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 윤희성 기자
PenN 윤희성 기자

2018년 대한민국 1분기(1월~3월)를 관통하는 이슈는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모두 포함)'이다. 1월29일 서지현 검사가 선배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한국판 미투(me too) 운동은 3월의 첫날인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성폭력 가해 남성들 중 사회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만 25인승 버스에 가득 태울 만큼이다. 

휘몰아친 성폭력 이슈는 문화계 그 중에서도 연극판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무대 뒤편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들을 취재하고 보도하면서 기자가 느낀 것은 배우의 길에는 성폭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로 나선 다수의 여배우들과 문화계 일각에서 나오는 '남자 배우들도 성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감안하면 '배우'는 성폭력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다.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연극을 거쳐야 한다. 연극판 경험이 없는 배우는 연기력이 없다는 꼬리표를 떼기 어렵다. 드라마 아역이나 유명 기획사의 아이돌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다가 배우로 자리잡은 유명 스타들 중 일부도 대학로(서울 연극 중심지)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컴플렉스를 이기지 못하고 연극 작품 몇 개는 하는게 현실이다. 

실제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다수의 배우들은 극단 출신이거나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했다. 요즘은 연영과를 졸업해도 연극판에서 10년 정도 몸을 담았다가 방송사 공채탤런트나 스크린에 진출하는 것이 주류다.

배우가 되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연극계에서 가장 많은 성폭력 가해자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배우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요즘 현실에서 배우를 길러내는 극단과 대학이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접한 연기전공자나 이들의 부모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진 연극인 중 다수는 평소 인권, 평등을 강조하며 '사람이 먼저'라는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춰왔던 인물이다. 이들은 누구보다 정의를 강조했고 기득권의 갑질을 분노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영역에서는 각종 추태를 보였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라를 만든 이윤택은 현재 16명의 피해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이윤택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은 101명의 변호사를 동원했다. 이윤택은 강간 혐의도 받고 있다. 

연희단거리패의 아지트인 밀양연극촌을 관리한 하용부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배우지망생의 폭로가 있었다. 연희단거리패 출신 중 가장 성공한 배우인 오달수도 강간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연기를 가르치는 국내 4년제 대학 중 선호도가 높은 한국예술종합대학(이하 한예종), 2년제 중 가장 인기가 좋은 서울예술대학(이하 서울예대), 지방의 청주대, 경성대(부산) 등에서도 교수들의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드러났다. 

한예종 교수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국립극장장까지 거론됐던 김석만은 과거 자신의 제자에게 성추행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예대의 터줏대감인 오태석과 그의 제자 한명구는 교수로 학생들을 대하면서 성추행을 저질렀다. 오태석은 잠적했고 한명구는 사과하고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경성대 교수였던 조재현, 청주대 교수였던 조민기 역시 모두 학교에서 제명됐다.

심지어 연극배우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1999년 생긴 한국연극배우협회의 수장인 배우 최일화도 성폭력 사실을 인정했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주장에 곤혹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연극의 중심지인 서울 대학로에는 안전지대가 없었다. 연극계 인재를 양성하는 극단과 대학의 선생은 물론 배우를 보호하는 협회 이사장까지 성폭력 가해자였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는 길목은 모두 성희롱꾼 아니면 성추행범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는 과거 연예부 경험을 10개월 정도 한 적이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수많은 배우들의 얼굴이 스친다. 기자와 인터뷰한 배우들은 항상 밝게 웃었다. 혹시 그때 그 미소 뒤에 잔인한 현실을 숨겼던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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