으로 쓰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함일 것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당분간 불가피하다. 2019년말 724조원이지만 2030년이 되면 1700조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이 연금 사회주의의 종자돈이 되게 하면 안된다. 따라서 가급적 외국으로 투자처 전환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국내 주식에 투자할 경우는 경영 참여는 지양하고 가급적 재무적 투자로 한정해야 한다. ‘일반 투자’라는 간판을 걸고 경영에 참여하는 꼼수도 물론 치워버려야 한다.

그 동안은 우리나라의 국민연금도 비교적 조심스럽게 투자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 주총부터 분위기가 바뀔 것 같다. 매우 공격적인 경영개입이 시작될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그나마 멀쩡한 우리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실질적으로 공기업이 되어 경쟁력이 추락할 것이다. 이것을 막으려면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서강대 겸임교수·김정호의 경제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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